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도입 반대! 교육은 만인을 위하여!(Keine Gebühr Bildung für Alle!)"
최근 몇 년간 독일 대학의 교정과 주요 도심에서 종종 외쳐졌던 구호다. 유감스럽게도 절대다수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독일의 대학생들은 최근 교육계에 유입되고 있는 시장화의 움직임에 대해 강한 반발의 목소리를 표출해 왔고, 근래 치러진 주정부 선거들에서 대학 등록금 부과 문제는 정치권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곤 했다.
***독일 대학의 '무상교육', 흔들리는가?**
그 동안 독일 대학은 한 마디로 '무상교육'에 다름 아니었다. 수능시험(Abitur)을 치른 청소년들 가운데 누구라도 본인이 원하면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등록금 명목으로 학교에 내는 돈은 없었고, 주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한 학기에 약 100유로에서 150유로(약 15만원 내외)의 사회분담금(Sozialbeitrag)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 분담금을 내고 받는 학생증을 소지하면 해당 및 인근 도시의 지역 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주요 공연이나 전람회 등 문화관련 프로그램들에서 약 30%씩 할인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 분담금은 등록금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사립대학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대학은 해당 주정부의 교육부가 관할하는 국립기관이었다. 법학, 의학, 경영학 등 인기 있는 학과들에 학생들이 몰려 희망자들의 수능성적 순으로 입학이 결정되기도 했지만, 일단 희망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두고 한두 학기만 기다리면 대부분 학업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학 도서관도 대체로 시립 내지는 주립 도서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생이 아니어도 누구라도 해당 도시의 거주민이면 자유롭게 이용 가능했다. 한 마디로 대학의 문턱은 아주 낮았다.
이러한 문턱이 낮은 대학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공공성' 이념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공공성으로 가득찬 독일 대학은 오랫동안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손색없이 훌륭히 수행하면서 높은 명성을 유지해 왔다. 입학은 쉬웠지만 졸업은 모두 '석사 학위'를 따야만 가능했고, 부전공까지 지식을 갖추어야 해서 졸업에는 녹록치 않은 관문이 버티고 있었다. 박사 논문에 더하여 교수 자격 논문(Habilitation)까지 작성해 해당 학문의 기초 이론에 근본적인 기여를 하고 높은 수준의 구두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교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학의 생명인 아카데미즘은 계속해서 유지, 재생산될 수 있었다.
***2006년, 독일에서 대학 등록금이 처음 도입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독일 대학은 독일 사회가 보편적으로 당면한 여러 가지 도전들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핵심적인 사회 개혁의 대상으로 점점 부각됐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엘리트 대학들이 세계 학계를 주도하는 유능한 학자들의 배출을 독점하면서 '문턱이 낮은' 독일 대학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갔다. 미국 대학들은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 기업들의 엄청난 기여를 통해서 유능한 인적자원 개발에 전폭적인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는 형편이었다.
근래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학생들의 표준화된 학력 테스트인 '피사(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테스트'에서 독일은 연이어 중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는 독일 내에서 교육 개혁을 향한 목소리에 엄청난 힘을 실어 주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기여하는 것 없이 제공받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로서도 대학 측에 요구할 여지가 별로 없었고, 대학의 운영 조직은 행정기관의 경직성을 띄어 갔다. 극도로 자율적인 대학 문화는 학생들의 자발성에 의지하여 발전의 동력을 찾았지만 그것은 한계를 지니는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대학 등록금 도입 논의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물질화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올해 니더작센주는 사상 최초로 주 내의 대학들에 한 학기에 500유로의 등록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그 동안의 무상교육 전통과 제도는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대학 등록금 부과 추세는 현재 일파만파 다른 주들로 파급될 전망이다.
***독일의 반대편에서 출발한 한국의 교육개혁, 어디로 갈 것인가?**
교육개혁과 관련해 한국은 독일과 반대의 위치에 있다. 우리는 중등교육까지는 공교육의 전통이 강하면서도 고등교육에서는 일찌감치 시장의 논리가 깊숙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그 경향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대학 입학은 매년 국가적인 홍역을 치르는 극심한 경쟁을 수반해 왔고, 서열화된 대학사회에서 상위권 대학에 진입하기 위한 문턱은 언제나 높았다.
사회적 신분의 고착을 매개하는 핵심적인 상징자본으로 기능하는 대학 졸업장의 위세는 한 사람의 평생을 지배했고, 그럴싸한 '신분부'를 얻으려는 개인들이 10대 후반의 가진 것 없는 나이에 지불해야 할 비용은 해마다 솟아올랐다. 오죽하면 국제연합(UN) 인권위원회조차 OECD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엄청난 사교육비 지출 문제를 사회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규정했으랴?
독일의 경우 지나친 사회주의식 교육체계가 비효율과 정체를 낳아 개혁이 절절히 필요한 시스템이 되어 버려, 이제는 조금씩 개인들의 기여를 강제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그 큰 테두리는 본격적인 시장화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매학기 500유로(약 70만 원)씩 내봤자 약 10여 년 전 우리나라 국립대학들의 등록금 수준밖에 안 되며, 여전히 국립대학 위주의 교육체계는 대학교육의 골간이다.
단적으로 현재 한국의 사립대학 등록금을 어림잡아 350만 원이라고 해도 독일 대학에서 부과하는 등록금은 5분의 1 수준이다. 이미 일부 학과들의 경우 500만 원도 넘는 등록금을 내야 하는 것을 따지면 그 차이는 훨씬 커진다.
20세기 후반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낸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독일이 21세기를 맞이하여 시도하는 변신은 이웃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다른 나라들에 관심이 아닐 수 없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 여러 나라들의 제도를 카피하면서 성장해 온 우리로서도 독일의 변신은 일본이나 미국의 그것 못지않게 참고해야 할 의미를 지닌다.
만일 누군가 지금의 독일처럼 우리도 교육의 시장화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면 현재 독일과 한국의 교육체계의 시장화의 정도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미래의 독일이 지금의 한국 수준의 교육의 시장화에 이르기까지는 아마도 오랜 세월이 걸릴 뿐더러 어쩌면 거의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만일 누군가 과거의 독일처럼 우리도 무상교육 체계로 가자고 한다면 그는 지금 독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분명 우리에게 무상교육이나 교육의 공공성 강화는 지금의 병폐를 해결하는 중요한 개혁의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혁정치의 최대강령에 불과할 뿐 그것의 온전한 실현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500유로와 500만 원의 대학 등록금**
세계화는 분명 모든 나라를 움직이게 만들지만 그 결과가 반드시 수렴(convergence)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들이 현재 처한 상태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정서와 제도에 부합하는 '우리식 교육체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세계화가 시장화를 요구한다고 무리하게 그 쪽으로만 가서는 안 되고–꿈같은 이야기이지만-그의 역편향으로 교육이 공공성으로만 지배되도록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관건은 공공성과 시장성의 적절한(optimal) 조화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식 교육체계'의 해법일 것이다. 이를 위하여 중요한 의사결정자들과 전문가들의 지혜와 노력이 절실하며, 적절한 마스터플랜이 나올 때까지 교육의 주체들이 움직여야 할 때임에 틀림없다.
다만 우리에게 있어 현재 드러나고 있는 급진적 시장화의 병폐들은 공공성의 폐해보다 두드러지게 심각한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행여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일지라도 우리의 처지를 고려하면 오히려 과감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 학기에 500만 원을 바라보는 대학 등록금에 분노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겨우 500유로의 등록금 부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독일 대학생들의 목소리 보다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목소리가 두 액수의 차이인 7배 이상으로 지금보다 훨씬 커져도 그것이 '정당한 외침'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7배 비싼 한국 대학이 7배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그 외침의 정당성은 분명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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