당시 한일 갈등은 2006년 4월 노무현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 측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동해의 해저지명을 우리말로 만들어 제수로기구(IHO)에 등재하겠다고 밝히자 일본이 독도 주변 해양조사로 맞서면서 촉발됐다. 2005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로 시작된 양국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때였다.
당시 한일간 협의에 따라 일본이 탐사계획을 결국 중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 관련 대국민담화를 직접 작성해 발표했고 정부는 해저지명 등재 계획를 그대로 진행했다.
▲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문 중 일부. ⓒ노무현재단 동영상 캡처 |
이번에 공개된 전문은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이 미 국무부 등에 보낸 극비 문서다. 일본 해양보안청 해양탐사선이 독도로 출발하고 이틀이 지난 2006년 4월 20일 토머스 시퍼 당시 주일 미국 대사가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과 면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에 따르면 시퍼 대사는 면담 자리에서 일본의 독도 주변 해양탐사를 "일본이 국제법의 허용범위 내에서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편드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미친 짓(do something crazy)을 하거나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시퍼 대사가 비난한 한국의 '행동'은 노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준비하면서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접근하면 당파(배로 밀어 깨트림)하라고 지시한 점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12일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만약 일본 탐사선이 독도에 오면 당파하라고 지시했다"며 "이에 해양경찰청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라고 밝혔다. 시퍼 대사의 발언을 볼 때, 실제로 당시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에 대해 무력 사용을 포함한 단호한 조치를 준비했고, 미국은 이를 껄끄럽게 여겼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이었던 박선원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박선원 부원장은 "빅터 차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이 우리에게 (독도 문제 관련) 자제를 당부했는데 우리는 차 국장에게 '아베 신조(安倍晉二) 관방장관이 자제하지 않으면 무력대응이 불가피하다'는 메시지를 (일본에) 똑바로 전달하라고 했다"며 "시퍼 대사의 발언은 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총리를 역임했던 아베는 지난해 10월 당시 사건을 회고하며 한국 대통령이 한국 경비정에 경고사격 명령을 비밀리에 하달했고 일본 정부는 총격전을 우려해 탐사활동을 중단했다고 주장했었다.
▲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6년 외교전문에서 독도 갈등을 두고 한국 측의 대응을 '미친 짓'이라고 비난한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대사. ⓒ로이터=뉴시스 |
YS "미국의 북한 핵시설 폭격 말린 것 후회"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또 다른 외교 전문에는 2006년 국정원의 '일심회 사건' 수사 당시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의 사임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2006년 11월 1일자 전문에 따르면 주한 미 대사관은 당시 국정원이 민주노동당 간부와 참여정부 관계자가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일심회'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김 원장이 사퇴한 것은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으로 논란이 거셌다고 보고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후임 원장으로 내정된 김만복 당시 국정원 1차장을 '충성파'로 규정하면서 "조직의 안정을 유지하고 임기 후반 청와대가 국정원을 다잡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전문은 또 국정원장 교체가 일심회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2008년 4월 29일자 외교전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미국이 북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말린 것을 후회하며 "그때 미국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북핵 문제가 해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의 오찬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며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한편, 1995년 11월 3일자 외교전문에는 미국이 당시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극심했던 북한이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할 수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전문은 "경제적 어려움과 계속되는 정치적 마비는 현재의 북한 정권이 겨울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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