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고용허가제 하에서 회사를 바꾼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사장님 사인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걸 어쩌나?
하나의 방법이 있긴 있다.
직권 이동!
근로계약서 상에는 기숙사를 제공하게 되어 있는데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근로계약 위반이다. 따라서 담당 공무원이 근로계약 위반을 문제 삼아 직권으로 이동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직권 이동은 사장님 사인보다 더 어렵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직접 책임질 일은 좀처럼 하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회사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경쟁력도 없고 도태되어야 마땅한 한계기업들이 *고용허가제라는 핵우산 하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예 다루듯 하며 횡포를 부리고 있다.
이래서 *노동허가제가 필요한 건데.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요. (사모님과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두 여성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베트남 통역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얼굴이 하얘졌다. 목사님만 믿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사모님을 찾아가 빌라고 시켰다.
"사모님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기숙사 만들어달라고 얘기해 봐요."
그들은 절망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축 늘어진 어깨가 얼마나 안 되어 보였던지!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얘들 청소하다가 기계에 다칠 수도 있고 내버려두면 틀림없이 이탈해서 불법체류자 될 텐데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이 한 번 사는 건데 내가 이렇게 살아서야 쓰나? 목숨을 걸고라도 도와줬어야 하는 건데.
할 수 없다! 얘들이 처한 사정을 고용지원센터 팀장에게 얘기해보고, 안되면 소장, 소장에게 안 되면 지청장, 지청장에게 얘기해도 안 되면 신문 방송에 내자. 좋다. 갈 데까지 가보자!
다음날 나는 충청도 출신인 L간사를 S고용지원센터로 보냈다. 충청도는 시원한 구석은 없어도 끈질긴 면은 있으니까.
예상대로 그는 외국인력팀장과 끈질기게 대화했다. 느릿느릿 아주 길게. 오후 4시부터 5시 반까지 무려 1시간 반 동안.
팀장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노동자가 자진 퇴사하는 형식으로 회사측과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노동자가 먼저 퇴사를 신청하면 회사가 승낙하는 형식을 권해보겠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비록 회사측에서 근로계약을 위반했지만, 회사 책임을 묻지 않고 유연하게 처리하겠다는 것.
직권 이동보다는 덜 시원하지만, 공무원이 이 정도 얘기만 해도 무지하게 잘해주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되는 쪽으로 밀어주겠다는 얘기 아닌가!
다음날 오후 두 여성이 달려왔다. 사직서를 한 장씩 들고서.
"사장님이 여기 사인하라는데 괜찮아요?"
"괜찮아!"
사직서를 받는다면 보내준다는 얘기다.
또 하루가 지난 후 그들이 수박과 비타 500을 사들고 왔다.
"퇴사처리 되었어요. 고마워요."
쌓였던 피로가 몰려오며,
J팀장,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윤수 |
*고용허가제 : 고용주에게 외국인 노동자를 선택하고 일정 기간(보통 1년) 붙잡아둘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현행 제도. 솔직히 말해서 외국인마저 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경쟁력 없는 영세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런 제도를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반인권적인 제도를 유지해야 하나?
*노동허가제 : 외국인 노동자에게 직장 이동의 자유를 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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