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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月 79만6000원짜리 '유령'입니다"

파견직 청소 노동자 다룬 다큐 '장밋빛 인생'

첫차도 다니지 않는 이른 새벽. 투박한 구두에 저마다 도시락이 든 가방을 든 중년 여성들이 버스 정류장에 하나둘씩 앉아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비슷한 옷차림의 이들이 점점 불어나고, 또 하나둘씩 어딘가로 내려 사라진다. 한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밖에서 일하는 미화원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그는 어느덧 도시의 '유령'이 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다.

2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시사회를 연 다큐멘터리 '장밋빛 인생'은 이렇게 시작했다. 도시의 일상이 시작되기 전에 청소를 마치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들은 스스로를 "유령 같다"고 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병원 건물에서 학생과 직원들이 공간을 채울 무렵이 되면 그들은 계단 아래 빈 공간이나 석면이 날리는 배관실에서 식은 도시락을 먹는다. 화장실 비품칸에서 도시락을 먹다 누군가가 '볼 일'을 보러오면 숨을 죽인다.

그들이 '유령'이 된 이유를 '패륜녀' 사건에서처럼, 그저 특정 직업에 대한 천대로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건은 청소노동자들을 고용안정의 사각지대로 내몬 결과물에 가깝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일터에 정규직으로 고용되었던 청소노동자들은 '경영 효율화'의 기치 아래 계약직으로, 다시 용역회사에 소속된 파견직으로 전락했다.

▲ 서울대 병원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는 이영분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본부 민들레분회장이 23일 열린 <장밋빛 인생> 시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네 번째로 많은 임금 노동자 '청소원'…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유령' 취급까지

이날 시사회에 이어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중앙고용정보원의 자료를 활용해 청소노동자의 실태를 발표했다. 2008년 기준 426개로 분류된 직업 중 '청소원'은 40만6633명, 임금 노동자만 추려내면 37만7927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네 번째로 많다. 이들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고 10명 중 8명이 50대 이상의 고령이다.

청소 노동자 80퍼센트가 여성이며 이 중 3분의 1이상이 가구주다. 태반이 가구주인 남성 노동자를 더하면 절반 가까이가 가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만 고용 조건은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용직은 28.8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임시직이나 일용직으로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벼룩시장 광고에서 자기 일터의 채용 공고를 보고 해고 사실을 알았거나 전화 한 통화, 문자 한 건에 해고되는 일들도 벌어진다.

'장밋빛 인생' 속 청소 노동자들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비트실'에서 밥을 지을 수도, 찌개를 끓여 먹지도 못한다. 겨울철에는 전기장판 위에 도시락을 이불로 덮어놓지만 식사 때가 되면 딱딱하게 굳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에 받는 79만6000원의 월급으로는 직원 식당에서 밥을 사먹기도 힘들다.

해고의 공포 탓에 하소연할 수도, 항의할 수도 없다. 파견을 보낸 용역회사 소속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터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들도 드물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청소 노동자들은 '비트실'에서 제대로 다리를 뻗지도 못한 채 쉬어야 한다. 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 76개 사업장에 대해 현황조사를 벌인 결과 64곳에 휴게실이 있었지만 절반 이상이 지하실이나 옥상·가건물·창고 등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시급하지만 경영계는 '10원' 인상안 제출

▲ 대부분이 최저임금 노동자인 여성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최저임금 토론회를 방청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쉴 때조차도 "말처럼 서서 쉬라는" 지시에 시달리던 청소노동자들은 이따금 자기 목소리를 냈다. 지난 1월 이화여대 청소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학교와 회사를 상대로 근무 환경 개선을 요청했다. 전기밥솥에서 따듯한 밥을 덜어먹게 된 이들은 "노동법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며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이처럼 노동조합에 가입한 청소 노동자들의 비율은 전체의 6.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청소 노동자 이영분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저임금이나 평균 근로시간이 뭔지도 모른 채 그냥 한 달 월급만 주면 얼마라도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노동·시민 단체와 함께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나선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주제는 이달 29일에 결정될 2011년 최저임금 인상안이다. 경제위기를 이유로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해온 경영계가 반발 속에 내놓은 새로운 인상 폭은 '시간당 1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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