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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회복이 '누구' 덕?…'정치소설' 쓰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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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회복이 '누구' 덕?…'정치소설' 쓰는 언론"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14> 독일 경제 이야기

독일 경제가 지표상 활력을 찾고 있다. 통일의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세계화의 여파로 기업들이 주변국으로 생산지를 옮기며 자국 내 투자와 소비의 부진으로 근 10년간 활력을 잃었던 독일이었다. 그 기간 동안 매년 400만~500만 명의 실업자가 들끓으며 성장 동력을 갉아 먹었고,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양보교섭을 통해 임금을 자제했다. 연간 1% 내외의 낮은 성장률에 발목을 잡힌 채, 지난 세기에 가꾸어 온 복지국가의 하모니는 잠식되어 갔고, 이웃 나라들에서는 독일을 서슴없이 '유럽의 환자'로 불렀다.
  
  그랬던 독일이 요 몇 년 새 확 달라졌다. 사실 경제활동의 주체로 깊이 간여하지 않고 생활인으로 지내다보면 도무지 얼마나 큰 변화가 생긴 것인지 정확히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지표들이 나타내는 변화를 보면 분명 현실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지난 1년 새 실업자 수는 100만 명 가량이 줄어 5, 6년 새 최저점으로 내려왔고, 경제성장률도 마의 1.5%를 넘어 2% 후반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소비의 붐이 일고 있고 투자가 돌아오고 있다고 온통 떠들썩하다.
  
  관심을 끄는 것은 "왜 이 시점에서 독일 경제가 부활했을까 혹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을까"를 두고 벌어지는 해석의 논리들이다. 경제침체에 대한 해석이 그러하듯이, 활력의 원인에 대한 답을 찾는 작업은 당연히 독일 내 제 정치 세력 간에 중요한 '담론적 계급투쟁'의 소재다. 어느 한 집단이 해석을 독점할 수는 없다. 여와 야, 자본과 노동, 좌파언론과 보수언론이 각각 해석의 포인트를 달리한다.
  
  나아가 유럽 경제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갖고 있는 이러한 독일의 변화에 대한 해석은 이웃 나라 정치에서도 좋은 정쟁의 소재가 되며, 어느새 한국의 공론장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소재로 국내 현실을 향하여 특정한 '담론적 실천'을 추구하는 이들이 입힌 특정한 색깔의 '해석의 옷'이 입혀진 채….
  
  독일 경제회복 굳이 공을 돌리자면…메르켈보다는 슈뢰더
  
  최근, 한국의 보수언론은 일제히 독일경제의 회복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달고 보도됐다. "되살아난 독일 경제", "獨-유럽의 병자서 새 성장엔진으로", "유럽의 병자 독일경제 부활비결", "독일경제 부활에서 배워야 할 점", "메르켈 총리-유럽의 병자 체질 확 바꿔", "유럽 성장엔진 휘어잡은 '철의 여인'" 등등. 기사들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 하나같이 뉘앙스와 어휘 선택을 통해 독일 경제 현상을 두고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정치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마치 약속이나 한듯 해석자 간에 주장 상의 강한 연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독일경제회복이라는 소재를 놓고 이들이 내세우는 핵심 논리를 정리하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4년 전 슈뢰더에서 시작해 현재 메르켈에서 꽃피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덕에 독일경제가 회복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분배나 복지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을 본받아 노동시장 유연화와 작은 정부를 향한 개혁에 더 매진하며 파이를 키워야 함이 옳은데, 현 좌파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둘째, '이러한 개혁의 성공에는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이 큰 데, 과거 영국의 대처처럼 현재 메르켈 총리가 같은 여성으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두 논리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운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메르켈과 그녀의 리더십에 독일 경제 회복의 공을 돌리는 부분은 한마디로 소설에 가깝다. 메르켈의 리더십이란 게 그저 대연정을 깨지 않고 사회민주당(SPD)이 원하는 바를 수용하면서 출범 초기에 양당이 서명한 연정각서대로 개혁의 방향을 유지해준 것이 전부인데, 이를 두고 리더십이 탁월하며 그녀가 경제 회복의 견인차라고 칭찬하는 건 한참 '오버'다. 지난 1년 반 동안 메르켈의 리더십 하에서 내용상 새로 추진된 개혁안은 거의 없으며, 현 정부의 주된 정책적 실천은 지난 정부가 마련한 정책을 그대로 받아 안아 실행한 것이 90%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대연정이라고 하는 절대적으로 여당에게 유리한 정치 환경 속에서 두 연정의 주체들이 이미 합의한 내용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처럼 손쉬운 정치가 있을까.
  
  어떤 정치가의 리더십을 찬양하는 일은 타협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반대파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며 자신을 내던지고 현실의 난관을 극복해내는 정책을 관철시켜냈을 경우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메르켈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리더십을 운운하겠다면, 실상 띄워져야 할 사람은 메르켈보다는 차라리 슈뢰더다. 애당초 대연정의 기본은 지난 정부의 수상이었던 슈뢰더의 개혁 프로그램 '아젠다2010'을 메르켈이 수상직을 이어받아 지속한다는 약속에 불과했다. (☞관련 기사 : "'얼굴'과 '심장'을 교환한 독일 대연정") 슈뢰더가 입안한 프로그램은 메르켈보다 훨씬 어렵고 과감한 길을 택하는 가운데 만들어졌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 세력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여 끝내 내각을 해산하고 수상직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독일 경제 회복…여러 가지 요인이 낳은 복합적 결과일 뿐
  
  한국 보수언론의 독일 경제 회복에 대한 해석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점이 들어 있다. 이는 경제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정치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점이다. 독일 경제 회복과 관련해 정치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정치의 효과를 절대화할 정도로 양자 간에 긴밀한 인관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보수언론이 떠받드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같은 신문에서도 독일 경제의 회복에 관한 분석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정치환원론을 우려했다.
  
  "행여 경제적인 행위자들을 조작하기 위한 공간을 결정하는 법적인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부라고 할지언정, 정부가 실제로 성장을 자극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작다. 정치는 현재의 (독일) 경제 회복과 상대적으로 관련성이 적다." (<FT> 2007년 3월 30일자, "Overhauled: why Germany is again the engine of Europe")
  
  독일 경제의 회복은 유럽 경제 전체의 활성화, 특정 부문 및 지역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져 온 혁신적 투자,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자제, 국민경제의 국면이동 등 여러 가지 경제사회 요인들이 정치 요인들과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독일의 언론은 대체로 이러한 다층적인 면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합당한 설명 논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총리실의 홍보부 외에 그 어떤 진지한 언론도 메르켈의 리더십을 가볍게 찬양하거나 몇 년 새 이루어진 제도개혁의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식의 논리에 함부로 기대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보수논객과 그들에게 그러한 주장의 여지를 제공해 주는 일부 영미권 보수언론은 이 흥미롭고 교훈이 풍부한 한 나라의 경제사회 현상을 놓고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을 추구하기보다 손쉽고 타성적인 해석의 옷을 입혀 다시 한 번 자신의 구미에 맞는 정치적 소재–신자유주의 찬양!-로 삼아 버린다.
  
  특히 우리 언론이 이 시점에서 보수적인 여성 리더십의 공에 굳이 집착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히 외국의 이야기를 수입가공해서 국내 선거전에 슬그머니 활용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들을 통해 어렵사리 거둔 독일의 경제 활력은 한국으로 건너가 그 밥에 그 나물 타성화된 논리의 옷을 입고 하나의 정치소설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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