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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곧 해고… 정부는 말로만 '저출산'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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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곧 해고… 정부는 말로만 '저출산' 타령"

워킹맘 42.6% "복지 혜택 없이 임신 또는 출산 후에 곧 바로 퇴사"

임신 6개월 차에 접어든 직장인 유지혜(가명‧30) 씨는 얼마 전 회사에서 '은근한' 퇴사를 권유받았다. 회사는 유 씨에게 "임신한 직원에게 업무를 주기 부담스럽다"며 "3월에는 새 사람을 구해 인수인계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나올 것이냐"고 물었다. 유 씨는 "나는 그만둔다는 말도 안 했는데 사장이 새 사람을 구하려고 해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희원(가명‧30) 씨는 임신한 사실을 아직 회사에 알리지 못했다. 김 씨는 "우리 회사는 임신한 직원을 당장 그만두게 만들 회사"라며 "배가 나올 때까지는 가능하면 임신한 사실을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아이를 낳고 한 달만 쉰 동료는 회사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출산 전후로 석 달을 쉬었던 동료는 곧바로 잘렸다.

기업 80%는 육아휴직, 출산휴가 제대로 안 줘

현행법상 여성 노동자의 혼인·임신·출산은 퇴직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임신‧출산한 여성 노동자에게 육아휴직 1년, 출산휴가 90일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한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쓰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휴가를 쓴다고 할지라도 복직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제조업 회사에 4년째 다니는 김지연(가명) 씨는 며칠 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복직할 때 지금 일하는 자리에 돌아오는 것은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임신 6개월째인 김 씨는 "주변 상사와 동료가 '회사에서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휴직 쓰고 돌아오면 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겁을 줬다"고 말했다.

김 씨와 같은 임신한 노동자들은 "회사가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하거나 '후임에게 인수인계는 언제 할 것이냐'고 묻는 식으로 은근슬쩍 눈치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임신과 출산 뒤 아무런 복지 혜택 없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임산부를 위한 포털사이트 '임산부닷컴'이 지난달 회원 35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에서 아무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임신 또는 출산 후에 곧바로 퇴사했다는 응답자는 42.6%에 달했다"고 밝혔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모두 쓸 수 있는 사람은 20%에 머물렀고, 출산휴가만 쓸 수 있는 사람은 30%였다.

▲ 삼성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출근시간 선택제, 임신휴직 제도, 모성보호실 증설 등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의 모성보호실. ⓒ뉴시스

워킹맘은 빨리 퇴사한다? "퇴사 강요하는 분위기가 문제"

아이를 낳고 나서도 문제다. 기업들이 '일하는 엄마'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 공간 솔루션 제공업체인 리저스가 지난해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의 기업인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올해 워킹맘을 고용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36%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워킹맘의 고용을 꺼리는 이유로는 △워킹맘이 다른 노동자에 비해 업무 몰입도와 유연성이 떨어지고(37%) △추가 자녀 출산계획으로 인해 퇴사 시기가 빠르며(33%) △기술적으로 뒤처지기(24%)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들은 "워킹맘이 기술적으로 뒤처진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연주(가명‧33) 씨는 "처녀‧총각 중에도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사람도 많은 만큼 업무능력은 개인마다 다르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워킹맘 박선희(32) 씨도 "야근을 할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나는 오히려 업무 몰입도가 올라갔다"며 "근속연수가 많은 워킹맘이 미혼 직원들보다 숙련도는 뛰어난 경우가 많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워킹맘이 야근과 회식에 잘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회사에서 오래 뭉그적거릴수록 일을 잘한다고 보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근과 회식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워킹맘'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보다는 '개개 사원'으로 봐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정나리(33) 씨는 "남자 직원들이 아이 때문에 휴가나 조퇴를 하면 그럴 수 있다고 넘기지만, 여직원이 그렇게 하면 대부분 '이래서 워킹맘은 안 돼'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보육시설과 같은 제도만 제대로 마련됐어도 워킹맘이 직업을 포기하는 일은 줄어드리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연주 씨는 "육아휴직도 제대로 안 주는 회사가 허다한데,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만 제대로 시행해줘도 퇴사 시기는 늦춰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킹맘에게 퇴사는 반강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강진아(36) 씨 또한 "퇴사하고 싶지 않아도 회사에서 요구해서 퇴사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올해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47.3%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1.5%보다 낮은 수치다. 정부는 연일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내놓지만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리기가 부지기수인데 이러고도 저출산 타령이냐"는 탄식이 나온다. 강 씨는 "선진국에 워킹맘이 한국보다 많은 이유는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곳을 더 잘 만들어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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