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서 새롭게 발견된 번역오류를 정부가 인정했다. 외교통상부는 "한국과 유럽연합은 한·EU FTA 협정문 한국어본 상의 일부 사항을 정정하기로 7일 외교공한(note verbale)을 통해 합의했다"고 8일 밝혔다.
이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한·EU FTA 협정문 비준동의안을 수정하기로 한 것. 이에 따라 오는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틀어지게 됐다. 외통위는 수정된 협정문을 법안심사소위에서 재심사할 방침이다.
정부가 이번에 수정하기로 한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한·EU FTA 협정문의 부속서7-가-4의 건축설계서비스 분야의 '추가적 약속'에 담긴 "5년의 실무수습을 한"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했다.
또 같은 양허표의 은행 및 기타금융서비스(II.7.B) 신용평가서비스 상 시장접근 제한에 기재된 "may not"의 한국어본 번역을 "그러한 서비스의 공급을 금지하가나 제한하지 아니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음"에서 "그러한 서비스의 공급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아니함"으로 고치기로 했다. 또 EU측 서비스 양허표(Annex 7-A-1, 7-A-2, 7-A-3) 한국어본 상 서비스 분류번호(CPC) 기재사항 가운데 "CPC 86291"를 "CPC 86219"로 고치기로 했다.
한국어본 EU 상품 양허표(Annex 2-A) 상 품목명 기술 가운데 CN 0811 1011의 "설탕 100분의 13 이하 포함"을 "설탕 100분의 13 초과 포함"으로 고치기로 했다.
이는 모두 송기호 변호사가 발견한 오류들이다. 당초 정부는 송 변호사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았으나, 송 변호사가 정부 논리를 재반박하자 입장을 바꿨다. 송 변호사의 지적에 대한 정부의 반박이 오류였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번 번역 오류 사태는 송기호 변호사의 지난달 21일자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최초로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오류를 인정하지만 협정문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까지 비판에 나서자 입장을 바꿨다. 최근 새롭게 확인돼 다시 수정하기로 한 번역 오류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비판적으로 보도해서 눈길을 끌었다.
<조선일보>는 8일자 기사에서 "1년 예산이 1조7444억 원에 이르는 외교부에서 송 변호사처럼 '열정'을 가진 외교관을 한 명도 양성하지 못하는 것은 운영의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실린 다른 기사에서는 "1년 예산 120억 원에 외교관 154명을 보유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민간 변호사 1명에게 난타(亂打)당하고 있다"며 "외교부 전체가 '신뢰의 위기'를 맞은 듯하다"고 지적했다.
과거 한·미 FTA 협상 당시, 또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논란 당시, 송 변호사의 지적을 철저히 외면하고 정부를 지지했던 매체로서는, 흥미로운 변화다. 다만 이 신문은 협상문을 엉터리로 번역하는 정부를 질타했을 뿐 FTA 자체에 대한 입장까지 바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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