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를 계기로 '민본21'이 '보수 혁신'에 불을 당겼지만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9일 50여 명이 참석한 초선 의원 토론회, 18명여 명이 참석한 재선 의원 토론회를 연달아 열었으나 논의는 백가쟁명에서 그쳤다.
홍정욱, 권영진, 권택기, 정태근 의원 등 일부 중립-친이 '쇄신파' 의원들이 "붉은 한나라당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기염을 토하며 보수에 대한 총체적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재선 의원 토론회에서도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는 애매한 토론이 주를 이뤘고, 이 모임 간사인 김정훈 의원은 "청와대(쇄신)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관건은 '청와대 참모들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이지만, 선뜻 나서는 인사는 없었다. "한나라당의 고질병인 권력 눈치보기(수도권 초선 의원)"라는 쓴소리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싸가지 없다는 소리 듣더라도" VS "쇄신하면 한나라 지지자에게 역풍"
이날 초선 의원 회의에는 50여 명이 참석했지만, 과거 'MB 친위대'로 불렸던 초선 의원 모임인 '선초회' 멤버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 시작부터 분위기는 '쇄신파'에 유리하지 않았다. 다수의 초선 의원들은 "우리 모두의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자"는 취지의 원론적인 주장을 통해 '청와대 쇄신' 요구를 사실상 일축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민본21 간사 권영진 의원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지금 대통령의 국정 쇄신, 청와대 참모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남 탓을 하는 것으로 보이느냐"고 반박했다.
권 의원은 "청와대에 나와 친분이 있는 선배들도 참모로 있는데, 대통령에게 쓴소리 하고 참모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저는 기분이 좋겠느냐"며 "쓴 소리 하고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우리는 (쇄신 요구) 얘기를 청와대에 해야 한다"고 의원에게 호소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성윤환 의원은 "청와대를 탓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우리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고, 정옥임 의원은 "세대 교체론, 쇄신 등 4년 전 열린우리당의 (자멸의) 모습과 똑같다"고 반박하며 "우리는 지방 선거에 작전, 전략, 전술에서 졌지만, 비전에 있어서는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희망을 갖고 있다고 본다"며 '쇄신 논의' 자체에 불만을 표했다.
나성린 의원은 아예 "감세 문제나 세종시, 4대강 사업 문제 등 정책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민주당과 같게 된다"며 "이런 비판을 그대로 받으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민심으로부터 큰 역풍이 있을 수 있기에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김문수 지사의 승리에서 쇄신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며 "김 지사는 어려운 선거였음에도 친서민과 낮은 자세로 승리했다. 감세, 세종시, 4대강 등에서 당의 입장을 견지하고도 승리했다"고 현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자신감마저 보였다.
재선 의원 모임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김정훈 의원은 논의 결과를 설명하며 "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에 대해서는 당정청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모두 같이 반성을 하고 국민들에게 좀 더 겸허히 다가가는 자세를 갖자는 의견을 나눴다"고만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보면 한나라당 내 '정풍운동'이 지난 해 4월 재보선 '0대5' 패배 이후 처럼 단기적 트렌드로 흐르다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민본21'과 일부 친이 쇄신파, 그리고 중립성향 의원 등 일부 '비주류'가 청와대와 청와대 주변을 둘러싼 강경파를 뚫을 수 있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홍정욱 "'붉은 한나라' 되는 것 두려워 말아야" 이날 홍정욱 의원은 "'쿨(Cool)보수'의 메시지와 메신저 발굴을 위한 중장기적 쇄신"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보수의 총체적 변화를 요구했다. 청와대나 당의 형식적 쇄신을 넘어 서자는 것이다. 홍 의원은 "국민의 심기를 세심히 헤아리는 국정 펼치기 위해선 국정기조의 전환, 당정청의 인적쇄신, 당정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며 "총선, 대선에 대비해 신선하고 유연한 메시지와 메신저를 창출하는 젊고 쿨한 보수운동 통해 중장기적 쇄신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소통과 타협을 모르는 촌티가 '한나라당스러움'의 요체"라며 "헌정과 법치를 중시하면서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면서 반대의견을 억누르고, 안정적 성장과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면서 전쟁불사의 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유연하고 신선한 보수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홍 의원은 영국의 'Red Tory(붉은 보수당파)'의 사례를 설명하고 "우리도 교육, 의료 등 복지분야와 통일, 외교 등 안보분야에서 경직된 태도 버리고 상대(진보)의 영역을 잠식해야한다"며 "푸른색을 탈색하고 때로 '붉은 한나라'가 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국정 쇄신'과 관련해 "여론에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은 독선과 독재를 자초한다"며 "역사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여론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정부와 여당의 소통 노력 평가할 것"이라고 이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홍 의원은 최고위원회에 초선의원의 몫을 만들고, 중진연석회의 대신 초재선 중심 차세대위원회와 최고위간 연대회의를 상설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청와대는 전당대회와 당의 인사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홍 의원의 '깜짝 발제'에 불쾌해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보수 매파'인 정옥임 의원은 "'쿨보수', 좋은 단어인데, 자칫하면 '꼴보수'로 잘못 들릴 것 같다"고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정 의원은 '붉은 한나라'를 주장한 홍 의원에게 노골적인 색깔론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과 보수의 기본 가치는 시장 경제, 자유민주주의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불쾌한 입장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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