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런 자료가 그렇듯이, 이번에도 변명 양식은 동일하다. 1번, 협상 전략을 노출해 유감이다. 2번, 언론이 감히 무슨 자격으로 국가 중대지사를 일일이 따지느냐. 그리고 3번, 보도한 내용도 맞지 않다.
거짓말 하려거든 '성실하게나' 하든지
이에 대해 반박하려면 끝도 없겠기에 통상교섭본부가 '성실하지 못하게' 급조한 거짓말만 2군데 지적하려 한다.
"(ISD에 대한) 내부 검토회의는 (…) 협상이 시작된 후 뒤늦게 관계부처 간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가 아니라 (…)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적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전문적 견해를 표명한 회의였다."
이같은 변명의 논리를 따라가자면, 정부 부처 간 협의는 우리 측 초안에 ISD가 들어간 4월 전에 이미 끝났고, 문제가 된 8~10월 회의는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였다는 것이 된다. 거짓말이다. 기자가 확인한 회의록에 훤히 나와 있듯 '4월 전에 이미 봉합했다던' 부처 간의 이견은 회의 기간인 8~10월 내내 지속됐다.
정부의 변명이 맞을 수 있는 길이 꼭 한 가지 있기는 하다. 2006년 8월이 2006년 4월 앞에 있는 시점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통상교섭본부 입장에서는 그런 변명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회의록에서 드러나듯 "ISD를 완전히 빼자고 요구해야 한다"는 법무부·건교부의 주장이나 "이 제도로 우리나라에 도입된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실체가 뭐냐"는 재경부의 비판에 대해 마냥 '짖어보라'는 자세로, 다시 말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면 부처 간의 이견 조율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다른 부처들 무시하면 입장 조율 끝?
"실제 검토 회의에서는 투자자-국가 중재절차를 한미 FTA에서는 수용하는 데 큰 문제점이 없다는 의견도 다수 개진됐다"
글쎄? 이 대목은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미 FTA에는 무조건 ISD가 들어가야 한다'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미국이 먼저 요구하지도 않은 이 제도를 우리 측 초안에 냉큼 넣어버린 통상교섭본부가 ISD를 점검할 민간 전문가들을 선정하는 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 것인가.
모 교수는 1차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ISD 포함 여부를 재검토한다는 것이 (…) 정말 정부의 입장이라면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ISD가 우리 사법부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혁신적인 주장까지 펼쳤다.
이렇게 놓고 보면 'ISD 수용' 의견은 회의에서 분명히 개진됐다. 문제는 그렇게 엄선된 민간 전문가들 중에도 "ISD는 괴물"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법무부, 건교부, 재경부 등 통상교섭본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가 시종일관 ISD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는 것이 이 회의록에서 드러난 '새로운 팩트(fact)'다.
그리고 <프레시안>의 보도는 바로 이 새로운 사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통상교섭본부가 알아서 선정한 민간 참여자들 가운데 이런저런 의견이 있냐 없냐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었고, 사전에 이미 조율이 끝났다는 정부 부처들 사이에 이런 극단적인 의견대립,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상교섭본부를 제외한 전 부처의 일관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상교섭본부가 막무가내로 'ISD의 포함'을 밀어붙였다는 사실이 뉴스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뉴스라는 말인가?
통상교섭본부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변명 자료를 만들 시간이 있거든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다른 부처들의 '성실한' 문제제기를 묵살한 데 대한 사과문이나 '성실하게' 만드는 게 나을 것이다. 나아가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협상 전략을 원점에서부터 재점검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엎드려 사죄해야 온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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