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의 이기적이고 무정한 태도에 화가 납니다. 학관 앞에 주황색 현수막으로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더군요. '학생들. 도와라!' 아주머니들께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서 걸어 둔 저 현수막을 보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나요? 도대체 배워서 뭐합니까?" (홍익대 졸업생)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홍익인닷컴'은 여전히 '외부세력' 논쟁으로 뜨겁다. 일부 홍익대 재학생과 졸업생은 "민주노총이 힘없는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며 "민주노총을 비롯한 외부세력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학교에 대한 이미지를 실추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학교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진보 정당과 민주노총 관계자, 심지어는 연예인까지 가세해 '남의 집안일'에 관여하는 모습이 꺼려진다는 것이다.
▲ 홍익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과 노동단체, 시민이 모여 복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여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하지만 홍익대 사태를 바라보는 외부 여론은 '학습권 보장'과 '외부세력 배제'를 요구해 온 총학생회를 질타했다. 여기에 몇몇 홍익대 동문이 "후배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글을 쓰면서 비난의 화살은 홍익대 학생들에게까지 번졌다. 학생들이 외부 비판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논쟁은 '어른'과 '20대 재학생'의 대립으로까지 비화하는 양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홍익인닷컴을 자세히 살펴보면 총학생회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총학생회가 청소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을 주문하는 재학생도 꽤 많다. 반면에 해고 노동자들의 연대 활동에 비판적인 사람 중에는 졸업한 동문도 있다. '세대 갈등'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88만 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 씨는 "1990년대부터 (학생들 사이에) 운동권에 대한 반감은 늘 있어왔다"며 "특별히 홍익대 학생들이 보수적이거나 비정치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홍대 사태가 유독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여기에 점거라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갈등이 첨예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외부 여론이) 홍익대 학생을 포용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의 반감만 커질 수도 있다"며 "질타하기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투쟁에 결합하게 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의 비판처럼 과연 대다수의 홍익대 학생들은 청소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적대적인가. 만약 연대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면 왜 그런가. 이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홍익대 사태를 바라보는 여론과 홍익대 학생들 사이의 오해는 어디에서 빚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홍익대 주변을 배회하며 무작위로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여론에 상처받았다"
경영학과 4학년인 최정욱(가명) 씨는 "홍익대 학생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목소리에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누가 봐도 청소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게 맞다"며 "하지만 뭘 어떻게 도와야 할지 방법을 모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익대 학생이 비난받는 이유는 홍익인닷컴의 여론 주도자 중에 과도하게 우파가 많기 때문"이라며 "홍익인닷컴은 과잉 대표됐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학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홍익인닷컴에 글을 올리지 않고도 조용히 관심 있게 보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이다.
최 씨는 "홍익대 사태를 둘러싼 논쟁이 세대론으로 번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학생들을 질타하는 동문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는 "동문들도 탁상공론을 펼치기는 마찬가지"라며 "취직한 선배들은 정작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얼마나 저항했느냐"고 일갈했다. '20대는 왜 투사가 되지 않는가'라는 비판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행동하지 않은 제가 비겁한 건 맞는데, 비겁하다고 글로만 욕하고 정작 자신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도 비겁하기는 마찬가지죠. (홍대 사태는) 촛불집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촛불집회에서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촛불 들고 나오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학생들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제적을 당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하거든요."
실제로 홍익대에서 청소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몇몇 재학생은 학생처의 '징계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은 "학교 관계자가 집에 전화를 걸어 '당신의 자식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고 전한다. 학교의 탄압 수위가 높아지면 재학생들은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데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홍익대 아주머니들'은 홍익대 학생이 도와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노동자들의 외부 연대에 긍정적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학생 또한 '아주머니들을 도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주머니'들의 주장이 도의적으로 옳지만, 해결 과정에서 '외부세력'인 민주노총 없이 '내부인'인 학생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자기 학교에서 빚어진 문제'로 생각한다. '이번 사태로 학교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생각하며 이를 다시 '홍익대 학생의 이미지 실추'와 동일시한다.
앞선 두 가지 태도에서 이들이 예비노동자로서의 자신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청소 노동자들을 향한 이들의 시선은 '연대'라기보다는 '인도적인 도움'에 가깝다.
최 씨는 "물론 나도 비정규직이라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내 문제로 와 닿지는 않는다. 대학생은 자신이 졸업하고 청소 노동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 노동자들의 상황이 인간적으로 공감되고 이들을 돕고 싶은 입장"이라며 "청소 노동자 후원 계좌에 소액의 후원금도 입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씨는 "청소 노동자들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하기 부족하므로 민주노총과 힘을 모으는 것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언론에 비춰진 민주노총의 '강성 이미지'가 학생들에게 거부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홍익인닷컴의 한 학생은 "아주머니들이 빨간 조끼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취업을 앞두고 공감된다"
ⓒ프레시안(김봉규) |
사범대 4학년인 안예림(가명) 씨는 처음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을 언론에서 접했을 때 "우리 학교 또 왜 저러나" 싶었다고 한다. 안 씨는 "해고하기 전부터 노동자들의 급여도 적고, 좁은 데서 쉬어야 하는 등 대우가 좋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대학교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게 학생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안 씨는 "사실 기사만 봤을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 막상 학교에 와 보니 플래카드가 죽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며 "심정적으로 동요가 일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가 대화해서 해결할 수는 없느냐"며 "학교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취업을 앞두고 비정규직 입장이 얼마나 불안한지 공감된다"고도 말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비정규직 교사로 들어가거나 학원 강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안 씨는 "학생들은 잠깐 아르바이트로 일할 수 있는데 저분들에게는 청소·경비 일이 생업"이라며 "일반 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을 보면 야근도 밥 먹듯이 하고 박봉이어서 힘든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양쪽 견해를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사태에 관심이 없는 학생도 있다. 전기전자공학과 3학년인 진무성(가명) 씨는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의 해고 사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지만, 굳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싸우는 양쪽의 견해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진 씨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학생들을 불편하게만 하지 않으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예를 들어 화장실에 휴지가 쌓이면 불편할 것 같다"면서도 "학교에서 어느 정도 대체인력을 투입해서 아직 큰 불편함은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앰프를 틀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분들에게도 말할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청소 노동자, 민주노총, 학교 당국, 재학생들에게는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만약에 취업 후 정규직이었다가 비정규직이 되거나 혹은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는데 정규직화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는 "내가 능력이 없거나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어서 그랬다면 이해하겠다"고 답했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무조건 전부 비정규직만 뽑는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사태가 해결됐으면 좋겠지만 양쪽 입장을 들어보지 않아서 선뜻 나서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외부세력에 '힘없는 아주머니들'만 이용당한다"? 청소 노동자 얘기 들어 봤더니… 학생들의 논쟁에 대해 현장에 있는 청소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외부세력'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청소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사실과 다르다"며 "우리 힘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적은 돈을 받고도 그저 열심히 일만 했는데도 해고됐는데요. 우리가 우리끼리 모여서 말하면 학교에서 들어주나요? 우리끼리 힘이 부족하니까 그렇죠. 우리가 선택한 길이에요. 우리가 (외부세력에) 이용당한 게 아니에요. (외부세력은) 우리가 필요해서 직접 불렀어요." 홍익대학교에서 해고된 청소 노동자가 학교 본관 농성장에서 라면을 얻어먹는 '외부세력' 기자에게 김치를 얹어주며 한 말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김치·쌀·라면 등을 바리바리 싸다주고, 함께 밥을 먹으며 시멘트 바닥 농성장에서 밤을 새워준 '외부세력'들은 청소 노동자들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총학생회와 민주노총의 대결구도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재학생의 자생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홍익인닷컴에서 한 홍익대 학생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학교 측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고 가는데도 (정작) 이사장을 비판하는 내용은 오히려 적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학생은 "민주노총이 상위 단위 노조인 이상 노동자들이 (상급 단체와의 관계를 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는 어렵다"며 "여기서 논쟁하며 에너지만 낭비하느니 차라리 그냥 행동에 나서겠다"며 농성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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