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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90분의 악몽', 처참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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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90분의 악몽', 처참했던 순간

용의자 32세 남성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맑시즘"

22일 노르웨이 우토야섬에서 벌어진 최악의 총기 참사는 현장에서 체포된 32세의 노르웨이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Anders Behring Breivik)이라는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 경찰이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생존자들은 당시 브레이빅에 의해 벌어진 끔찍한 참사 현장을 전했다.

23일 <AP> 등에 따르면 당시 우토야 섬에는 집권 노동당 청년위원회가 주최한 여름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560여 명이 있었다. 브레이빅은 2시간 전 오슬로에서 차량폭탄 테러를 일으켜 치안당국의 눈을 돌렸다. 이후 경찰복을 입고 자동 엽총 등 2종의 무기를 소지한 채 배를 타고 섬에 도착했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경찰관 차림의 그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질서 유지를 위해 온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엘리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오후 5시30분 경 건물 안에서 2시간 전에 오슬로에서 터진 폭탄테러 소식에 대해 얘기하던 캠프 참가자들은 총성을 듣고 밖에 나갔다. 그곳에 서 있던 브레이빅은 그들에게 모두 가까이 모이라고 말한 후 가방에서 자동 소총을 꺼내 쐈다.

일부는 바닥에 쓰러져 죽은 체 했지만 브레이빅은 쓰러진 이들의 머리를 엽총으로 다시 쏴 '확인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물에 뛰어들어 500미터 가량 떨어진 육지나 섬의 다른 방향으로 헤엄쳐 갔지만 브레이빅은 이들에게도 총격을 가했다. 헤엄치다 어깨에 총을 맞은 아드리안 프라콘이라는 피해자는 <BBC>에 총에 맞아 죽은 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섬 안의 건물에 숨은 이들은 브레이빅이 문을 열라고 협박하며 문에 총격을 가했지만 열리지 않자 포기하고 물러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헤엄쳐서 섬을 탈출한 한 청소년은 "그는 너무나 침착해 기괴할 정도였다"며 "확신에 찬 모습으로 천천히 섬을 돌면서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총을 쐈다"고 노르웨이 현지방송 <TV2>에 말했다.

▲ 현지시각 22일 노르웨이 우토야섬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에서 탈출한 이들.. ⓒAP=연합뉴스

브레이빅은 최초 총격을 가한지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은 섬을 돌아다니는 그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러 부르자 총을 떨어트리고 순순히 투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헬티콥터를 구하지 못해 오슬로에서 30㎞ 떨어진 이 곳에 도착할 때까지 많은 시간을 소비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총기 참사에 앞서 일어난 수도 오슬로의 차량 폭탄 테러 현장도 처참하다. 총리실이 있는 20층 높이의 정부청사는 유리창이 모두 산산조각 났고 거리 곳곳에 유리조각과 휘어진 철근, 콘크리트 파편이 널려져 있다. 한 폭발 목격자는 <AP>에 9.11 테러 직후 뉴욕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고 전했다.

스에니눙 스폰헤임 노르웨이 경찰청장은 폭발로 부서진 건물에는 희생자들의 시신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빌딩들이 현재 너무 붕괴되기 쉬운 상태에다 가연성 물질에 의한 추가 폭발 위험이 남아있어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이번 테러로 우토야섬에서 최소 85명이, 오슬로에서 7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숫자가 98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용의자, 1500쪽 성명 통해 현실 불만 드러내

2시간 간격으로 테러를 일으킨 브레이빅에 대해 경찰은 아직 정확한 범행 과정과 공범의 존재 여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테러 초기 이스라엘 언론은 배후로 노르웨이 내 소수 무슬림을 성급하게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브레이빅의 온라인 활동 내역을 추적해 그가 농작물 재배업자이자 극우 성향을 지닌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오랜 시간에 걸쳐 범행을 준비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지 언론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범행에 앞서 온라인에 올린 1500여쪽 분량의 성명에서 자신의 각오를 밝히며 이슬람 세력의 위협에 맞서 유럽을 지키는 기독교 전쟁을 요구했다. 이번 범행이 오랜 시간을 거쳐 준비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범행을 준비하면서 브레이빅이 쓴 일기가 기록된 이 성명에서 그는 "대화의 시기는 지났다. 우리는 평화를 안겨줬다. 무장 저항운동의 시간이 왔다"라고 적었다. 이 성명에는 브레이빅의 영어 이름인 앤드류 버윅(Andrew Berwick)이라는 서명이 있어 진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이번 테러 사건의 용의자로 알려진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 ⓒAP=연합뉴스
'2083: 유럽 독립 선언(2083: A Europ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이라 이름붙여진 이 성명은 자유주의화 다문화주의를 "문화적 맑시즘"이라 규정하면서 유럽 기독교 문명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는 또 브레이빅이 지난 2002년 4월 런던에서 '템플 기사단'을 재건하는 일과 관련해 비밀 모임을 가졌다고 묘사했다. 여기에는 8개 유럽 국가에서 모인 9명의 대표가 참가했으며 참석하지 않은 3명의 회원에는 유럽계 미국인이 포함되어 있다고 성명은 밝혔다. 이 때문에 브레이빅의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는 이들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노르웨이 방위연구소의 한 테러 전문가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해 작성된 이 성명이 오사마 빈 라덴이나 다른 알카에다 지도자들의 선언과 일종의 유사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성명과 유사하게 알카에다의 선언서는 '성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역사적 맥락의 불만을 드러내고 종교적·문화적 차이를 보이는 적을 물리치는 전쟁을 요구한다.

성명은 또 폭탄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질 구입과 폭발물을 만드는 실험, 지난 6월 13일 원격으로 폭탄을 터트리는데 처음으로 성공한 일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성명 마지막에는 7월 22일에 공격을 감행할 것을 암시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마키아벨리와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등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놓았고 트위터에도 밀의 "신념을 가진 1명은 이익만 좇는 10만 명의 힘과 같다"는 말을 올려 범행을 결심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브레이빅은 이밖에도 인터넷에서 "오늘날의 정치는 더 이상 자본주의 대 사회구의가 아닌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간 싸움"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슬람 세력에 적대적인 글을 많이 올려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의 그는 평범한 청년에 가까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오팜'이라는 농작물 업체를 운영하면서 별다른 범죄 경력도 없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경찰은 그의 자택을 수색해 비료회사로부터 비료 6톤을 구입했다고 밝혔지만 곡물회사는 농작물 재배에 그 정도 양은 보통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료 성분 중 일부는 폭탄 재료에 쓰이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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