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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분신 사태, 갈수록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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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분신 사태, 갈수록 오리무중

야3당 의원도 중재 못한 협상…"문제는 노조 무력화 시도"

1일 경북 구미 KEC 공장 앞. 컨테이너로 입구를 막은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사측 직원과 텐트를 치고 농성장을 꾸린 KEC 노조 조합원들이 마주섰다. 공장 점거 12일째, 파업 138일째를 맞은 공장의 풍경치고는 조용했다.

정적은 이틀 전 불어 닥친 격렬한 싸움 이후의 소강상태와 같다. 사측과의 교섭장에 나온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 지부장이 협상 결렬 이후 곧바로 체포를 시도한 경찰에 저항하다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한 게 이틀 전이었다. 12일 전 공장을 점거한 200여 명의 조합원은 음식물이 떨어져가는 와중에 사측이 온도 조절이 가능한 공장 안을 하루는 덥게, 하루는 춥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이탈자가 늘어나 1일 현재 80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의원들 중재 나섰지만…

김 지부장의 분신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상 조사를 위해 구미행 기차를 탔다. 정치권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 작전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곽정숙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등이 공장을 찾은 날은 하루 전인 10월 31일. 항의 끝에 경찰이 반입을 막고 있던 의약품과 여성용품이 일단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을 검거한 조합원 중 절반이 여성이었지만 경찰은 그동안 생리대와 같은 물품조차 들여보내지 않아 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음식물 반입만은 끝까지 막아, 공장 안의 남성 조합원들은 식사를 양보하고 굶다시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야5당 국회의원들이 1일 구미KEC공장 앞에서 공장 안에서 농성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과세계(이명익)

의원들은 1일 오전부터 사측과 노조의 중재에 나섰다. 실랑이 끝에 홍영표 의원이 공장 내 조합원과 접선했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문 농성장의 KEC 지도부의 연락책으로 나섰다. 이들은 공장 서문의 경비실에 모여 사측과 의견을 나누고 다시 흩어져 조정하길 반복했다. 오후 4시 경 동문을 통해 조합원 56명을 태운 경찰 버스가 빠져나오면서 타협의 실마리를 찾은 듯 했다. 하지만 오후 6시 이정희 대표는 이날 중재에 실패했다고 밝혀 다시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대표는 "노사간 최대한 큰 폭의 합의를 모으려고 애썼지만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며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맡은 책임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물었지만 묵묵부답이다. 이날 공장을 나간 56명 역시 건강상의 이유일 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했다. 조 대표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가세해 철야 농성에 들어간 게 당장 보여진 전부다. 정문 농성장의 조합원들도 답변을 꺼려하긴 마찬가지다. 싸움은 격렬했지만 당장 쟁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 이곳. KEC 사태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타임오프 때문이다?

▲ 사측 관계자와 의원들의 공장 진입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노동과세계(이명익)
KEC의 파업이 시작된 후 언론지상에 가장 오른 말이 '타임오프'였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노조 전임자라는 용어 대신 유급근로면제자라는 표현을 쓰면서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조 활동을 전임하는 인원과 시간의 한도를 정했다. 정부가 타임오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일부 업체에서 단체협약을 인정하지 않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정황이 연출됐고, 이러한 문제가 크게 불거진 곳이 KEC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 조합원들은 이러한 해설에 고개를 젓는다.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비해 미리 사측에 특별교섭을 요청해 6월부터 4차례의 협상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7월 타임오프가 적용된 다음부터는 전임자 문제에 대한 사측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임금협상만을 따로 빼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측의 태도다. 전면 파업이 11년만일 정도로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유지했지만 올해 교섭에서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노조가 6월 5일부터 시작된 경고파업에 이어 6월 21일 전면파업에 들어가자 사측은 부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지금까지 108명을 해고하거나 직위해제했고, 3교대로 돌아가던 공장 라인을 2교대로 전환하고 대체 인력과 신규 직원을 투입했다. 회사의 공격적인 대응에 대치가 길어지면서 파업 동력이 약화되어 갔고, 공장 점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성훈 금속노조 KEC지회 부지부장은 "파업 중에도 회사에 수차례씩 교섭 재개를 요청했다"며 "어제만 해도 2차례 물밑 접촉이 있었지만 사측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중재에 나서면서 다시 대화가 시작됐지만 이마저도 "하는 척"에 불과하다는 게 조합원들의 인식이다.

결국 사측의 급작스런 태도 변화의 본질은 '노조 약화'에 있다는 게 김 부지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회사에서 예전에 비공개로 구조조정 이후 일부 공정을 아웃소싱화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며 "인원을 줄이고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무력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채워진 KEC에서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저항부터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북-구미에서 금속노조 소속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노조는 KEC가 유일하다시피 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의 기업친화적 정책 기조 속에서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타임오프를 빌미로 교섭을 거부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 게 KEC 사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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