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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민주노조 깃발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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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에 민주노조 깃발 솟았다

삼성노동조합, 13일 설립 신고서 제출

삼성 그룹에 민주노조 깃발이 올랐다. 삼성에버랜드 노동자 4명은 12일 오후 7시 삼성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열고, 위원장 선출 등 노동조합 설립 절차를 마무리 했다. 이들은 13일 오전 고용노동부에 삼성노동조합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13층 회의실에서 열린 삼성노동조합 창립총회에는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윤난실 진보신당 부대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등 다양한 이들이 함께했다.

"삼성 노동자도 노동자다"

이날 총회에서 박원우 씨가 위원장으로, 조장희 씨가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또 삼성일반노조의 김성환 위원장과 임미영 사무국장이 삼성노동조합 지도위원을 맡게 됐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왜 삼성에 노조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삼성 노동자도 노동자"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삼성에버랜드에서 10년 이상 일했으며, 삼성이 노동조합 대신 허용하고 있는 노사협의회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기자가 과거 박 위원장 등이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났을 때, 이들은 "촌스럽지 않게, 당당하게, 즐겁게 활동하겠다"라는 말을 거듭했었다. 이들을 지원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역시 "삼성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여러 번 강조했었다. 삼성의 영향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라는 게다. 이런 정서는 이들의 활동이 첫 결실을 맺은 13일까지도 이어졌다.

삼성에버랜드, '알박기' 용도로 '꼭두각시' 노조 설립

삼성노동조합은 초기업 노조를 표방한다. 특정 계열사만이 아닌 삼성 관계사 전체를 포괄하는 노동조합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이날 총회에 참가한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은 3년 전부터 노조 설립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1월에는 사내 전산망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리는 글을 실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이달 초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한다는 목표를 갖고 활동해 왔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수가 생겼다.

회사 측이 선수를 친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6월 20일 삼성에버랜드 노동조합이 용인시청에 설립신고를 냈고, 같은 달 23일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신고된 조합원수는 4명이었다. 조합원 수까지 삼성노동조합과 똑같다. 지난달 설립된 삼성에버랜드 노동조합은 이번에 생겨난 삼성노동조합 활동가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종의 '알박기'라는 게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에는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이 있다. 교섭요구 공고기간에 교섭참가를 희망하는 다른 노조가 없을 경우, 기존 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되고, 향후 2년간 교섭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그리고 지난달 생겨난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회사 측에 이미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지난달 생겨난 삼성에버랜드 노조는 향후 2년 동안 독점적인 교섭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삼성에버랜드 노조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누가 설립을 주도했는지, 조합원은 어떤 이들인지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노동계는 이 노조가 사실상 회사 측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노조라고 판단한다.

언론 통해 존재 알려진 '유령노조', 민주노조 활동가들은 뒤통수 맞다

정부도 비슷한 판단이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을 겨냥해 "회사측이 노조 설립, 운영에 개입할 경우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장관은 "삼성이 그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왔지만, 복수노조 시행으로 이젠 노동조합과 동반해서 경영해야 하는 여건이 됐다"며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삼성노동조합을 설립한 이들도 교섭요구 공고기간이 지난 뒤에 나온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삼성에버랜드 노조에 대해 알게 됐다. 3년 동안 민주노조 설립을 준비해 온 이들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박원우 삼성노동조합 위원장 등은 회사 측에 삼성에버랜드 노조에 대해 문의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했다. 관련 행정기관에 문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지난달 갑작스레 생겨난 삼성에버랜드 노조에 대해 관련 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한 상태다.

삼성 그룹 전체를 포괄하는 노동조합

박 위원장 등이 에버랜드 노조 대신 삼성 그룹 전체를 포괄하는 노조 설립으로 방향을 튼 것은 그래서였다. 사실상 회사가 설립한 '알박기' 노조 때문에, 삼성에버랜드에서 민주노조가 교섭권을 갖기 어렵다면, 차라리 삼성그룹 총수를 상대하는 노조를 만들자는 게다. 박 위원장은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과 '알박기' 노조 로 발목이 잡힌 상황에 대해 "노동조합법 개정을 위한 싸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게 교섭만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조합원을 늘리고고, 삼성 노동자들의 권익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게다.

삼성은 전자와 금융, 서비스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사실상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이 지휘하는 하나의 조직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굳이 특정 계열사에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보다 삼성노동조합을 세우는 게 낫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조장희 부위원장은 "삼성의 특정 계열사에 한정하면, 민주노조 설립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계열사마다 이런 생각을 품은 이들이 몇 명씩은 있다. 이들을 조직하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경우, 이 회사에서 23년 동안 일했던 박종태 씨가 지난해 11월 사내 전산망에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고 해고됐다. 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경우,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 다양한 질환을 호소해 왔다. 그리고 최근 법원은 이들 가운데 일부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성노동조합이 이런 흐름을 등에 업을 경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전망이다.

보도 자제 요청한 이유…노동자 납치·감금의 기억

한편, 삼성노동조합을 탄생시킨 산파 역할을 한 삼성일반노조는 앞으로도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삼성노동조합이 생겼으니 삼성일반노조는 이제 문을 닫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삼성일반노조는 어차피 법외노조이므로, 삼성노동조합이 생겼다고 해서 활동을 접을 이유는 없다"라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총회에 참가한 기자들에게 13일 오전 10시까지 관련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과거에 겪은 아픈 사연들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삼성 노동자들이 관련 행정기관에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려 하면, 회사 측에 납치되거나 감금되는 일이 있었다는 게다. 따라서 노조 설립 신고서가 제출되는 순간까지, 회사 측에 보안을 유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 12일 삼성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연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 ⓒ프레시안(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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