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99일을 맞아 생명이 경각에 달린 지율스님(48)을 일각에서 "자살특공대" "위장단식" 등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참여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해석가능하다. 지율스님은 과연 사바세계의 '정파적 중생'들로부터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인가.
지율스님은 지난 2003년 부산역 앞에서 38일간 단식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3천배 기도, 45일간의 단식을 한 바 있다. 지율스님은 지난해 이때 적어두었던 일기 형식의 글을 엮어 자그마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펴냄)) 이 책에는 '스님'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지율스님이 단식동안 느껴야 했던 아픔과 번뇌가 곳곳에 배어있다.
지율스님이 홀로 느꼈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글 몇편을 소개한다. 편집자.
***어머니 이야기**
[단식 스무닷샛날] 어머니의 전화
밤늦은 시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목소리부터 잠기셨습니다.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느냐"고.
처음 출가를 했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남들처럼 살면 안 되느냐"고.
이만큼 무심하게 멀어져 왔는데도
아직도 마음의 끈을 놓지 못하시는 부모님을 향해
투명스럽게 대꾸합니다. "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게 잘 있는 거가."
전화를 끊고 가로등 불빛만 휑한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삭막한 거리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넘는 꿈을 꾸다 길을 잃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다고
어머님한테 이야기한들......
[단식 스무엿샛날] 새벽은 아득히 멀고
어머님과의 전화 통화 때문이었는지 지난밤에는
꼬박 잠을 설쳤습니다
차창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도 유난히 시렸습니다.
추위가 오면 추위 속으로, 더위가 오면 더위 속으로
몸을 숨겨햐 한다고 하지만 이제 더는 숨어 버릴 곳이 없어
새벽이 오기만을 뜬눈으로 기다렸습니다.
(단식 93일째이던 지난달 27일 지율스님의 어머니 임옥달(71)씨는 청와대 앞에서 "딸이 죽으면 나도 청와대 앞에서 죽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구명을 요청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지율스님의 동생 조씨는 "어머니도 건강이 안 좋은 상태신데, 딸 걱정 때문에 이렇게 나오신 것"이라며 "지율스님도 걱정이지만 어머니도 걱정"이라고 안타까움 심정을 털어놓았다. 편집자.)
지난 2003년 부산신청 앞에서 31일째 단식 농성을 진행중인 지율스님이 각계에 눈물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 때만해도 지율스님은 단식 농성이 네 번에 걸쳐 2백일이 넘도록 이어질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자살한 노동자 이야기**
[단식 스무하룻날] 고 김주익 열사
12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 가신
고 김주익 열사님의 애도 집회 행렬이
시청 앞을 지나갔습니다.
우리들은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때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눈과 가슴이 저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독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보다는 괴로움이 적다던
권력의 힘과 자본의 논리 속에 꿈마저 매장시킬 수 없었던
한 노동자의 주검 앞에 삼가 머리 숙여 슬픔을 표합니다.
(고 김주익 열사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회사의 노조파괴공작에 맞서 부산 공장내 크레인에서 1백29일동안 고공투쟁을 하다가 2003년 10월17일 목을 매 자살한 노동자다. 고인은 유서에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백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은 것은 팔십 몇만원에, 근속연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한 현실" 을 폭로한 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인 나라"를 질타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편집자.)
***청와대 이야기**
[단식 서른하룻날] 헐거운 신발
걸을 때마다 발꿈치가 신발에서 빠져나간다.
아, 하고 마음속으로 짧은 비명을 지른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내게서 헐거워져 가고 있다.
자꾸 흘러내리는 바지춤과 품이 넉넉해지는 적삼도.
오후에 정보과에서 찾아와 강제 입원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것이 현재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의 지시 사항이다.
저들은 헐거워져 가는 내 육신에 또다시 손을 대고 싶어한다.
그러고 나면 내사 사랑했던 모든 것에 손을 댈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리와 폭력으로 얼룩져 가는 이 땅에서 날마다
죽어야 사는 이 사회에서 죽음에 대해 연민할 리 없는 저들이.
나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진실의 모습이기를 바란다.
또한 진실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란다.
[단식 서른닷샛날] 슬픈 꿈
눈에 흙이 들어가도 천성산에 구멍을 내게 하지 않겠다고
기억도 흐린 꿈의 끝에서 버럭 소리지르며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내 깊은 무의식까지 찾아와 위협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 깊은 어둠이 싫다.
천성산 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청와대의 간부와
통화했던 지인의 말을 빌면 그들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한다.
죽이진 않는다고 한다. 입원실까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그들의 대답이 마음을 슬프게 한다.
죽이진 않는다는 그들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입원실까지 정해져 있다는 그들의 말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들은 그들 식의 해결 방법이 있다.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죽이진 않는다.....꿈으로까지 찾아와 나를 위협하고 간다.
슬픈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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