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동(가명)은 심사가 틀어졌다.
사장님이 기숙사를 바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숙사에 좀 문제가 있긴 있었다.
그는 컨테이너 반 칸을 썼다. 나머지 반 칸은 한국 사람이 쓰고.
이 한국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좀 시끄러운 편이어서 숙면이 힘들었다.
동이 요구했다.
"기숙사 바꿔주세요."
사장님은 펄쩍 뛰었다.
"못 바꿔 줘. 니가 정 싫으면 친구네 기숙사에 가서 자든지."
동은 석 달 간 남의 기숙사에서 자고 출퇴근했다.
하지만 이럴 수가 있나?
어느 날 보니 인도네시아 사람 둘이 자기 기숙사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자긴 싫어도 남 주긴 아까운 법.
눈이 뒤집힌 동이 독립을 선언했다.
"나 회사 나갈래요."
사장님이 기가 막혀서
"누구 맘대로 나가?"
"사인해 줘요."
"못 해줘."
"그래요?"
동은 화가 나서 그냥 회사를 나와버렸다.
무단이탈 5일이면 불법체류자가 될 판이라, 내가 충고했다.
"*가서 빌어. 다시 일하겠다고."
동은 회사로 갔다.
그러나 제대로 빌지 않았고
사장님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타협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여.
동이 오후에 또 왔다.
"이젠 그 회사 죽어도 안 가요."
나로서도 방법이 없다.
이제 공무원이 불을 꺼야지, 별 도리 없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를
*퀵 배송 하듯 고용지원센터로 보냈다.
이후에 벌어진 일은 공이 왔다 갔다 하는 핑퐁 같은 것이었다.
고용지원센터에서 그를 다시 회사로 보냈다.
그는 회사로 갔다가 다시 고용지원센터로 갔다.
동은 매일 회사에 갔다가 고용지원센터에 가는 것을 되풀이했다.
이러기를 다섯 번.
동은 왜 왔다 갔다 하는 무의미한 짓을 5번이나 반복했을까?
고용지원센터에 5번 가면 회사를 바꿔준다는 미신이 베트남 친구들 간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가서 진짜로 빌어. 방법 없어."
동은 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가든지 말든지
나는 이제 상관 안 한다.
*가서 빌어 : 외국인 노동자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을 상대로 싸우면 백전백패다. 왜?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걸! 그러니 칼자루 쥔 사장님에게 무슨 수로 이겨? 불법 안 되려면 그저 잘못했다고 비는 게 상수다.
*퀵 배송 : 이탈한 노동자를 빨리 고용지원센터로 보내는 것은 공무원으로 하여금 현 상황을 신속히 인지케 하기 위함이다. 일단 공무원이 사태를 인지하면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은 작아진다. 공무원은 사업주에게 양자택일을 종용할 수 있다. 노동자를 다시 쓰든지, 아니면 사인해서 내보내든지. 두 경우 다 불법체류자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가 복귀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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