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조직 구조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친다. 사업본부 수를 줄이고,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부문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경영 부진을 이유로 남용 전(前) 부회장이 물러나고, LG그룹 오너 일가인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을 맡게 된 이후 처음으로 그린 경영 밑그림이다.
LG전자는 BS(Business Solution)사업본부를 폐지하고 AC(Air-Conditioning)사업본부를 AE(Air-Conditioning & Energy Solution)사업본부로 개칭, 사업본부를 기존의 5개에서 4개로 줄이고 사업부 중심의 완결형 체제를 구축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12월1일 자로 단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영어 회의, 영어 보고서…효율 경영의 걸림돌
이번 개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더모트 보든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브래들리 갬빌 최고전략책임자(CSO) 등 외국인 부사장 5명 전원을 해촉한 것이다.
LG전자는 올 연말을 전후해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3명은 계약연장을 하지 않고, 기간이 1~2년 정도 남은 나머지 2명은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남용 전(前) 부회장의 경영방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남 전 부회장은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며 사내 문서를 영어로 작성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임원을 대거 영입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신임 구 부회장은 회사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낭비'라는 입장이다. 우리말로 하면 쉽게 끝날 보고나 대화에 훨씬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는 것. 또 어색한 영어 표현이 의사소통의 왜곡을 낳은 사례도 많았다는 판단이다. 구 부회장은 "꼭 필요한 부서에서만 영어를 쓰면 된다"는 입장이다.
맥킨지와의 결별…"중요한 건 품질과 원가경쟁력"
또 구 부회장은 경영컨설팅 결과를 과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과거 LG전자는 유명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의 주요 고객이었다. 매년 맥킨지에 지불하는 컨설팅 비용만 약 300억 원대로 알려졌다. 또 맥킨지 등 유명 컨설팅회사 출신 임원도 대거 영입했다.
하지만 구 부회장은 취임 직후 맥킨지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번에 해촉 결정이 내려진 외국인 임원 중에도 맥킨지 출신이 여럿 포함돼 있다.
구 부회장은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경쟁력의 핵심은 품질과 원가경쟁력" "마케팅보다 생산과 연구개발을 중시해야 한다" 등의 메시지를 여러 번 강조했다. 전임 남용 부회장은 경영컨설턴트들의 조언대로 마케팅에 치우쳤는데, 그 결과가 스마프폰 경쟁에서의 낙오라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LG전자는 지난 3분기에 1852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연결 기준으로 실적 집계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처음이다. 휴대폰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한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3분기 휴대폰 부문의 적자는 3038억 원이다. 다른 부문에서 거둔 성과로도 휴대폰 부문의 적자를 덮을 수 없었다.
구 부회장의 결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최근까지 유행했던 경영방식, 요컨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 컨설턴트들이 득세하고 기술보다 마케팅에 치중하는 방식과의 결별을 뜻한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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