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들 100여 명이 시내 한복판에서 춤을 췄다. 홍대 앞 클럽이 아니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이었다. 빠른 선율의 음악이 끝나자 선글라스를 끼고 분홍 구두를 신은 한 참가자가 외쳤다. "내 몸은 내 거다. 내 몸에 손대지 마!"
ⓒ프레시안(최형락) |
16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원표 공원에서 '슬럿 워크(Slut walk)'가 열렸다. 슬럿 워크는 캐나다 토론토 경찰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이 창녀(slut)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작했다.
지난 4월 캐나다에는 3000~4000여 명이 "여성은 어떤 옷이든 입을 자유가 있으며, 성폭력의 원인은 여성에게 있지 않다"는 뜻을 알리고자 모였다. 이후 슬럿 워크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으로 퍼져 나갔고, 한국에도 첫 시위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는 "우리 사회엔 성폭력 범죄가 엄청 많은데,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사회가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에 못마땅했다"는 동기를 밝혔다. 꽃무늬 민소매 치마를 입고 나타난 그는 "최대한 슬럿처럼 보이려고 (이런 의상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행사를 처음 제안한 김미경(가명) 씨는 "당시는 고려대 성폭력 사건, 한양대 강사 성희롱 발언 사건, 현대차 성희롱 사건 불거지던 때였다"며 "어떤 사람들은 옷차림이 강간을 유발한다, 남성은 본능적으로 시각에 약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옷차림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며 행사를 제안한 이유를 말했다. (☞관련 기사 : "성희롱도 억울한데, 돌아온 건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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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보고 참가했다는 한 대학생은 "남성들도 자기 안의 소수자성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격 부드럽고 정이 많고 예쁜 걸 좋아하는 남자인 친구가 있다"며 "그런데 사람들은 '넌 남자애가 왜 그러느냐'라고들 해서 스트레스받더라"며 "개인의 특성을 성별과 연결 지어서 사회가 규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20대 후반 남성은 야한 옷차림에 치중하기보다는 반(反)성폭력 운동에 초점을 맞춰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했다. 그는 "어떤 남성이 전 애인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것에 충격받아 도끼와 가스총으로 위협하고 납치와 강간을 했는데 법원에서 감형받았다"며 "법원은 그 여성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사실 때문에 가해자가 화났다고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가 잘못했는데 여성 탓이라고 하는 현실에 분노한다"며 "슬럿 워크는 옷 야하게 입기 운동만은 아니다. 나처럼 남성 참가자도 많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원표공원에서 덕수궁 대한문까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 자리에는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도 있었다. 성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누구나 돈을 가지고 있으나, 돈을 갖고 싶다고 해서 (남의 돈을) 훔치는 건 잘못이다"며 "자극받는 건 그렇다 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말이 안 된다. 훔치는 순간 범죄가 된다"고 말했다.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앞으로 이동해 거리시위와 뒤풀이 공연을 했다. 행사에 앞서서는 '고려대 성폭행 사건'에 대응해 고려대를 행진하기도 했다. 슬럿워크 준비모임은 이날 모은 후원금을 '고대 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 등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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