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소재로 불안함과 비통함을 우아하게 펼쳐보인 이들의 놀라운 데뷔앨범 [Funeral]은 축복이자 올가미였다. 이들이 이후 발매할 모든 앨범은 데뷔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Neon Bible]에서 확실히 그런 징후가 보였다. 전작과 같이 과장된 격렬함을 가졌고, 한편으로는 더욱 우아해졌으나 이제 그들이 터뜨리는 감성은 일각에서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억지로 이성을 찾으려는 듯 보인다'는 비판마저 제기됐다. 라디오헤드는 멈추지 않는 상승 곡선을 그리다 [Kid A]에서 계단식 도약을 보여줬으나, 아케이드 파이어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아케이드 파이어 [The Suburbs]. 앨범 재킷은 여덟 가지 버전으로 나뉘어 세계에 발매됐다. ⓒ유니버설뮤직 |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이들이 고수하는 주제의식,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교외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들은 아픔을 토해내지 않음으로써 전작보다 부담스럽지 않게 정서를 표출해냈다. <롤링 스톤>은 "[The Suburbs]에서 이들은 이제 어른의 시선에서 가족사를 받아들인다. 이는 (신보를 돋보이게 만드는) 더욱 강력한 트릭이다"라고 평가했다. 가족의 죽음으로부터 도피하던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돼버린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이들이 이전에 부르던 어떤 노래보다 더 가슴 아픈 현실이다.
전작들에 비해 '킬링 트랙'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라디오헤드는 물론, 이들의 데뷔앨범에 비해 이 앨범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도 과장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모범적인 밴드가 짐을 벗어버리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보다 더 힘을 빼서 돌아온 이 앨범이 가진 미덕은 다른 데 있다.
대중음악이 세상을 대변할 때가 있었다. 밥 딜런, 섹스 피스톨스, 커티스 메이필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이 시절을 대표하는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과장된 정치의식을 메이저 음반사 소속 뮤지션이 토해내는 역설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다. 이제 음악은 거대한 산업이 돼 버렸다. 새 천년 대중음악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 혁명은 자신의 음악을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자세이며,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담백하게 기록하는 태도일 것이다. 아케이드 파이어에 평론가들이 그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들이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케이드 파이어 ⓒ유니버설뮤직 |
이들이 새천년 유일하게 새로움을 안겨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 대중음악의 초기 십년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체념을 강요하는 시대였다. 스트록스(The Strokes)는 노골적으로 현실을 강조했고, 코럴(The Coral)과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는 명민하게 이를 이용했다. 3세계 음악을 적극 차용한 칼렉시코(Calexico), 베이루트(Beirut) 등이 인디뮤지션의 한계를 넘어 대중을 포섭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최근의 경향에 상당부분 빚을 졌다. 그러나 이들 중 적잖은 이들이 금세 팬들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과거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달랐다. 닐 영, 데이비드 보위, 디페시 모드, 심지어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을 환기시킬 정도로 풍성한 뿌리를 자랑했으나, 어느 누구의 영향권에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라고 말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듣는 이를 압도하는 풍성한 멜로디와 마구 터져나오는 감성은 동시대 어떤 밴드와도 거리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은 음반판매량을 기록했고 마이너 레이블에 끝까지 머물러 있었지만, 이들은 가장 주목받는 거장의 반열에 한 발을 디뎠다. 앞으로 이들에게 성장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단명하지 않을 것이다. [The Suburbs]는 장수하는 밴드의 길에 이들도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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