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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治水)가 실종된 '위험도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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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치수(治水)가 실종된 '위험도시' 서울

[창비주간논평] 한가위 물폭탄이 마냥 '기후변화' 탓?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인데, 경고가 녹아 있는 희극을 망각했을 경우 그 댓가는 끔찍한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주 전에 발생했던 서울 한가위 홍수는 의미심장하다. '이순신 장군의 현대판 해전'이란 이 해프닝이 다음에는 국가 마비와 도시 붕괴로 재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의 코미디 같았던 서울시의 대응을 돌아보자.

국가상징 광장이라는 광화문광장이 침수되고 마비된 지난 9월 21일 한가위 홍수 때, 서울시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보도자료 배포였다. 내용인즉 '시간당 강수량으로 103년, 3시간 기준으로 500년 빈도의 역사상 최대'의 물폭탄이 습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도자료 귀퉁이에 주석이 달려 있었으니, 9월 하순 기준이다. 폭우나 홍수가 9월에만 발생하는 게 아닐진대, 9월 하순만 따로 떼어내서 비교한 것이다. 언론에 '물폭탄' '사상 최대'라고 도배가 된 후에야 진실은 드러났다.

▲ 지난 9월 21일 추석연휴 첫날에 내린 폭우로 '물바다'가 됐던 광화문 광장의 도로. ⓒ뉴시스

모든 게 기후변화 때문이다?

서울에 내린 비 259㎜/일, 98㎜/시간는 2002년 강릉의 871㎜/일, 1998년 순천의 145㎜/시간에 턱없이 미미한 수준이었다. 기상청에 기록된 서울시의 과거 기록과 비교하면 하루 강수량으로는 10위 밖이었으며, 시간 강수량은 1998년, 1999년, 2001년과 비슷한 규모였다. 특히 서울시는 광화문에 시간당 90㎜가 내렸다고 주장했는데, 기상청 자료로는 71㎜로 확인됐다. 나중에 서울시는 비가 가장 세게 온 40분간의 강수량을 시간단위로 환산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광화문의 배수시설이 75㎜/시간에 맞춰 설계되어 있었으므로, 침수는 설계 또는 시공의 부실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의 종로지역 강우량 198.5㎜/3시간 기록에 대해서는, 국토부의 방식으로 계산했을 경우 200년 빈도라고 해명했다(500년이었던 것이 이틀 만에 300년이 줄었다). 하지만 광화문 인근은 하천의 최상류라서 30분이면 흘러가버리는 곳이라, 3시간 강우량 분석이 필요 없는 곳이다.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가 지지부진하고 가장 악랄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나라라고 평가받는 한국에서, 조금만 강도가 높은 기상현상이 나타나면 기후변화를 거론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기후변화에 무조건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가 식상할 정도다.

기실 광화문광장이 잠기게 된 것은 물샐틈없이 포장해놓고 도시를 이용하는 데 원인이 있었다. 지난해 광장을 조성하면서 인근 도로와 나지(裸地)를 모두 포장했을 뿐 아니라, 화강석 보도블록 아래까지 시멘트로 마감해 물 한방울 흘러들 공간조차 없애버린 것이다. 광화문 앞 흙길을 흙색 시멘트로 포장한 것도 한 예인데, 빗물을 남김없이 하수도에 쓸어넣도록 설계한 셈이다.

그나마 빗물을 빠지게 하는 빗물받이의 간격을 크게 넓히고(20m 이상), 광장변에 설치한 10㎝ 폭의 빗물받이에는 구멍을 아주 작게 만들어서 빗물이 빠지기 어렵게 해놓았다. 이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여행프로젝트'(여자가 행복한 서울 프로젝트) 등과 연관이 있는데, 하이힐이 빠지지 않는 보도를 위해 빗물받이의 간극을 매우 좁혀놓은 것이었다. 또 연결된 하수구의 경우도 광화문 지하도를 피해 C자 형태로 억지로 구부려놓아서 갑자기 불어난 물이 원활히 빠지지 못했다. 때문에 침수는 폭우가 쏟아진 3시 무렵이 아니라, 이미 2시부터 시작됐으며 하수구는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서울시의 눈속임과 날림 대책

흥미로운 것은 홍수가 난 지 이틀째 발표한 서울시의 대책이다. 이상기후에 의한 특별한 재난이었다는데, 불과 40시간 만에 중장기 대책을 내놨다. '하수관거 및 펌프시설의 설계빈도를 현재 10년(강수량 75㎖/시간)에서 30년(강수량 95㎖/시간)까지 상향조정하고, 그것에 걸맞게 토목공사를 벌이겠다'는 내용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계획은 2007년의 '수방능력향상 4개년 계획'의 재탕이었으며, 예산규모로는 그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날림이었다. 실제로는 거의 추진되지 않았던(잘 추진되고 있어서 홍수를 줄여왔다고 홍보해왔던) 내용들을 다시 발표한 것이다.

오세훈 시장 임기 5년 동안 서울시의 수해방지예산은 641억 원(2005년)에서 66억 원(2010년)으로 줄어들었다. 홍제천이나 당현천 등에서 진행중인 인공하천 조성비용에 비하면 5.7% 수준이다(2010년). 따라서 이번 홍수는 시정(市政)에서 수해방지 업무를 퇴출시킨 서울시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홍수 이후 서울시의 대응은 이렇게 뻔뻔함으로 일관했다. 원인을 하늘에서 찾는 무책임에서, 대책은 끊임없는 보도자료 배포를 통한 여론 호도에서.

시민의 눈을 속인 서울시의 행태도 괘씸하지만, 그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수해방지 대책으로 내세운 것은 기껏 하수관거(下水管渠, 여러 하수구에서 하수를 모아 하수 처리장으로 내려 보내는 큰 하수도관) 증설, 배수펌프 설치, 빗물저류장 건설 정도다. 빗물을 땅속으로 침투시키거나, 저장하고 이용하는 시설을 만들거나, 운동장이나 공원의 표고(標高)를 낮춰 홍수를 저류하고 지체시키는 항목들은 아예 없다. 빗물펌프장과 저류지 몇개로 거대도시, 고도로 집적된 서울을 지키겠다는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1962년 7.7%에 불과했던 서울시의 불투수층(不透水層, 물이 침투할 수 없는 면적)은 2002년에 47.1%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홍수기의 유출량은 53만㎥/일에서 302만㎥/일로 약 6배 증가했다. 서울시 면적 중 산악과 하천부지 등 약 40%를 제외하면, 이용이 가능한 공간 중 80%는 포장되어 있다. 그만큼 하수구의 처리부담은 늘었고, 반대로 비가 오지 않는 동안 도시는 가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하로 물이 스며들지 않으니 하천은 마르고 지하수위는 떨어지고 도시는 건조해지는 등 물순환체계가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광화문 침수, 더 큰 재앙에 대한 경고

이론적으로 광화문에 더 큰 규모의 홍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니 지금보다 강우가 적었던 2002년과 2003년에도 광화문사거리 일부가 침수되었는데, 광화문광장의 부실 조성으로 조건이 악화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화문 홍수사태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워낙 광화문이 상징적인 데니까 도로에 물이 찬 것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광화문에서는 주택이나 이런 피해는 없지 않나"라고 했지만, 이는 피해의 심각성이나 해당 지역의 실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이다. 이번 홍수 때, 광화문사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서점에서는 이미 빗물이 새기 시작했다. 상황이 좀더 악화됐으면 인근 건물들의 지하층은 침수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건물 지하에 위치한 배전시설이 손실되면서 송전, 송수, 송풍 등이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정부청사를 비롯한 여러 건물들의 훼손은 국가기능의 마비와 대혼란을 촉발시킬 수 있다. 우리는 서울시가 전기스위치 하나만 내려지면 무용지물이 되는, 나아가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는 취약한 공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장은 빗물받이를 고치고 하수구를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물과 함께 사는 도시로 바뀌지 않는 한 서울의 위험은 극단적으로 커갈 수밖에 없다. 단 한번의 재난으로 도시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비가 내리면 하천과 땅속을 흘러 하늘에 다시 오르는 물의 흐름을 어느정도라도 복원하지 않고서 서울은 앞으로 버티기 어렵다. 하수구를 더 크게 늘려서 자연에 대항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수구에 들어가는 홍수를 줄일 수 있도록 물길을 땅속으로 만들고, 곳곳의 공간들이 물을 담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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