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주요 언론들은 해킹 스캔들의 책임이 머독으로 쏠리는 것을 뒤집기 위해 안간힘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0일 영국의 여론을 독점하는 것은 머독이 아니라 <BBC>라며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가디언> 등이 상업적이고 이데올로기적 동기에서 움직인다고 비난하면서 스캔들 자체도 선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머독에 쏠리는 비판은 해킹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광범위한 해킹이 자행될만한 배경에는 머독의 언론사 운영방식과 언론사를 소유하는 목적이 저널리즘의 본질에 부합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자리잡과 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제이 로센(Jay Rosen)은 19일 칼럼에서 머독 소유 언론사들의 모회사인 뉴스 코퍼레이션(뉴스 코프)의 기업 문화가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뉴스 코프 고위직들이 사태가 심각해짐에도 해킹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일관적으로 부인하는 건 뉴스 코프의 목적이 저널리즘이 아닌 영향력 행사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스 코프는 언론사주의 권력욕을 채우고 뉴스 코프의 다른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겉으로는 언론 자유와 공공성을 외치는 이중성이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특정 이슈에 대한 보도에서 정치·경제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한국 언론들도 고민할 만한 대목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원문 보기)
▲ 루퍼트 머독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 ⓒAP=연합뉴스 |
지난 몇 주간 전화 해킹 파문의 전말이 드러나는 걸 지켜보면서 이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수수께끼가 생겼다. 뉴스 코프의 어떤 점이 이런 사건을 벌이게 했나?
필자는 우리가 이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궁극적인 책임은 꼭대기에 앉은 이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꼭대기에 앉은 이란] 뉴스 코프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인 루퍼트 머독을 의미한다. 맞는 말이지만 여전히 벌어진 일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핵심 인사들이 범인이고 거짓말쟁이며, 혹은 고의적으로 [진실에] 눈을 감는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런 처지에 몰렸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수수께끼는 많은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해킹 사건에] 책임이 있는 뉴스 코프 내부에 [기업] 문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필자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동의한다. [해킹 피해자 중 한 명인 실종된 소녀] 밀리 다울러 가족의 변호사는 레베카 브룩스가 사임한 뒤 "이 사건은 단지 한 사람에 대한 게 아니라 한 조직의 문화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칼 번스타인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며칠 전[9일] <뉴스위크>에 다음과 같이 썼다.
"회사 안의 누구라도 언론 기관의 규범과 문화는 사주나 발행인, 편집장들에 의해 위로부터 아래로 형성된다고 말할 것이다. 기자와 편집자들은 일상적으로 법을 위반하거나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도청하지 않는다. 또 그들은 일반적으로 인지되고 동의된 정책의 문제가 아닌 한 폭력배처럼 굴지 않는다.
암묵적 지식을 갖고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이 승인하지 않는다면 사설탐정과 전화 해커들은 중요한 정보원이 될 수 없다. 루퍼트 머독이 최고라고 알고 있는 이들에 따르면 그가 소유한 신문사들의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하다."
번스타인의 정보원 중 하나인 뉴스코프의 전직 임원은 "머독은 이러한 문화를 개발해 편집실에 심었다. 그곳에서는 기사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쓰며, 타협하지 않고, 경쟁을 없애고, 끝으로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어느 정도 이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이 문화의 작동 방식과 처음부터 이런 문화가 존재한 이유에 대해 필자의 이론을 소개하고 싶다.
머독 부자가 영국 내 홍보를 위해 에델만사를 고용했다는 기사가 보도됐을 때 필자는 "에델만은 위기 대응 부서가 있지만 부인(denial) 부서도 있나?"라고 혼자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벌어진 초기부터 뉴스 코프의 반응 방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부인! 이는 "이동하자, 여긴 볼 게 없다…"식으로 (사실은 무엇인가가 있을 때) 질문을 회피하는 부인일 뿐 아니라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부인하거나 다가오는 죽음을 부인하는 이들를 말할 때 거론하는 더 깊은 의미의 부인이다.
부인은 어떤 식으로든 뉴스 코프 문화 안에 형성됐고, 이 경향은 다른 어떤 평범한 회사보다 더 심하다. 15일 머독이 그의 회사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매우 잘" 위기를 다루고 있다며 [도청 사건을] 단지 "사소한 실수"로 치부한 발언은 최고경영자가 하는 말치고 평범하지 않다. 다음날 [도청 사건에] 책임이 있는 임원(레베카 브룩스)가 사임한 뒤 그 다음날 체포당했고, 뒤이어 머독의 측근 레스 힌튼이 역시 패배의 물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사퇴한 점을 고려했을 때 더욱 그렇다.
당신 회사의 임원은 사소한 실수로 사임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스 코프의 어느 누구도 15일 발언으로 곤란해하지 않는 것 같다. [머독이 소유한] <월스트리트저널>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 발언을 보도했다. 머독은 화요일[19일]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 그의 '사소한 실수' 발언을 취소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다. 이런 거대한 부인은 어디에서 오는가?
필자의 사소한 이론이 있다. 뉴스 코프는 언론사가 아니라 로비 기구로 신문사를 고용한(그리고 미국에서는 <폭스뉴스>를 고용한) 글로벌 미디어 제국이다. 이 '언론' 자산을 소유하는 논리는 나머지 (더 크고 더 이윤이 많은) 미디어 사업을 대신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머독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는 데 있다.
외부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런 사실은 상당히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뉴스 코프의 문화로 인해 기업[내부]에서는 감춰진다. 우린 여기서 뉴스 코프 내부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부인하는 문화'의 근원을 알 수 있다.
뉴스 코프는 <폭스뉴스>와 머독이 소유한 신문들을 만들며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곳을 '보통의' 뉴스 조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정말 그렇지 않다.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 건 그들이 보수적인 세계관을 가졌다는 점이 아니라 - 그건 [머독의] 반대자와 지지자들이 함께 쓴 소설이다 - 그들의 최우선 사업이 뉴스가 아닌 영향력 행사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영향력은 뉴스 코프의 계획에 함께 할 정치가들을 겁주고 공포와 편집증 분위기를 조성해 그들이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 10번가의 뒷문으로 머독을 들여보내게 한다.
그러나 기업 심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의 뉴스 관련 자산을 상징하는 깃발은 "머독 제국의 로비 기구"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헌법 수정 제1조" 혹은 "저널리즘", "공공 서비스", "뉴스와 정보"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회사는 거짓말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거짓말은 머독과 그의 후계자들에게 중요한 어떤 소설들을 지키는데 필요하다. 필자는 전화 해킹이라는 엉망진창의 상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이 거짓말이 설명한다고 믿는다. 다른 모든 거짓말은 이 큰 거짓말로부터 나온다.
이상하게도 필자는 레베카 브룩스나 제임스 머독 같은 뉴스 코프 사람들이 선한 저널리즘의 가치에 충성 서약을 할 때 진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이것이 그들 신문이 가진 전부라고 믿는다. 이점이 부인을 회사의 구성요소로 만들며 이는 어떤 주요 인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내재된 특성이다. 왜냐면 그 결과가 자기 소멸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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