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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명 처방으로 돈 아낀다고? 국민만 희생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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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분명 처방으로 돈 아낀다고? 국민만 희생하겠구나!"

이형기의 학이사(學而思) 의ㆍ과학 <8> 성분명 처방 논란을 보는 한 시선(下)

'날마다 싼 값(Everyday Low Prices)'. 미국의 대표적 대형 할인점 월마트의 영업 구호로 유명해진 말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잘만 고르면 꽤 괜찮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

이러한 월마트에서 작년 말, '한 달 처방약을 4달러에'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또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흔히 처방되는 300여 개의 성분에 대한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을 구비해 저가에 공급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약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제네릭의 한 달 약값이 대략 20~30달러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월마트의 '4달러 프로그램'은 확실히 파격적이다. 물론 대부분이 오래 전에 허가를 받은 약이라 실효성이 의문시되며, 잠재적 구매자들이 더 많이 월마트에 오도록 하는 유인 상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8200만 명 정도는 의료보험이 없다. 가계 소득이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 기준치의 2배-4인 가족의 경우 2005년 기준 연 4만 달러(약 3700만 원)-미만인 경우에는 비의료보험 인구가 40%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니, 의료보험이 없어도 한 달치 약을 4000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번 연재(☞관련 기사 : "성분명 처방 논란을 보는 한 시선")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성분명 처방 강제화가 왜 과학적, 제도적으로 타당하지 않은지 따져 보았다.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자체가 과학적으로 허점이 많은 개념이라는 것. 더욱이, 부실한 생동성 시험의 질 관리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의 건강을 담보로 실험하듯 정책을 집행하는 행위는 멈춰져야 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환자의 약 선택권과 소비자의 편익이 증대되리라는 정부의 주장도 실제 진료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 등이 지난 연재의 내용이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나?

정부가 성분명 처방을 밀어붙이는 또 다른 이유는 돈이다. 사실 정부로서는 이게 더 중요하다. 즉, 성분은 같지만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가격이 싼 제네릭을 사용하면 결국 보험 재정을 안정화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앞에서 예로 든 월마트의 '4달러 프로그램'을 떠 올리면, 정부의 주장이 언뜻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나, 의료계가 볼 때 이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의료보험 재정이 부실화된 이면에는 의료계가 그처럼 반대하던 의약분업이 단단히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처방한 병원에서 약을 받아 가면 되던 것을 두 단계 또는 그 이상으로 늘려 놓았으니 각 단계마다 추가로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제료'다. 한 해 2조 원이라는 돈이 단지 처방전에 따라 약국에서 약을 '내준다'는 이유로 지출된다. 물론, 의약분업 이전 지출 항목에는 없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 해 완제 의약품 생산액이 약 10조 원이라는 사실을 떠 올리면, 조제료로 나가는 돈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부실한 보험 재정 문제로 씨름하는 정부가 딱하기는 하다. 하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성분명 처방은 절대로 이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 왜냐 하면, 통제라는 미명 하에 실제로는 제네릭 약가를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해 온 정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성분명 처방, 제네릭 사용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재정적 유인(誘引)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강력한 약가 통제 정책을 채택한 나라에서는 제네릭이 잘 안 팔린다(Danzon & Furukawa, Health Aff, 2003). 약가, 특히 제네릭의 약가를 정부가 정해 줌으로써 제네릭 회사들이 가격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28%), 이태리(34%), 일본(40%) 등이 그 예다 (괄호 안의 숫자는 제네릭의 판매량 점유율).

하지만, 약가를 시장 기능에 맡기거나 보다 유연한 약가 정책을 사용하면 제네릭 회사들은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서 경쟁한다. 당연히, 오리지널 회사들도 제네릭 출시에 따라 능동적으로 가격을 낮추며 시장 방어에 나선다. 그래서, 약가 통제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제네릭이 많이 팔린다. 미국과 독일이 대표적인 나라다.

예를 들어, 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의 제네릭 판매량 점유율은 58%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매출액으로 환산하면 18% 밖에 안 된다. 즉, 제네릭의 평균 가격이 오리지널의 6분의 1 정도라는 계산. 월마트에서 '한 달 처방약을 4달러에'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렇게 저가로 제네릭을 공급할 수 있는 회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약가를 통제하지 않고 시장의 경쟁 구조에 맡김으로써 생겨난 이득이다. 당연히 혜택은 환자의 몫이 된다.

이 상황은 공정하고 바람직하다. 오리지널 회사는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들여 신약을 개발했으니 일정 기간 동안 고가로 약을 팔 명분이 있다. 하지만, 제네릭 회사는 생동성 시험을 빼면 딱히 연구비 투자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오리지널에 버금갈 정도의 가격으로 제네릭이 팔려야 할 '근거'가 도대체 부실하다는 말이다.

사실, 싼 가격이 제네릭의 존재 근거이기도 하다. 지난번 연재에서 지적한 것처럼, 생동성에 많은 과학적 허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용해 제네릭을 허가해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기본은 갖춘 제네릭이 싼 값에 공급되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인 것이다.

비싼 제네릭이 많이 팔린 진짜 이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철저하게 약가 통제를 시행해 왔기 때문에 제네릭이 잘 안 팔릴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웬 걸, 우리나라의 제네릭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로 시장 기능에 약가를 맡긴 미국이나 독일보다도 높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매출액으로 환산했을 때에도 제네릭이 여전히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사실. 제네릭의 평균 가격이 대략 오리지널의 절반 정도인 셈이다. 제네릭이 많이 팔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제네릭이 많이 팔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나라의 제네릭은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된 시장 원리에 따라 유통된 게 아님을 뜻한다. 당연히, 제네릭의 시장 공략이 가격 경쟁력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분석은 국내 제약 시장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약가 통제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정부는 제네릭이 높은 가격-오리지날의 80%-으로 팔릴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도무지 제네릭이 비싸게 팔려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 제네릭을 생산-판매하는 국내 제약회사들을 도와 온 셈이다. 이유는 거창했다. 자본 축적을 통해 신약 개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것.

하지만, 이렇게 높은 제네릭 가격으로 우대를 받은 국내 제약기업들이 제대로 된 신약을 개발함으로써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한 증거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많은 경우, 대가성 금품 등을 이용한 부적절한 영업 행위로 시장을 교란해 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국내 제네릭이 상대적으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시장 원리에 맞지 않게 많이 팔릴 수 있었던 제일 중요한 이유다. 물론, 이 과정에 직ㆍ간접으로 개입한 의료계의 각종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부끄럽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제네릭은 의약품 개발에 관한 한 '무임승차자(free rider)'에 가깝다. 따라서 무임승차라는 특혜의 과실을 조금이라도 국민에게 되돌려 주려면 오리지널보다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제네릭이 공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섣불리 시장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격 통제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제네릭 기업에 편향적인 가격 정책을 폄으로써 결국 이들의 불공정 행위를 조장하는 뒷돈을 대 온 셈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전개의 이면에는 고가의 제네릭, 그나마 그것도 제대로 된 질 관리를 거치지 않은 수준 미달의 제네릭을 사용해야만 했던 국민과 환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국민을 볼모삼아 기둥서방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정부라는 말. '도덕적 해이'도 이 정도면 가히 수준급이다.

또 국민이 희생해야 하나?

환자는 약이나 치료법에 대해 가격 비탄력적으로 행동한다. 값이 비싸도 환자(보호자)는 필요한 약을 사용하는 데 별로 주저함이 없다. 결국, 제네릭과 오리지널의 가격 차이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성분명 처방을 강제한들, 대부분의 환자가 제네릭을 유별나게 선호할 리는 없다. 따라서, 성분명 처방이 보험 재정의 건실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 그칠 게 확실하다.

결론을 내자. 정부가 약가를 통제하는 현 시스템은 그 경직성 때문에 제네릭의 가격 경쟁을 촉발할 수 없다. 제네릭과 오리지널의 가격 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제네릭 사용으로 이어질 재정적 동기가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처럼 보험 재정의 부실화를 성분명 처방으로 만회하려면, 우선 시장 경쟁의 원리에 근거한 약가 정책을 먼저 집행할 일이다.

결론이다. 질 관리가 입증된 생동성 시험을 통해 제대로 허가받은 양질의 제네릭이 더 많이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자신의 실책을 겸허히 반성하고 관련 제도를 바로 잡은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엉터리 생동성 또는 유사 생동성으로 붕어빵 찍어내듯 허가해 준 제네릭이 시장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게 우리 실정이다.

어설픈 가격 통제로 제네릭의 가격 인하 가능성을 아예 가로막은 것도 정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상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가 환자의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을 임의로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또 보험 재정을 건실화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성분명 처방 강제화는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한 마디만 더 하자.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환자가 의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환자 개개인에 대한 '충실함(fidelity)'이지 결코 한정된 의료 자원의 배분을 염려하는 '충직함(stewardship)'이 아니다(Ellis SJ, BMJ, 1999). '보험 재정의 성실(?)한 관리자로서 다른 환자에게 돌아갈 자원을 아끼기 위해, 신뢰성이 의심되지만 값이 싼 제네릭을 처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 문제를 맡길 정신 나간 환자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정부의 성분명 강제화는 이 땅의 모든 의사들이 바로 이런 의사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영문도 모른 채, 또 다시 정신 나간 환자가 돼야 하는 국민만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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