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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가 '조선총독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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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가 '조선총독부'인가?"

[우석훈 칼럼] '조기유학 세대'가 던진 질문, 그리고 진수희 후보자

이번 주에는 1년 간 준비했던 책이 탈고를 앞두고 있는 때라서 매주 쓰는 <프레시안> 칼럼도 쉴까 했었다. 그러나 청문회를 보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문제에 대해서 별로 지적하는 곳이 없는 것 같아서, 잠시 우리의 긴 미래를 위해서 숨고르기를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펜을 들게 되었다.

보통 국적과 충성 혹은 조국과 같은 용어들은 보수주의자들의 용어이고,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우파들의 가치이다. 그래서 국적 문제를 내가 들고 나오는 현 상황이 아주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어지간하면 이런 문제는 자칭 보수정당이라고 하는 한나라당에서 좀 해결을 해주거나, '스스로 우파'라고 말하며 자신과 입장이 다르면 '전부 좌파'라고 말하는 <조선일보>에서 알아서 좀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한국의 우파는 국가와 민족 위에 선 외국의 우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정치적 입장이 뒤바뀐 것 같다는 착잡한 마음이 든다.

지금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지난 10년을 보냈지만, 어떤 의미로든 한국 교육이 붕괴되면서 조기유학이라는 게 생겨났다. 영어연수 같은 것까지 합치면 조기유학생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지만, 아직은 정확한 전수 통계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기러기 아빠 등 숱한 사회성 짙은 유행어를 남기면서 우리는 우리의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을 외국에서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그들과 한국이 앞으로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앞으로 수 년 내에 우리가 겪게 될 아주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조기유학을 찬성했던 보수 신문에서는 "그들은 인재이다"라고 하는 것 같고, '유학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했던 내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공교육을 거쳐 연간 1000만 원씩 대학등록금을 내면서 힘들더라도 버텼던 한국의 청년들이 불이익을 받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그 어느 편도 쉽게 자신이 맞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한국의 조기유학생들은 시대가 만든 비극이고, 그들 역시 우리 말을 버리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활을 해야 했던 희생자라고 보는 것이 나의 기본 시각이다.

▲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바로 이 질문이다. 지난 10년간, 진보인사든 보수인사든, 상당히 많은 유명인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조기유학을 보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지난 대선의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조차 그 문제로 곤란을 겪은 적이 있고, "자녀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선례를 남겼다. 여기까지가 현재 우리가 사회적으로 논의했던 상황이다.

진수희 후보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만약 그러한 자녀가 어떠한 이유로든 미국 국적을 선택한 경우,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사회적으로 던진 셈이다. 이건 그동안 조기유학을 떠났던 우리의 2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할 때,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와는 또 다른 층위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외국 국적과 관련해서, 이 사회는 어디까지 그것을 허용할 것인가, 바로 그 예민한 질문이 나오게 된 셈이다.

나는 이민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고, 자신이 우리나라가 살기가 힘들어서 외국으로 떠났고, 또한 국적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위공직자의 자녀들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해서 외국으로 떠났던 사람들 특히 자신이 스스로 경제적 생활을 할 수 없는 미성년 상태에서 조국을 떠난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이 시대의 학자로서 마음 한 편이 아픔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다면, 자식이 국적을 버렸다면, 그 부모가 한국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고위 공직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사실상 문화적 혹은 학문적 속국이라도 우리의 정부가 일제 시대의 조선총독부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미국 물' 먹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고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화적 표현에 불과하다. 우리는 엄연한 우리의 헌법을 가지고 국민들에게서 주권이 나오는 독립된 공화국이 아닌가?

내각을 형성하는 장관의 2세가 교육비 등 현실적인 이유로 국적을 버렸다고 할 때, 도대체 그 나라의 국민들이 장관이 내리는 각종 장관령 등 행정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최소한의 존중을 하란 말인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정부가, 아니 국가가 존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 정도가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허용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로 말한다면, '정부 고위직'이라고 한다면 중앙부처 3급 혹은 국장급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대표하겠다는 이런 고위직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가 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자식이 국적을 버리지 않는 정도가 아닐까? 이 정도도 지키지 않고서 도대체 어떻게 한국이 독립된 공화국으로서, 그리고 미국의 속국이 아닌 스스로 자결권을 가진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진수희 후보자에게 야박한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나도 없다.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의 국가주의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조국을 선택하라는 빡빡한 기준을 들이댈 생각도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장관 그것도 최소한 1~2년간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보건복지부, 즉 복지당국의 수장으로서 국적을 버린 자식의 부모로서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수주의자라면 보수주의자의 명예를 위해서, 혹은 우파라면 우파의 자존심을 위해서, 진수희 후보자에게 사퇴를 권유드리고 싶다. 청문회의 결과에 따라 결정이 나오기 전에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길게 보면 가장 명예로운 길이 아닐까 한다. 후보자가 그렇게 사퇴의 용단을 내려주신다면, 앞으로는 우파들에게도 그리고 혹은 진보나 좌파 정부가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기준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총독부와는 분명히 다르지 않은가?

한국을 위해서 기여하는 길은 장관이 되는 것 외에도 많이 있다. 명예로운 자리 혹은 영광스러운 일은, 꼭 장관이 아니라도 많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최소한 '한국의 장관'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기 명예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어렵지만 사퇴라는 용단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기원한다. 진수희 후보자의 명예와 우리 모두의 기준을 위해서, 그게 최선의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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