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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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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딸

[한윤수의 '오랑캐꽃']<421>

악질 목사로 소문이 나면 사장님들이 무지하게 싫어할 것 같아도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이 사장님이라면,
돈 못 받았을 때 누구에게 부탁할까?
선한 목사? 어림도 없다.
악질 목사다.
받으니까!

이런 이유로, 사장님들은 나를 경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는 구석을 갖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종이박스를 만드는 공장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있는 딸이 돈을 못 받아서요."

그 딸은 드라마 촬영 현장에 출장 메이크업을 다니는 분장사(扮裝師)다.
분장 아카데미(분장학원)에 속해 있는데 4개월 임금을 못 받았단다.

내가 물었다.
"노동부에 진정했나요?"
"예. 가락시장 근처에 있는 노동부에 했다네요."
"잘 했네요."
"잘 하긴요? 그래봤자 한 달 치 밖에 못 받은걸요."
"나머지는?"
"석 달이 지났는데도 차일피일 계속 미루기만 하고 언제 줄지 모른대요."
"근로감독관이 개입했으니까 곧 줄 겁니다."
"근데요 감독관이 *민사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더래요."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안 돼!"
그가 놀라서 물었다.
"왜 안 됩니까?"
"형사로 해야 *형사처벌 받을까봐 돈을 주지! 민사로 하면 학원장이 뭐가 무서워 돈을 주겠어요?"
"그러네요!"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형사로 해달라고 노동부에 가서 말할까요?"
"아뇨. 그냥 전화로 통보하세요. 형사처벌을 원한다고."
그제서야 안도한 듯
"목사님한테 전화하기 잘했네요."

하지만 또 걱정이 되는지
"사실은 딸이 두 달 후에 미국 가야 하는데, 그 안에 해결될까요?"
"왜 그딴 걸 걱정하죠?"
"본인이 없으면 돈 못 받잖아요!"
"통장 사본 주고 가면, 통장으로 넣어줄 텐데 뭐가 걱정이죠?"
"하, 그렇군요."
그는 비로소 활짝 웃었다.

간단한 노동법도 모르는 사장님들이 수두룩하다.

내 비록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게 주 임무이지만,
때로는 한국사람, 심지어는 사장님을 돕기도 한다.

*사장님 : 아주 순진한 분으로 임금을 체불한 경험이 없어서 노동법에 대해 거의 모른다.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고!

*민사로 하는 게 어떠냐? : 민사로 하면 감독관 할 일이 대폭 줄어든다. 채권자와 채무자 즉 당신네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얘기니까. 손 안 대고 코 푸니 깜찍하지! 형사기소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검찰로 송치할 일도 없다.

*형사처벌 : 임금은 노동자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므로 안 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정부에서 임금 체불을 강력히 단속하는 것도 노동자의 생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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