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상으로는 비슷하지만,
시간상으로는 파주가 훨씬 멀다.
파주에서 발안으로 오려면 공룡 도시 서울을 관통하거나 우회해서 와야 하니까.
파주에서 베트남인이 왔다.
파주에서 버스 두 번 타고 구파발까지 와서,
구파발에서 전철 3호선 타고 종로 3가까지 와서,
종로 3가에서 전철 1호선 타고 수원까지 와서,
수원에서 버스 타고 발안까지 왔다.
4시간도 더 걸렸다.
멀다.
▲ ⓒ한윤수 |
가까운 데 도와줄 곳이 많을 텐데, 무슨 뻐꾸기 우는 사연이 있길래, 이 멀고 먼 발안까지 달려왔을까?
그의 사연은 체불임금 720만 원을 못 받았지만, 받을 길이 막막하다는 거였다. 쥐뿔이나 뭘 알지도 못할뿐더러, 누가 도와줘야 돈을 받지?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인근 도시의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진정서를 써주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양 노동부에 출석할 때도 그는 혼자였다. 사장님과 대면하기가 겁이 났고, 한국말이 서툴러서 진술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도 한 달 후 감독관이 체불금품확인서를 떼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장님이 벌금만 내고 말았으니까.
그럼 못 받은 내 돈은 어떡하나?
이제 돈 받을 길은 민사소송 밖에 없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할 줄 알아야 하지.
*외국인으로서 민사소송을 하는 건 참으로 어렵다.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 법도 모르고.
누가 도와줘야 하련만, 천지사방 둘러봐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이때 발안이 생각났다.
옛날에 도움 받은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4시간 남짓 달려온 것이다.
나는 한 마디만 말했다.
"도와줄 게요."
머문 시간은 10분밖에 안 되지만 그는 안심하고 돌아갔다.
발안에서 버스 타고 수원까지 가서,
수원역에서 1호선 전철 타고 종로 3가까지 가서,
종로 3가에서 3호선 전철 타고 구파발까지 가서,
구파발에서 버스 타고 파주까지.
파주,
멀다.
*외국인으로서 민사소송 : 만일 우리가 미국이나 캐나다에 노동자로 가서 민사소송을 한다고 가정해보라. 참으로 어렵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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