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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내부고발자 노이로제?…이지문 중위 복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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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내부고발자 노이로제?…이지문 중위 복직 거부

"반부패 활동, 삼성 안에서 하고 싶었는데…"

삼성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김용철 변호사 때문에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심하게 망가졌다"는 게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삼성'이라는 이름에서 '부패', '비리'를 떠올린다. 비리에 가담하지 않은 평범한 삼성 직원들로서는 억울한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억울함을 싹 씻어낼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삼성은 이런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비리 삼성'이라는 말을 계속 들어도, 항변하기 어렵게 됐다.

'군부재자 투표 부정' 고발한 이지문 중위, 삼성 복직 희망…삼성은 거부

▲ 이지문 씨의 내부고발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당시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은 이 사건을 소극적으로 다뤘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큰 파문을 낳았고, 병영 내 민주주의 확대를 향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동아일보
사연을 설명하려면, 먼저 '이지문'라는 이름을 꺼내야 한다. 18년 전인 1992년, 현역 중위 신분으로 군 내부의 부정투표를 고발했던, 이지문 씨다. 여느 내부고발자와 마찬가지로, 이 씨 역시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었다. 그는 근무지 무단이탈 혐의로 구속됐고, 이후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3년 동안의 재판 끝에 예비역 중위 신분을 회복했지만, 민간기업체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시의원 등을 거쳐 반(反)부패 시민운동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 부대표, 국민권익위원회 청렴교육 강사 등으로 활동한다.

이런 이 씨가 삼성에 들어간다면? 삼성으로서는 대단한 기회를 얻는 셈이다. 내부고발자 경력을 지닌 이를 조직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만큼, 부패 문제에 대해 떳떳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삼성에 씌워진 부패·비리 이미지를 씻는데도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 씨는 삼성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을 앞둔 1991년 1월, 삼성 그룹에 입사했었다. ROTC 장교 특채였다. 당시 이 씨는 3주간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고, 장교 복무를 마친 뒤 삼성 계열사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예비역 중위 신분을 회복한 1995년, 그는 삼성 인사팀을 찾았다. 그러나 회사는 복직을 거부했다. 그가 최대 2년 6개월인 휴직 기간을 넘겼다는 게 이유였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반(反)부패 활동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올해 삼성의 문을 두드렸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은 지 19년만이다. 삼성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당연히 반부패 활동이다. 윤리경영, 감사 관련 부서에 어울리는 경력을 쌓았다고, 그는 믿는다.

범죄 수사 전문가는 필요해도, 부패 방지 전문가는 필요없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역시 같은 입장이다. 위원회는 지난 4월 이 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삼성 측에 이 씨의 복직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삼성은 복직을 거부했다. 이 경우, 위원회가 복직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기업 활동과 무관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던 이를 기업이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실제로 삼성 측 입장 역시 "이 씨에게 적합한 직무가 없다. 그래서 복직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답은 설득력이 약하다. 삼성은 그동안 경제·경영 관련 경력이 없는 법조인, 언론인 등을 대거 영입했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입사 직전까지 검사로 일했었다. 범죄 수사가 그의 전문 분야다. 기업 활동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경력이 없다. 이런 분야를 전공한 것도 아니다. 정상적인 기업 논리대로라면, 기업이 전직 검사를 굳이 여러 명 채용할 이유가 없다. 범죄 수사하는 사람은 잔뜩 뽑으면서, 반부패 활동가의 복직을 거부하는 논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 씨의 생각을 듣기로 했다. 다음은 3일 저녁 이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한 2002년 1월 25일, 한 토론회에 참가한 이지문 씨. (사진 맨오른쪽) ⓒ프레시안

-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비리 가운데 대부분이 면죄부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는 유죄가 확정됐고, 나머지 역시 사실상 유죄라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요컨대 삼성은 아직 부패·비리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삼성에서 일하고 싶나.

"단 몇 개월만이라도 좋다. 삼성에서 일하고 싶다. 반부패 활동에 전념해온 내 경력이 그곳에서 쓸모가 있으리라고 본다. 김용철 변호사 사건을 겪은 삼성 측이 내 복직 문제에 대해 껄끄럽게 여기리라는 점도 이해한다. 하지만 반부패 활동은 삼성에게도 이롭다. 예컨대 고객 돈을 횡령하거나, 협력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 사례가 방치될 경우 기업 경쟁력은 치명타를 입는다. 이런 비리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내부 고발을 장려하는 것이다. 삼성이 지금 비자금 조성· 탈세 등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있다면 내 경력은 삼성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삼성 복직을 원한다" 보도자료 배포 거부한 뉴스 통신사들

- 복직이 실제로 이뤄질 것이라고 봤나. 솔직히,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 않았나.

"복직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다. 그래서 복직 불가 통보를 받았을 때, 그냥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굳이 그 사실을 <프레시안>에 알린 데는 이유가 있다.

복직 불가 통보를 받은 직후,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그리고 통신사 측에 보도자료 배포를 의뢰했다.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면, 누구든 통신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에 배포할 수 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그런데 뉴시스와이어 등 통신사는 내가 낸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없다고 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자료는 통신사 측의 판단에 따라 배포할 수 없다는 게다. (기자가 통신사 측에 문의했을 때도 같은 답변을 들었다.) 내가 낸 보도자료는 대단한 게 아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의 복직 권고안을 삼성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게 안타깝다는 내용이다. 이게 배포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보나. 납득할 수 없다."

-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게나 말이다. 위원회가 한 일이라고는 법적 강제성이 없는 공문 하나 보낸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하면, 어느 기업인들 권고를 받아들이겠나 싶다. 위원회가 왜 생겨났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투명성 강화를 위해 애쓰다 희생된 이들에 대해 국가기관이 조금 더 예의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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