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달러화를 팔 것이라는 소식에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 여파로 23일 원화 환율이 한때 달러당 9백원대에 진입하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마저..."에 세계 달러화-주가 급락**
22일(현지시간)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외환보유고가 2천억달러로 세계 제4위의 외환보유국인 한국은행이 달러화를 매각하고 다른 통화를 사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확산되면서 달러화가 급락하고 주가가 급락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1.3% 급락한 달러당 1백4.13엔로 거래를 마감했으며, 달러.유로 환율 역시 1.5% 급락한 유로당 1.3257 달러에 거래됐다. 이날 유로화에 대한 달러의 낙폭은 지난해 8월6일 이후 6개월반만에, 엔화에 대한 달러의 낙폭은 지난해 10월8일이후 4개월반만에 최대치다.
JP 모건은 이날 일일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보유외환을 다양화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면서 "이는 의미있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던 최근의 태도와 대조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판단의 발단이 된 것은 한은의 21일 국회 재경위 업무보고서. 한은은 이를 통해 "2천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의 수익성 제고차원에서 향후 투자대상 통화의 다변화를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 '투자대상 통화 다변화'라는 한마디가 곧바로 달러화 매각으로 해석돼 세계금융시장을 크게 흔든 것이다. 한국은 일본,중국,대만에 이은 세계 제4위의 외환보유국으로, 그동안 보유외환을 주로 미국 재무채권(TB)에 투자해온 까닭에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화 파수꾼'으로 인식돼 있다. 반면에 중국 등은 오래 전부터 투자통화 다변화 정책에 따라 유로화 등으로 보유외환을 분산시켜왔다.
이러던 차에 한국조차 달러화 매각 의사를 비치자 국제금융계에서는 "한국마저..."라는 위기감이 확산됐고, 이는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한국의 뒤를 이어 달러화를 매각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확산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달러화 급락을 초래한 것이다.
이같은 달러화 급락은 뉴욕증시에도 타격을 가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백74.02 포인트 (1.61%) 내린 1만6천11.20으로 마감됐다. 이날 다우존스 지수의 하락폭은 지난 2003년 5월 이후 21개월만에 최대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도 28.30 포인트(1.37%) 내린 2천30.32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 역시 17.43 포인트 (1.45%) 하락한 1천1백84.16으로 각각 장을 마쳤다.
***"달러화 매각설 사실 아니다", 한은 서둘러 진화**
이처럼 '한은 쇼크'가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들자, 한은은 23일 서둘러 해명자료를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한은은 이날 아침 박승 한은 총재와 이사들이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갖고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최근 해외통신들이 보도한 한국은행의 미 달러화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공식 해명했다.
한은은 "2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보고할 자료에서 투자대상을 다변화할 계획이라고 기술했다"며 "이는 외환보유액을 비정부채 등으로 다양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유한 미 달러화를 매각해 여타통화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의 통화구성을 단기적인 시장요인에 의해 변동시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이같은 해명은 달러화 급락 및 주가 급락이 연초 간신히 회생 기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 및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참여정부 출범 2주기를 앞두고 주가가 급락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감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날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한은 쇼크'는 한국이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국가가 파산했던 7년전 IMF사태때와는 대조적으로 2천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무기로 국제금융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울러 이는 국제정치.외교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화 한때 1천원선 붕괴, 주가 급락**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달러화-주가 급락은 당연히 국내 금융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23일 오전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전일 종가보다 3.1원 낮은 1천원에 갭다운 개장한 뒤 오전 9시반 현재 전날보다 6.8원 떨어진 999.3원으로 하락했다. 달러화가 1천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97년 11월17일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한은의 해명이 나온 직후 상승세로 반전해 오전 9시37분 1천2.30으로 반등폭을 확대하고 있으나,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원화 초강세로 수출경제에 큰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주가도 이틀째 급락해, 종합주가지수는 전일 종가보다 9.64포인트 떨어진 9백68.16으로 거래를 시작했으며, 코스닥 또한 전날보다 9.22포인트 떨어진 4백85.51로 거래를 시작하며 맥을 못추고 있다.
***국제유가, 4개월만에 배럴당 50달러 재돌파**
이날 세계적 달러화-주가 급락에는 '한은 쇼크'외에 '유가 급등'도 주요요인으로 작용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 중질유(WTI)는 거래 마지막날인 22일(현지시간) 지난주말에 비해 배럴당 2.80 달러(5.8%)나 폭등한 51.15 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0월29일 이후 최고가이며, 이날 하루 상승폭 5.8%는 지난해 6월1일이후 8개월여만에 최고치다.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에서 4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도 전날에 비해 1.89달러(4%) 오른 48.62 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런던의 원유가 역시 지난해 10월 29일 이후 최고가다.
현재 유가는 지난해 10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 55.67달러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12월10일 배럴당 40.71달러로 저점을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 26% 급등한 것이어서 세계경제에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유가 급등은 내달 16일 이란에서 열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2.4분기 산유량 감축 결정 가능성과 미국 북동부와 유럽의 겨울 막바지 추위 예보, 그리고 달러 약세에 따른 유로화 강세로 원유수입단가를 낮아져 유럽의 석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세계최대 헤지펀드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가 앞서 2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경제포럼에서 달러화 약세가 주로 석유수출국들의 달러화 매각에 기인한다고 분석하면서, 국제 유가가 오를 경우 달러화 가치가 더 하락할 것이라고 한 전망도 이날 달러화 급락과 유가 급등을 동반초래한 결과를 낳는 데 작용했다.
연초 '유동성 장세'로 경기회복 기대감이 컸던 한국경제가 환율과 유가라는 '외생변수'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한국경제의 앞날이 핑크빛만은 아님을 일깨워주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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