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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씩 21일 일한 대가가 22만5000원…결국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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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씩 21일 일한 대가가 22만5000원…결국 이혼"

[현장] 불법적인 택시 사납금제, 여전히 횡행…정부는 방관

"택시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 피해를 입었어요.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21일밖에 근무를 못했죠. 그래도 회사에 198만 원을 입금했는데, 그달 월급이 22만5000원이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꼬박 21일 동안 일한 대가가 22만5000원이에요. 이게 4인 가족 생활비로 말이 됩니까?"

택시운전기사였던 이정환(가명‧60) 씨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를 거듭 강조했다. 그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다. 아내는 이 씨에게 생활비로 한 달에 60만 원을 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는 손님이 뜸한 여름이면 약속한 60만 원을 못 채우기 일쑤였다. 부부는 자주 다퉜고, 결국 이혼했다. 그의 아내는 세탁소 노동자였다.

▲ 서울의 한 택시운전기사. 택시운전기사는 대부분 하루 10만 원이 넘는 사납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고 호소한다. 이정환 씨는 "택시업계의 경영악화가 없었는데도 최근 강동구의 택시회사들은 1인당 사납금을 3000원씩 인상했다"고 말했다. ⓒ연합

유급휴가 쓰면 '벌금' 물리는 택시회사

이 씨는 택시를 빌리는 대가로 회사에 매달 260여만 원 이상을 사납금으로 내왔다. 하루 12시간씩 주말에도 쉬지 않고 꼬박 한 달을 일해서 번 돈은 80~100여 만 원. 그는 "사납금은 다 냈는데 일하는 날짜를 못 채우면 회사가 그걸 핑계로 임금을 깎는다"며 "임금 깎는 건 중구난방"이라고 말했다.

그가 다니는 서울 강동구의 택시회사는 일요일 4번을 제외하고 한 달에 26일을 일하지 않으면 월급을 깎았다. 일요일에는 업무를 쉬어도 택시 사용료 1만9000원을 낸다. '벌금'을 내지 않으려면 한 달이 30일일 때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31일일 때는 단 하루만 쉴 수 있는 셈이다. 연차휴가를 써도 마찬가지다. 하루 연차휴가를 쓰면 1만9000원, 2일에 3만9000원, 3일은 15만9000원이 상여금에서 삭감됐다.

산업재해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근무일수 26일을 채우지 못한 그의 월급은 차차 깎였다. 마지막으로 손에 쥔 돈은 22만5000원. 그는 "설사 26일치 사납금 260여만 원을 다 냈어도 근무 날짜를 못 채우면 임금이 깎인다"며 "회사에서 임금 가지고 장난치는 게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회사가 떼어먹을 수 있는 건 다 떼어먹으니까요."

"세금 돌려줘도 업주 주머니로만 들어가"

이 씨가 참을 수 없었던 일은 택시기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깎아준 세금마저 회사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택시회사가 정부에 내는 운송수익금 부가세(택시기사가 내는 사납금의 10%) 중 90%는 택시기사에게 환급하게 돼 있다.

그런데 회사는 부가세 환급금을 따로 주지 않고, 그가 원래 받아왔던 최저임금에 포함시켰다. 이 씨는 "부가세는 회사가 주는 돈이 아니라, 정부가 우리에게 주는 돈"이라며 "부가세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봤지만 "부가세를 최저임금에 포함해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회사는 낡은 차를 새로 바꿀 때도 신차 할부금을 노동자들에게 물렸다. 또 다른 택시노동자였던 박성복(61) 씨는 "새 차로 바꾸면 회사는 주‧야간 근무자에게 각각 하루 4000원씩 29개월 동안 한 대당 총 600여만 원의 추가 입금을 받는다"며 "회사는 신차를 내면 서울시에서 주는 부가세 혜택을 받으면서도 임금 착취와 세금 포탈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비가 올라도 문제다. 지난 2009년 서울시내 택시 기본요금은 2400원으로 500원 올랐지만, 택시기사들은 사납금이 하루에 1만2000원 더 올라서 임금이 오히려 깎였다. 박 씨는 "택시비가 오르든 세금을 깎아주든지 간에 회사가 그 이상을 빼앗아 가고 여전히 기사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며 답답해했다.

"노동위원회는 회사 편…어디 가서 하소연하나?"

박 씨는 지난 3월에 강제 퇴직을 당했고, 이 씨는 택시 일을 스스로 그만둔 상태다. 이 씨는 "회사에서 사람대접을 안 하니 너무 힘들고 희망이 없어서 그만뒀다"며 "회사를 옮겨도 다른 일을 하고 말지 택시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은 채였다.

그는 구청과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한 임금 착취의 시정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근로감독관도 처음엔 우호적으로 말하더니, 회사 사람을 만나고 나서 싹 바뀌데요. 노사합의 사항이라 문제없다는데, 그럼 노사가 합의하면 퇴직금도 제대로 안 줘도 되는 건지 되묻고 싶어요."

그는 "민원을 제기해도 노동부는 일방적으로 회사 편을 드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 사회가 너무 우리한테 무관심하다"며 씁쓸해했다. 박 씨는 "택시기사들은 할 짓 못할 짓 다 해보고 막바지에 온 사람들인데, 최저임금도 못 맞춰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경조사 등으로 차를 안 타는 날의 임금까지도 싸그리 깎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택시 사납금제는 불법이다. 1997년에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에 따라 택시 월급제가 이미 도입됐지만, 택시 업체들은 이를 무시해 왔다. 정부와 서울시가 단속·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 7월 "택시 제도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택시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2013년까지 완전 월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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