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 대한 칭찬과 함께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조언 또한 봇물을 이루고 있다. 마치 '백화제방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 백가지 꽃이 함께 피고 누구든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축구가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과거와 다른 자신감, 킬패스 능력, 뒤지지 않는 체격 조건, 유기적이면서도 빠른 패스 등 향상된 능력은 열거하면서도 버려야 할 습성이나 부족한 기량 등 한국축구의 한계에 대한 논의는 드물다. 고작해야 허정무 감독이 언급한 어린 선수들의 공격수 선망과 수비수 홀대문화 정도가 우리 현실에 대한 쓴소리였을 것이다.
▲ 최초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한 한국 축구 대표팀. 이들에게 찬사와 조언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뉴시스 |
조직력 축구의 한계
한국축구는 언제나 조직력의 축구였다. 그렇다면 왜 개인기는 항상 배제되어 왔을까. 한국인은 태어날 때부터 개인기는 없이 태어나는 것일까. 왜 축구선수들은 죽어라 축구만 하는데, 외국 선수들보다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 훈련을 하는데도 개인기가 딸리는 것일까. 개인기의 싹은 탯줄과 함께 잘려버리고 태어나는 것일까.
이는 한국의 잘못된 축구문화, 왜곡된 체육계의 관행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기며 하지 못하고 감독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든 상태에서 축구를 하다보니 경기 중 실수하면 감독 눈치부터 살피는 게 우리 선수들이다. 오직 성적만을 생각하고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조적 플레이를 용납하지 않는 감독들이 버티고 서있다. 당연히 개인기가 싹틀 수 없는 문화일 뿐 아니라 개인기 한 번 시도했다간 벤치에서, 라커룸에서 두들겨 터지기 십상이다.
흔히 유럽축구를 조직력의 축구라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경기 전술에 있어서 남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중시된다는 것이지 개인기가 남미선수들에 비해 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기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조직력만 강조하는 것은 축구변방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모두 여섯골을 얻었다. 이를 분류해보면 프리킥에 의한 득점이 셋이었고 플레이 중 득점도 셋이었다. 그러니까 우선 한국팀의 주된 득점 경로는 경기가 정지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세트피스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다른 나라의 팀들도 세트피스를 통한 득점을 노리는 요즘 상황이니 문제랄 것도 없겠다.
그렇다면 플레이 중 득점한 세골은 어떠한 상황에서 나온 것일까. 그리스전에서 박지성의 추가골과 아르헨티나전에서 이청용의 만회골은 모두 상대 수비수의 실책을 재빨리 가로채 얻어낸 득점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얻은 여섯 득점 중 정상적 플레이 상황에서 팀의 공격력에 의해 나온 득점은 우루과이전에서 나온 이청용의 헤딩골이 유일하다. 물론 운이 없어 아쉽게 득점에 실패한 순간이 많긴 했지만 어찌됐든 이는 한국축구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개인기 없이는 영원한 변방
16강전에서 맞붙은 우루과이의 수아레즈의 골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페널티박스 좌측에서 공을 잡은 그는 우리 수비수 두명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이들을 앞에 두고 순식간에 오른쪽 측면으로 치고 나가 따돌리며 공간을 확보한 후 골포스트 먼쪽을 향해 감아차는 킥을 했다. 그리고 이는 정말 그림과도 같은 곡선을 만들어내며 네트로 빨려 들어갔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득점을 우리 선수들에게서 본 적이 있는가.
월드컵에서 수아레즈의 골과 같은 득점 장면을 연출한 우리 선수는 단 한 명이다. 사실 이마저도 머나먼 24년 전 이야기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다. 당시 한국팀은 이탈리아를 맞아 2대3으로 패했는데 이때 최순호는 페널티박스 좌측에서 이탈리아 수비수 두명을 따돌리고 슛을 날려 득점에 성공했다. 사실 수아레즈의 골은 최순호의 골의 판박이였다.
한 번 따져보자. 한국축구는 월드컵에 총 8번 출전하면서 27득점을 했다. 그러나 공격수가 수비수를 제치고 상대 문전을 돌파해 득점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고 그나마 최순호가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중거리슛을 성공한 게 순간적 개인기량에 의한 유일한 득점이었다. 모두가 프리킥, 공간침투 또는 문전 혼전 중 득점한 것이다.
사실 수비수를 제치고 득점한 경우가 있긴 있다. 2002년 박지성에 의한 것이었다. 대 포르투갈 전에서 그는 그에게 날아든 크로스 패스를 가슴으로 트래핑 한 후 오른발로 한 번 튀겨 수비수를 제친 후 왼발슛으로 득점한다. 그러나 사실 이때 포르투갈은 두명이 퇴장을 당해 9명이 뛰는 상황이었기에 정상적 경기상황에서 상대 수비를 제치고 득점을 한 경우라고 보기는 다소 어렵다.
이렇듯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가 자신의 개인기량을 활용하며 득점한 사례가 전무에 가깝다는 사실, 그리고 16강 진출에 성공한 이번 월드컵에서는 개인기는커녕 플레이 중 득점한 골이 없다는 사실은 한국축구가 앞으로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다.
사실 이번에도 경험한 한국팀의 고질병인 '문전처리 미숙'은 반세기는 된 문제임에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이 그저 조직력과 관련된 해설과 기사들 뿐이다. 한국축구에서 개인기는 사생아와도 같은 것인가. 개인기는 한국축구의 DNA에서 지워져 버린 것인가. 개인기의 향상 없이는 영원한 변방이다.
▲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수아레즈가 뽑아낸 전광석화같은 골에 망연자실해 있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 ⓒ뉴시스 |
개인기가 있어야 해외진출도 가능
한국팀의 진군이 막을 내리자 너도나도 떠드는 게 선수들의 해외진출이다. 축구협회도 선수들의 해외진출만이 한국축구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나는 특히 축구인들 중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는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해외진출, 입으로 하나. K리그 선수들만 맥빠지게 하는 것이다.
선수의 해외 진출은 축구협회가 정책으로 추진한다 해도 될 일이 아니다. 선수의 개인 기량이 좋으면 외국의 프로팀이 당연히 눈독을 들일 것이다. 운 좋게 가더라도 곧 돌아오기 십상이다. 이제까지 이십명이 넘는 한국의 간판급 선수들이 유럽진출을 노크했지만 상당 기간 뛰었던 선수는 차범근 이후 박지성, 이영표 정도고 최근의 박주영, 이청용 정도가 가능성을 보일 뿐이다.
축구의 전반적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선결 조건 역시 바로 국내 리그의 활성화다. 지금의 K리그를 방치하고 외국진출만 목표로 삼는 것은 '월드컵 성적'만 신경 쓰고 '한국축구 발전'은 도외시 하는 처사이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목표설정이고 이제까지 대한축구협회가 비이성적으로 몰입해온 저변 없는 축구, A매치 위주의 축구행정, 국내 리그 무시하고 월드컵 성적만을 쫓아왔던 왜곡된 축구문화의 심화를 뜻할 뿐이다.
그리고 축구 잘하는 나라 중에 국내리그가 찬밥신세인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스페인, 이탈리아는 말 할 것도 없고 우루과이, 멕시코, 온두라스, 콜롬비아 같은 나라의 토착리그도 그 열기가 광적이다. 월드컵 응원보다 더 하면 더 하지 절대 못하지 않다.
또 이런 나라의 선수들은 해외 유명팀으로 가더라도 돈을 벌러 가는 것이지 우리처럼 '축구를 배운다'며 이적하지 않는다. 베트남이나 태국, 말레이시아의 축구경기보다도 관중이 없는 K리그로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들어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인 것이다.
K리그가 활성화 되고 선수들 기량 수준 올라가면 외국 진출은 당연한 부수물로 따라온다. 그런데 K리그가 활성화 되려면 K리그에 관중이 몰려야 하는데 이는 이제까지 조직력에만 의존하는 경기에서 선수들의 개인기가 가미된 경기로 진화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표팀에서 보듯 K리그도 개인기는 보이지 않는다.
10여년 전 K리그 감독들은 야구의 인기에 비해 맥을 못 추던 K리그 활성화를 위해 상대 주 공격수를 전담 마크하는 대인방어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몇 게임 지나 팀 순위가 드러나게 되자 하위팀 감독들은 어쩔 수 없이 그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대인방어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프로팀의 간판 공격수들조차 전담 수비수 한 명을 제치기 힘들 정도로 개인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기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이는 유소년 축구 때부터 감독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고 신나게 축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창조적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한국축구의 선결과제는 K리그의 활성화와 자유롭고 즐기는 분위기의 유소년 축구에 달려 있다. 또 그래야 저변이 넓은 피라미드형 축구시스템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개인기는 기본기
결국 K리그 활성화와 유소년축구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국축구가 세계축구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기가 조직력에 억눌리지 않는 축구가 현실화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두가지를 이루기 위한 선결 조건은 기본기를 탄탄히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축구가 여타 축구 강국에 비해 떨어지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볼 트래핑부터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요즘 우리에게도 인기 있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면 아주 빠르고 강한 패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좁은 공간에서도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다. 이는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면서도 조직력에 의한 축구도 한결 수월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 축구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공이 자신에게 오면 발이든 가슴이든 허벅지든 대부분 원터치로 공을 자신의 컨트롤 하에 놓는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에게서는 두 번, 세 번 공을 건드려야 완벽한 볼컨트롤이 가능한 경우를 많이 본다. 결국 다음 연결이 늦어질 뿐 아니라 상대 선수에게 공을 빼앗길 확률도 높아진다. 이러한 기본기의 문제는 드리블, 패스, 크로스 그리고 슈팅 등 모든 축구기술에 적용된다.
결국 한국축구에 절실한 것은 개인기 향상이고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기본기가 절대적이다. 4년전 토고와의 1차전에서 목격한 쿠바자의 선취골 장면은 기본기, 특히 트래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하프라인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공이 날아들자 문전으로 쇄도하던 쿠바자는 전력질주를 하면서도 자신의 오른 다리의 허벅지 바깥 부위로 단 한 번에 공을 바로 앞에 떨어뜨린 후 지체 없이 슛을 날려 득점에 성공한다. 빛나는 트래핑이자 한국축구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리틀야구에서는 투수의 변화구 사용을 금지한다. 규정으로 금지할 수는 없겠지만 유소년 축구에서는 이기기만을 위한 지나친 전술훈련을 기본기에 충실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즐기듯 플레이 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기본기를 등한시 하고 개인기를 배제한 채 성적만을 위한 축구만이 존재한다면 세계무대에서 한국축구의 자리는 맨날 거기서 거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한국축구를 위해 말해야 할 것은 K리그, 유소년축구, 그리고 기본기다. 말뿐인 해외진출이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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