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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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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쟁이

[한윤수의 '오랑캐꽃']<265>

여위고 내성적인 듯한 사나이가 공장의 경비직에 응모했다. 공장장이 그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사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경계심이 강하고, 밤새도록 눈을 부치지 않고, 누구에 대해서나 의심이 많고, 개미 발자국 소리도 놓치지 않으며, 담이 센데다가 인정에 끌리지 않고, 속이 좁으며 화를 잘 내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때 사나이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 마누라를 면접보라고 보내겠습니다."

위 이야기에서 사나이는 마누라를 면접 보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나는 경계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아서 경비직에 딱 맞는다. 그리고 경비직과 비슷한 것이 노동자센터 목사이므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입국의 비자는 노동부의 근로계약을 따라 간다.
근로계약 1년이면 비자도 1년이다.
하지만 1년에 1년! 요렇게 단 하루의 여유도 없이 빠듯하므로 말썽이 많다.
비자 기한에 걸려 며칠 차이로
1. 퇴직금을 못 받거나
2. 벌금 무는 일이 잦으니까.

하도 말썽이 많아서 지난 3월 15일 출입국에서 개선 조치를 내놓았다.
비자 기한에서 한 달을 더 주기로.
즉 1년 플러스 한 달이다.

노동자에겐 희소식이다.
하지만 의심 많은 내가 보기엔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이 조치가 E-9(비전문취업) 비자를 가진 모든 외국인에게 소급 적용되느냐? 아니면 이 조치가 나온 3월 15일 이후에 재계약하는 외국인에게만 적용되느냐?
무지무지하게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조치는 출입국 내부지침으로 내려와서 홈페이지에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이런 조치가 내려왔다는 것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있는 친지를 통해 알았으니까.

나는, 성격이 끈질겨서 확인하는 데는 적격인 L간사에게 확실한 내용을 알아오라고 시켰다.
우리가 잘못 알면 숱한 외국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니까.

우선 L간사는 출입국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안내센터에 전화했다.
"1년 플러스 알파가 모든 외국인 노동자에게 적용되나요?"
한국어 안내자는
"다 되죠."
하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저렇게 쉽게 답을 하지?
너무나 쉽게 답을 하니 더럭 의심이 생긴다.
다시 출입국 본부에 알아보라고 시켰다.
출입국 본부의 B계장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다 되죠."

그렇다면 엄청나게 잘 된 거잖아! 이제 모든 외국인노동자들은 체류기한 때문에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된단 말이지? 비자문제만큼은 이제 다 행복해졌다 말이지?

하지만 내 맘 깊은 곳에선
"어딘가 찜찜해. 믿지 마."
하는 소리가 계속 울려오고 있었다.

희소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나에겐 있었다.
좀 지난 얘기지만, 예를 들어보자.
금년 4월 9일에 비자가 만료되는 베트남 사람 투안은 외국인등록증 뒷면에 <2010. 4. 9>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면 출입국 관리들이 여기다 무조건 한 달을 플러스해서 마음 속 눈으로 <2010. 5. 9>라고 봐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다!
이건 공무원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하는 소리다.
공무원은 등록증 뒷면에 잉크로 쓰인 숫자만 보지, 거기다 한 달을 플러스해주는 관대한 상상력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된 나는 다음날 최종적으로 S출입국 P계장에게 전화했다.
그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니까 벌금 물고 물리는 피 튀기는 일선 창구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내가 물었다.
"1년 플러스 알파가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P계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더니, 차갑게 말했다.
"누가 그럽니까? 소급 적용은 안 되죠!"
"그렇죠?"
"당연하죠. 3월 15일도 아니고요. 정확히 말해서 금년 3월 16일 이후에 연장한 사람에 한해서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겨우 납득이 간다.

외국인 안내센터나 출입국 본부만 믿었다간 *실수할 뻔했다.
의심쟁이도 다 쓸 데가 있다.

*실수할 뻔 : 투안은 재입국 후 이틀 뒤부터 일했기 때문에 비자기한보다 이틀 더 일해야 퇴직금을 탄다. 플러스 알파만 믿고 출입국에 이틀 늦게 가면 벌금 20만원 물어야지 별 도리 없다. 그러므로 투안이 사는 길은 비자기한이 되기 전에 출입국에 가서 가접수를 부탁하여 이틀의 말미를 얻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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