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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하고 침 뱉는 '진상 고객'…"경륜장은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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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하고 침 뱉는 '진상 고객'…"경륜장은 전쟁터"

"술 취한 고객이 옷 벗고 난동 부려도 여직원 탓?"

"한 손에는 검은색 수성 사인펜을 든 사람들이 뚫어져라 벽 전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와 타블로이드 신문 크기의 책자를 번갈아 보고 있다. 때론 무언가를 적기도 하고 때론 입으로 사인펜을 물어뜯기도 한다. 어떤 중년의 남자는 아예 바닥에 앉아 책자를 보며 고심한다. 또 다른 사람은 색색의 형광색으로 체크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다. 간혹 할머니들도 뚫어져라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대형 모니터 화면에 갑자기 '30'이라는 숫자가 나오더니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방송에서는 '마감 30초 전입니다', '마감 20초 전입니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경륜장 지점에 모인 고객들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초조하게 창구로 몰려든다. 창구에 돈과 '표'를 넣는다. 창구 안쪽에서는 분홍색 옷을 입은 여성 발매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이 돈과 '표'를 처리하고 있다."
(공공운수연맹 블로그)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일단 5만 원 받는데…'먹튀 고객'에 울상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이 말하는 주말 경륜장 풍경은 '전쟁터'였다. 베팅 시간이 오면 고객들은 매표소 앞에 길에 줄을 선다. 이때부터 초를 다투는 전쟁이 시작된다. 내야 할 돈보다 더 적게 내는 고객, 경주권만 받고 돈 안 내고 도망가는 고객, 뒤에서 소리 지르는 고객까지…. 분홍색 옷을 입고 '친절하게' 표를 팔아야 하는 이들은 진땀을 흘린다.

고객들은 기다릴 시간이 없다. 경주권을 사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고성과 욕설, 폭력을 불사한다. 발매원들은 어쩔 수 없이 계산이 맞지 않아도 경주권을 발행한다. 문제는 못 받은 돈을 고스란히 발매원들이 채워 넣는다는 점이다. 경륜‧경정장을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발권 취소'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하루 일당 5만 원가량을 받는 발매원들은 작게는 몇천 원에서 많게는 몇십만 원을 '먹튀 고객'들의 뒤치다꺼리 비용으로 낸다.

'진상 고객'의 진수는 고객들이 돈을 많이 잃는 오후에 시작된다. 공공운수연맹은 "경륜‧경정장은 돈이 오가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쉽게 드러나는 도박장"이라며 "고객들은 발매원들을 자신의 돈을 가져간 사람, 혹은 화풀이 대상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돈을 잃고 폭력적으로 변한 고객들이 얇은 유리 칸막이 너머에 앉아서 '돈을 받고 있는' 발매원들에게 언어폭력은 물론이고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것이다.

발매 창구로 우산 찔러 넣고, 침 뱉고, 손 만지고…

발매창구 구멍으로 우산이나 걸레 자루 등을 찔러 넣어 발매원들을 위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커피를 쏟고 침을 뱉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여자 손을 잡아야 돈을 잘 딴다"며 발매원들이 구매표를 건넬 때 손을 만지는 남성도 있다. 주로 40~60대 남성인 고객들을 상대하는 여성 발매원들은 "신체 접촉을 당하거나 창구로 음담패설을 들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져도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문제 손님'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여성 노동자들을 질타하는 쪽을 택했다. 발매원들이 불친절하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한 여성 발매원들은 "심지어 지점에서 술 취한 고객이 옷을 벗고 난동을 부리는 것도 공단 측은 발매원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며 답답해했다.

발매원은 대부분 월급 60~100만 원을 받고 일하는 40~50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다. 이들이 하루에 파는 티켓 수만 하루에 약 1300여 개. 단순반복 작업은 직업병을 불렀다. 공공운수연맹은 3일 "경륜‧경정장 발매원 19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4%가 적어도 한군데 이상의 신체부위에 근골격계질환 관련 통증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국민체육진흥공단, 노조 가입한 발매원 해고"

만연한 성희롱과 신체‧언어폭력 등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 한 이들은 2007년 12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노동조합이 생긴 지 4일 만에 지도부를 포함한 8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맞섰다. 해를 거듭하면서 해고자는 15명으로 늘었다. 한 해고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집에서는 도저히 출퇴근할 수 없는 원거리로 발령을 받고, 아무 문제 없이 수년간 일해온 사람이 세 번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아 해고됐다"며 억울해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공단을 상대로 소송과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노숙농성을 한 지도 어느덧 120일이 넘었지만 공단 측은 노동조합 측의 교섭 요구에 응하는 대신 용역 직원을 고용했다. 3일부터는 릴레이 단식농성이 추가됐다. "왜 이렇게 힘들게 싸우는가"라는 질문에 김성금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지부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공인한 도박장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일하는 사람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억울하게 해고된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가고, 비록 도박 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발매원들이 조금만 더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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