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MS에 맞선 젊은 기업'에서 잇따른 배임·횡령 사건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 개발자인 이찬진 현 드림위즈 대표가 지난 1990년 세운 한글과컴퓨터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다. 그러나 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위기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개인용 컴퓨터(PC) 사용자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아래아한글'가 지닌 상징성 덕분에 첫 번째 위기는 무사히 넘겼다. 당시 정부와 국민은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오피스 제품군에 맞선 사례라는 점이 이런 운동에 힘을 실었다.
한글과컴퓨터는 지난 2000년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에게 인수되면서 경영난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IT벤처 거품에 기댄 성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이 회사는 웨스트에베뉴, 티티엠, 넥스젠캐피탈, 서울시스템 등으로 대주주가 교체됐으며, 지속된 자금난과 경영갈등으로 지난 2003년에 프라임그룹에 매각됐다.
이 무렵, 회사 경영이 다시 안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사건이 터졌다. 회사 대표의 횡령 사건이다. 한글과컴퓨터는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지난해 7월 셀런에이치에 인수됐다.
하지만 문제가 많았다. 셀런에이치가 빚을 내가면서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다. 한글과컴퓨터의 막대한 현금 유동성을 이용해 대주주의 자금난을 해소하려는 의도였다. 셀런에이치 전 대표 역시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결국 한글과컴퓨터는 상장 폐지 직전까지 내몰린 끝에 지난 27일 밤 소프트포럼·큐캐피탈파트너스에 인수됐다. 한마디로 기구한 역사다.
"어지간해선 안 망할 회사. 그런데 왜?"
▲ 올해 초 한글과컴퓨터가 마련한 '한컴오피스2010' 출시 행사. ⓒ뉴시스 |
실상은 반대다. 한글과컴퓨터는 비슷한 규모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갖지 못한 자산을 갖고 있다. 높은 지명도, 국민의 애정 등이다.
사업 구조는 더 탄탄하다. SI(System Integration, 시스템 통합) 사업의 경우, 중소기업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선다. 대기업의 가격 후려치기에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글과컴퓨터처럼 독자적인 제품을 갖고 있는 경우는 입장이 다르다.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다. 잇따른 악재에도 한글과 컴퓨터의 영업이익률이 30%대를 기록했던 이유다.
게다가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아래아한글'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국내 공공기관은 지금도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보다 한글과컴퓨터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다. 매년 공공기관에서 생기는 수요만으로도 안정적인 이익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인건비 외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징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해 왔다는 말이다.
재무적인 눈으로 보면, 한글과컴퓨터는 대형 건물 소유주와 닮았다. 넉넉한 현금이 정기적으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어지간해서는 망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알짜 회사가 왜 이토록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됐을까.
제품 개발은 뒷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낳은 기구한 역사
안정적인 현금 유동성. 기업 경영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이런 장점이 오히려 덫이 됐다. 이 회사를 소유한 대주주들은 '아래아한글'을 아끼는 소비자를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금고에 꼬박꼬박 쌓이는 현금에만 눈독을 들였을 뿐이다. 잇따라 터진 배임·횡령 사건은 그 결과다.
한때 젊은 도전 정신의 상징으로 통했던 한글과컴퓨터는 이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망가진 한국의 IT벤처기업의 상징에 더 가까워졌다. 이런 이미지를 씻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숙제를 새로운 경영진이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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