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통화하다 보면, 7월 1일만 되면 저절로 삼성에 민주노조가 들어설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오히려 기자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언제 삼성에 노조가 생길까'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인가요"라고요. 언론이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삼성에선 어떻게 지금까지 '무노조 경영'이 관철될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삼성은 노동자들에게 워낙 잘해주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 필요가 없다"라고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라고요.
하지만 그게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젠 누구나 압니다. 심지어 법원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반(反)인권적인 노동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항한 고(故) 김주현 씨의 사연 역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적어도 언론 보도를 챙겨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삼성은 노동자들에게 워낙 잘해주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 필요가 없다"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성 노동자들은, 삼성이 광고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닙니다. '일하다 다치고 죽으면 버려지는 1회용 종이컵'일 뿐입니다. '복수노조 시행'에 그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기자들은 왜 삼성전자, 삼성SDI 등에서 47명의 노동자가 백혈병, 뇌종양, 그리고 온갖 희귀 암으로 고통당하고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까요.
▲ <과학동아> 1991년 6월호에 실린 삼성 이미지 광고. 잠자리에 들기도 한참 늦은 때인 새벽 3시에 커피 타임을 가질 정도로 반(反)인권적인 노동에 시달린 삼성 직원들이 반도체 성공 신화의 진짜 주인공이다. ⓒ프레시안 |
삼성이 노동조합 대신 허용한 노사협의회는, 직원들이 마구잡이로 잘려나가도 그저 꿀먹은 벙어리일 뿐입니다. '삼성 노조'에 그토록 관심이 뜨거운 기자들이 왜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을까요.
물론, 노동조합이 생긴다고 해서 삼성의 온갖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편에 서지 않고 회사의 의도에 놀아난 사례는 아주 흔합니다. 또 노동조합이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지 못한 사례 역시 흔합니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생긴다면, 그것은 삼성의 수많은 문제를 푸는 첫 걸음일 뿐입니다. 삼성 노조를 만든 노동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두 번째 걸음은 달라집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에 따라 삼성을 둘러싼 온갖 문제들이 제대로 풀릴지 여부도 정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 노조의 의미를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삼성은 그동안 자신들의 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관·법조·언론계에 광범위한 불법 로비를 해 왔습니다. 비상식적인 '무노조 경영'이 관철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건희의 족벌 경영에 맞서 삼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노사 간의 힘의 대결이 아닙니다. 이건희 족벌을 비호하는 이 모든 부정한 사회세력과의 싸움입니다.
복수노조 시대가 왔다고 해서,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듯이 삼성노동조합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지 못했던 것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복수노조가 시행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이유는 법이 바르게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담당자들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에 민주노조가 생긴다면, "태양 아래 곰팡이들이 말라 죽듯이" 이런 부패 관료들은 설 자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존중하는 경영, 인권과 환경을 생각하는 경영은 이제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지난해 발효된 ISO 26000에 규정된 내용입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기업은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게끔 돼 있습니다. ISO 26000 총괄책임자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짓밟는다면, 유럽에 수출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제품을 고를 때 가격뿐 아니라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는 생각이 뿌리내린, 선진국일수록 이런 소비자가 많습니다.
▲ 1995년 19살에 삼성전자 LCD 기흥 공장에 입사했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 2005년 수술을 받을 당시 의사는 "종양 크기로 보니 7, 8년쯤 됐다"고 했다. 수술 받던 당시로부터 7년 전은 한 씨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때였다. ⓒ프레시안(김봉규) |
고(故) 김주현 씨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삼성 계열사의 장시간 노동이 쟁점이 되자, 삼성수뇌부는 얼마 전에 지침을 내렸다고 합니다. 잔업, 특근 시간을 제한하라는 지침입니다.
문제가 곪을대로 곪아서 터지고, 썩은 내가 온천지에 진동하고서야, 뒤늦게 허둥지둥하는 모습. 이게 '무노조 경영'을 고집해온 삼성의 실체입니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있다면, 적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분들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지금까지도, 아무런 사과가 없습니다. 반성하는 기색도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그들이 변할까요. 그들은 저절로 바뀌지 않습니다.
삼성의 성장은 이건희의 경영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정치권력과의 유착에 따른 결과입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 등을 통해 자세히 밝힌 내용이기도 합니다. 비리와 불법 행위가 자신들의 성공 이유라는 것을 잘 아는 삼성 수뇌부가, 노동자 몇 명이 죽는다고 바뀔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 그리고 부정과 비리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있을 때만, 그들은 마지 못해서 바뀝니다.
그리고 삼성 노조 역시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무노조 경영'을 가능하게 했던, 썩은 관료 집단, 썩은 정치권, 썩은 언론과의 싸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제게 전화를 거는 기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삼성 노조가 언제 생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무노조 경영'을 가능하게 했던 부패의 사슬이 언제 끊어지는지입니다.
▲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故 황유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반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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