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개인비리가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물론, 6자회담 이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남북경협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최근 발표된 현대그룹의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 부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70만3000달러이며 이 중 50만 달러가 남북협력기금이라는 것이다.
현대측은 지난 2001년 6월 한국관광공사의 대출금 900억 원을 비롯하여 2002년 초·중·고·대학생의 금강산 관광경비 지원으로 215억 원, 2004년 금강산 도로포장 공사로 27억 원, 중·고생 금강산 체험학습 경비 지원으로 29억7000만 원 등 모두 11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왔다. 따라서 이번 김 부회장의 비리 문제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북사업에 대한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과 남북관계 전반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김 부회장은 그 누구보다 단단한 대북 인적관계 기반과 신뢰를 바탕으로 대북사업을 이끌어 왔다. 그는 대북사업 초기부터 고 정주영·정몽헌 회장과 함께 현대의 대북사업을 주도해 왔으며, 북측과의 중요한 회담이 있거나 합의가 필요할 때마다 항상 그가 있었다. 특히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현대의 대북사업 자체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그는 훌륭하게 구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더 이상 대북사업에 관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그의 비리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남북협력기금의 개인적 유용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이미 그에게 내려진 도덕적 평가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윤규 부회장 사건을 계기로 현대의 대북사업 및 남북경협과 관련하여 살펴볼 문제들이 있다.
첫째, 김 부회장 없는 현대의 대북사업이 순항할지 여부다. 김 부회장의 인사 문제로 지난 8월부터 불거진 현대와 북측의 갈등을 조기에 해소하고 금강산사업을 정상화하는 것이 현 회장과 현대 측의 시급한 과제다. 지난 7월16일 현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직후 김 부회장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자, 일부에서는 '김 부회장에 대한 토사구팽' 또는 '현 회장과의 갈등' 등 여러 해석이 흘러나왔다.
이유야 어떻든 북측으로서는 김 부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 이후 김 부회장에 대해 내려진 조치에 대해 불쾌감을 갖고 있고, 지금까지 신뢰가 쌓인 김 부회장이 물러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금강산사업과 관련하여 2001년 당시 미지급금에 대한 보장이 없는 가운데 김 부회장이 물러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측이 현대와 사업을 시작한 것은 고 정주영 회장 및 그 일가와의 합의를 통해 시작된 것이며, 김 부회장은 단시 실무일꾼에 불과하다. 따라서 김 부회장의 거취문제에 따른 금강산 관광 및 현대 대북사업의 파행은 단기적·과도기적 현상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당국의 노력도 대북사업의 조기 정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현 회장측이 북측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가시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김 부회장 시절에 합의돼 추진되고 있는 사업의 철저한 이행을 보장해야 하며, 이미 북측에 지불해야 했을 자금에 대한 깨끗한 청산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둘째, 북측과의 연관성에 대한 과도한 해석에 대한 우려다. 이번 김 부회장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비리의 중심에 북측의 당국 또는 중요 인사들이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대북사업의 진행과정에서 일부 북측 인사들이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마치 이번에 제기된 비리가 대북사업에서 북측이 요구하는 구조적·관행적인 비리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태도는 참여정부 초기에 이뤄진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과 북측 당국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대한 의지를 매우 '불손하게' 폄하한 것과 유사하다. 북측에게 금강산관광 사업은 고 김일성 주석의 유훈사업이자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시해서 이뤄진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해당 사업에 대한 북측의 비리연루설은 직간접적으로 북한 최고지도부에 대한 결례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는 북측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번 비리와 북측 인사들의 연관 여부를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적용할 경우 자칫 대남사업에서 일하고 있는 북측 인사들의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남북협력사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남북경협기금의 관리 및 운용에 대한 투명성이다. 이번 김 부회장 사건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개별 회사의 자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빼돌렸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9월 19일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남북경협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남북협력기금의 대폭 증액 등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일로 다시 '대북 퍼주기' 논쟁이 재연되거나 남북협력기금의 확충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경협은 주지하다시피 남북 모두에게 실익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개성공단에 대한 남측 기업들의 참여와 관심으로 입증되고 있다. 남북경협 초기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일방적·지원적 성격의 사업으로 남북경협 전체를 호도해 '대북 퍼주기'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남북협력기금은 향후 예상되는 대북 협력사업을 감안할 때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2005년도 정부예산이 5000억 원이며, 2006년에는 1조 원 수준으로 올리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여당내 일부 의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일반예산의 1% 수준(약 1조5000억 원)으로 남북협력기금을 확충하지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이번 김 부회장 사건의 핵심은 투명하지 못한 기금의 운용 및 관리에 있는 것이지 기금조성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협력기금의 확충을 반대하거나 기금의 지원 및 활용이 위축되는 것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남북경협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당국은 남북협력기금이 보다 투명하게 운용·관리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이번 김 부회장의 비리와 퇴진은 당국간 채널의 부재와 법·제도의 미비 상태에서 진행된 남북협력 초기 단계의 부정적 현상이 노출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활용해서 북측에 대한 '비리공세'나 대북 협력사업의 중단·위축 등이 발생한다면 남북경협은 물론 남북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향후 남북경협이 보다 안정적이고 공개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즉, 김 부회장 사건은 남북경협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이며, 이를 계기로 필요한 법·제도를 보완하고 보다 공개적이고 세심한 정부의 지원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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