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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논란, '황우석 사태'의 재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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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논란, '황우석 사태'의 재발인가?

[기고] '광기'로 치달은 천박한 애국주의, 이젠 그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내가 만일 심형래 감독이라면, <디워(D-War)>의 흥행 성공과 평론가의 호평 중에서 무엇을 더 원할까?"

관객 동원으로 돈도 벌고, 까다로운 평론가의 칭찬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수준급이라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도 불구하고, 엉성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빈약한 연기력이 거듭 지적되는 것을 보면 더 그렇다. 그래도, 계속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밀려드는 것은 <디워>가 나름대로 흥행성을 갖추었다는 말도 된다. 내 '엉뚱한' 질문은 그래서 나왔다.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할 것이지만, 나 같으면 흥행보다는 호평 쪽을 택하겠다. 이런 저런 말을 들어 보니, 심 감독이 그동안 주류 영화계라는 '충무로'와 썩 잘 지낸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평론가의 호평은 이런 불편한 관계를 일시에 해소하고, 성공적인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게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디워> 논란'에서 '황우석 사태'를 보다

나는 영화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관람을 즐길 뿐만 아니라, 정성스레 테이프를 사 모으기까지 하는 아내와 가끔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왜 그런 데 시간과 돈을 쓰느냐'는 내 핀잔에 아내는 정색을 한다. "당신 맘에 들지 않는다고 남의 취향이나 생각을 깎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아내의 지적이 백 번 맞다. 누구라도 남의 호불호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 내 판단과 다르기 때문에 남을 비난하는 것 역시 공정하지 못하다. 더욱이, 상대방이 내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돼먹지 않았다'라며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잘못이다.

<디워>를 둘러싼 호불호 논쟁이 가열되더니, 마침내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을 통해 거의 '꼭짓점'에 도달한 양상이다. 논쟁의 중심에 진중권 교수가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영화에는 까막눈이고, <디워>를 본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진 교수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토론 이후에 그를 비난하며 광기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배설해 내는 사람들에게 '이건 아니다'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있다.

그들을 보며, '황우석 사태' 초기 <PD수첩>의 방영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며 촛불 시위로 발개진 사람들의 얼굴을 떠 올린 것이 과연 나 혼자 만이었을까? 과학계의 '사건'에 머물러야 마땅한 논문 조작 추문을, 전 국민이 영향을 받는 '사태'로 폭발시킨 뇌관이 바로 이러한 집단 광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학력 위조 의혹 이외에 심형래 감독의 순항을 좌초시킬 다른 조작 사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물(줄기세포)도 원천기술도 모두 부도수표로 밝혀진 황우석 씨와 달리, 적어도 심 감독은 '실물(영화)'과 '원천기술(컴퓨터 그래픽)'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심 감독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디워>의 영화적 미완결성을 비판하는 평론가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군다나, 심형래 감독은 자신을 기득권(충무로)에 '왕따' 당한 약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디워>의 미국 출시를 영화계의 메카인 할리우드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일 역사적 사건으로 줄곧 강조해 왔다. 뛰어난 마케팅 전략인지, 아니면 정말 순수한 속내였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외국 박사와 의대 출신에 밀려 설움을 당하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포장했던 황우석 씨가 세계 최초의 핵치환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 "미국의 심장부에서 생명공학계의 고지에 태극기를 꽂았다"며 의기양양해 하던 것과 닮았는지 모를 일이다.

'광기'로 치달은 '애국주의'는 한 번이면 족해

황우석 씨의 극렬 지지자는 윤리적 또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내부 정화(즉, <PD수첩> 불방)' 또는 '외부 확장(즉, 국익 증대)'을 꾀함으로써 파시즘에 복무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디워>를 비판하면 무조건 몰매를 때리는 사람들 역시 파시즘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집단 광기가 사그라진 뒤, 이유 없이 흥분했던 자신의 모습에 겸연쩍어 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애국심은 숭앙돼야 하나, 국익 앞에 모든 비판이 소리를 낮추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천박한 '민족우월(우선)주의'도 이제는 거두어들일 때다. 비판하는 자세가 마음에 안 들어도, '쓴 소리'는 경청하는 게 결국 몸에도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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