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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1톤 모아봐야 10만원, 그나마 고스란히 병원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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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1톤 모아봐야 10만원, 그나마 고스란히 병원비로

'시급 200원' 재활용품 수거 노인들의 하루

"관악구에는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고시촌이 있어서 폐지가 많이 나오거든요. 요즘은 로스쿨 때문에 고시생이 줄어들면서 더 경쟁이 치열해졌어요. 재활용품을 줍는 어르신들이 관악구에만 1000명은 되거든요."

초겨울 바람이 매섭던 날, 서울시 관악구 삼성동(옛 신림6동과 10동). 윤창일(70)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경사가 급하고 폭이 좁은 계단이 놓여 있었다. 계단을 만나자 길을 안내하던 오늘연구소 이봉화 소장의 설명도 잠시 뚝 끊겼다. 눈이 오면 건장한 성인도 미끄러지기 십상일 것 같았다. 계단 아래로는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곧이어 리어카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양옆으로는 2층짜리 무허가 건물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현관 앞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느릿느릿 신문지를쌓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시급 200원, 세 시간 일해야 라면 하나

▲ 눈이 오면 건장한 성인도 미끄러질 것 같은 계단 아래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사람이 보인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윤 할아버지는 작년 가을부터 폐지를 주웠다.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에 15시간씩 일한다. 그렇게 주워오는 폐지는 하루에 30킬로그램(kg). 고물상에서 맞바꾸면 3000원을 쥘 수 있다. 한 달에 버는 돈은 10만 원이 채 안 된다. 그나마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나갈 채비를 꾸린다. 폐지를 줍는 사람이 워낙 많은 탓에 수시로 확인하지 않으면 금세 경쟁자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할아버지는 점심은 항상 라면이다. 폐지를 판 돈으로 동네 시장에서 15개에 9900원짜리 라면을 사 들고 온다. 라면 하나에 660원 꼴이다. 할아버지가 평균 꼬박 세 시간 넘게 일해야 라면 하나를 살 수 있다.

온종일 동네를 빙빙 맴돌고도 아무것도 못 주워 올 때도 있다. "허구헌 날 그 자리만 다니니 낮에 가면 없고 밤에 가야 몇 개 주워온다"는 것이 아내 조영자 할머니(69)의 설명이다. 줍는 사람은 널렸다. 몸이 노쇠한 탓에 허탕만 치기 일쑤다. 그래도 가끔 "할아버지 여기서 (폐지 수거) 하세요?"라고 물어두었다가 나중에 일부러 불러서 폐지를 주는 동네 이웃이 제일 고맙다.

한 달 번 돈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할아버지가 폐지를 주우러 멀리까지 못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거동도 불편한데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당뇨와 풍증을 앓고 있다. 지난달에는 동네에서 쓰러져 응급실까지 다녀왔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주민이 집까지 할아버지를 모셔왔다.

▲ 윤창일 할아버지. 할아버지·할머니가 의료비를 감당하려면 한 달에 폐지 1000kg을 모아야 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쓰러진 걸 데려다 무릎에 앉혀봤는데 고개를 못 들어. 설탕물을 타다가 입에 넣어주는데 삼키지를 못하고 흘리더라고. 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겠어."

아내 조영자 할머니(69)의 설명이다. 할머니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할아버지를 위해 아직도 설탕물을 담아 찬장에 고이 모셔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활하면서 제일 지출이 많은 쪽은 병원비다. 할아버지가 두 달에 한 번 당뇨치료를 받을 때 10만 원을 쓰고, 할머니도 풍기가 있어서 일주일에 3~5번은 침을 맞는다. 침 한 번에 1500원. 한 달에는 2~3만 원, 고혈압 약값은 한 달에 1만3000원. 다 합치면 의료비만 한 달에 10만 원이다. 종이 무게로 따지면 무려 1000kg을 모아야 한다. 할아버지가 한 달 동안 버는 돈이 고스란히 의료비로 쓰이는 셈이다.

할아버지도 풍기가 있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통역사다. 기자가 찾아가니 할아버지가 몇 마디를 건넸다. 할머니는 "방이 따숩다"는 말을 전한다. 방은 궁둥이를 붙이고 있기에 약간 차가운 온도였다. 할머니는 평소에는 가스비 때문에 이 정도도 못 튼다고 말한다.

정부 지원은 자식 있어서 안 되고, 부부라서 깎이고

"눈물이 다 나. 너무 팍팍하니."

할머니는 매달 노령연금 14만4000원을 받는다. 개인은 9만 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 부부면 20% 감액이란다. 아들이 부쳐주는 돈까지 합하면 두 부부의 생활비는 한 달에 40여 만 원. 할머니는 "도저히 생활 유지가 안 돼서" 동사무소에 기초생활보장수급을 받으러 가봤다가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내가 거짓말은 못 하거든. 솔직히 큰아들한테 돈 받는다고 했더니 안 된디야. 오죽하면 내가 이 나이에 동사무소 직원 앞에서 서럽게 울었겄어. 그런데 울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니 야속하기만 하데."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작은아들은 대학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고, 막내아들은 실직했다. 딸에게도 손 벌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큰 아들이 다달이 부쳐주는 25만 원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오늘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관악구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 127명 중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11.8%(15명)에 불과하다. 대개는 자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관련 기사 : "사회적기업이 재활용품 수거 노인 생계 위협") 폐지 수거 노인 중에는 이혼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권자 자격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식과 호적상 분리돼 있어도 그렇다.

엥겔계수 20%는 고소득층? 극빈곤층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

할머니에게 장은 일주일에 몇 번 보느냐고 물었더니 아예 안 본단다. "뭐 사다 해먹을 수 없어서"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2~3000원을 들고 간식거리를 산다. 고구마 3000원 어치를 살 때도 있고 강냉이 2000원 어치를 살 때도 있다. 많이 살 때는 1만 원어치도 산다. 한 달 식비는 5만 원. 고기는 안 먹다가 명절에 아들 올 때만 산다. 평소 식사 메뉴는 쌀과 김치, 김치찌개다.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엥겔계수도 이 노부부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계의 총소비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계수가 20% 이하면 일반적으로 상류층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노부부의 한 달 소득 40만 원 중에 식비는 7만 원. 엥겔계수는 20% 정도다. 이처럼 엉뚱한 결과가 나온 까닭은 엥겔계수가 '아무리 가난해도 기본비용인 식비는 줄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도로 빈곤하면 먹을거리조차 부실해진다.

할머니는 "그래도 할아버지보다는 내가 몸이 괜찮잖아. 세대주 하면 (정부에서) 희망근로 주려나 몰라서 바꿔 놓으려고"라며 다부지게 말한다.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무릎이 안 좋아 장애인 4급 판정을 받았다.

젊어서는 공공근로, 나이 들어서는 다시 폐지 수거로

▲ 관악구의 한 고물상. ⓒ프레시안(김윤나영)

윤인숙(59) 씨는 '그나마 젊은' 탓에 다른 재활용품 수거 노인보다 일자리 기회가 더 열린 편이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희망근로'에서 청소 노동을 하다가 계약이 만료되면 폐지 줍기를 반복한다. 청소 노동자였을 때는 한 달에 80만 원을 벌었다. 그마저도 자리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 윤 씨가 현재 버는 돈은 한 달에 50여 만 원. 아침 9시부터 밤 11시, 12시께야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데도 그렇다. 이봉화 소장은 "재활용품 수거 노인은 대개 공공근로를 하다 일자리를 잃으면 여기로 흘러들어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옥화(61)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 씨는 오전 10시에서 밤 11시까지 재활용품을 주우러 다닌다. 그렇게 모아 나른 재활용품 무게만 하루에 100~150kg. 하지만 박 씨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한 달에 3~40만 원이다. 재활용품 수거량에 따라 수입은 불규칙하지만 하루에 1~2만 원 정도 번다.

윤창일 할아버지에게 가장 큰 지출이 의료비였다면 이들에게 제일 큰 걱정은 난방비다. 무허가촌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그보다 2.5~3배 비싼 LPG가스를 쓰기 때문이다. LPG가스는 20kg에 3만6000원이다. 아껴 써도 5일이면 떨어진다. 박 씨는 경험상 "겨울이면 한 달에 가스비만 13만 원이 나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가스비를 못 내서 두 달 동안 가스가 끊겼었지만, 보일러를 너무 안 틀어도 문제다. 갑자기 한파가 닥친 11월 "보일러를 하도 안 틀다가 동파가 돼 수리비로 15만 원을 날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준 게 없으니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

▲ 지난 3년 동안 추석날 딱 하루 쉬었다는 박옥화 씨가 손이 성할 곳이 없다며 구부러진 관절을 보여주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그렇다고 해서 박 씨에게 의식주 문제나 의료 문제가 덜하지는 않다. 조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박 씨도 장을 안 본다. "주워 먹고, 누가 줘서 먹고, 조금씩 사 먹기 때문"이다. 박 씨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보통은 라면을 끓여 먹다가 질리면 가끔 4~5000원짜리 식사를 사 먹는다.

하지만 당장 들어가는 보일러 수리비 때문에 병원은 뒷전이다. 박 씨는 "이가 아픈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안 간다. 겨울이 오면 관절도 아프다. 특히 다리에 쥐가 많이 나지만 박 씨는 "병원 갈 능력이 없어서 아파도 못 간다"고 잘라 말한다. 고혈압도 있다. 그는 매일 일한다. 지난 3년 동안에 추석날 딱 하루 쉬었지만 아무리 벌고 또 벌어도 수중에 남는 돈은 없다.

윤 씨는 무보증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월세 15만 원을 낸다. LPG 가스비는 한 달에 20만 원. 수도, 전기료가 5만 원, 민간보험료가 15만 원이다. 옆에서 누군가가 "무슨 보험비를 그리 많이 내느냐"고 핀잔하자 윤 씨는 "언제 아파 쓰러질지 모르는데 병원은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의료, 난방까지 '정부가 해준 것이 없으니 나라도 내 몸 챙겨야 한다'는 윤 씨의 설명에 박 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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