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치매로 5년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늘 귀가 어두워서 아내와 가끔 다투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린다. 그러면 장모님은 늘 알아듣지 못하고 딴 짓만 하셨다. 그러면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결론은 항상 “나 귀 안 먹었다니까!”라고 소리치신다. 사실 가는 귀먹은 것은 맞는데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다. “엄마 귀먹었다니까.”, “아냐 나 귀 안 먹었어.”라며 몇 번을 소리치다 보면 결국 사위가 나서야 한다. “어머니 귀 안 먹으셨어요.”라고 하면 좋아하셨다.
가끔 모임에 가면 사회를 보아야 할 때가 있다. 막간을 이용해서 시간 때우기로 제일 좋은 것이 우리말의 뜻을 맞추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만 원 짜리 한 장 꺼내 들고 “귀가 먹다.”의 높임말이 뭔지 아시는 분 손 들고 답해 보라고 하면 거의 99%가 “귀가 잡수셨어요.”라고 대답한다. ‘먹다’의 높임말이니까 당연히 ‘잡수시다’라고 한 것이다. 사실은 ‘귀가 먹다’는 ‘귀가 막히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귀먹으셨어요.’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은 “먹으셨어요”라고 하면 어색한 모양이다.
우리 민요 가운데,
“귀먹어서 삼년이요, 눈 어두워서 삼년이오, 말 못해서 삼년이오”
“석 삼년을 살고 나니 배꽃 같은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박갑수,<우리말의 허상과 실상>에서 재인용)
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 ‘귀먹어서 삼년’이라는 말이 ‘귀를 막고 삼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는 ‘코가 막힌 것’도 한자로 ‘비색(鼻塞)’이라고 한다. ‘코먹은 사람’이라고 하면 콧물을 먹은 사람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코가 막힌 사람’이라는 뜻이다. ‘눈이 안 보이는 것’도 “눈이 멀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멀다’가 “거리가 멀다의 원(遠)”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어둡다 명(冥)’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시력이나 청력 따위를 잃다”의 뜻으로 ‘멀다’를 쓰고 있다.
우리말에서는 이와 같이 어원과 전혀 관계없이 다른 말로 변한 것이 많다. ‘막히다(색(塞)’가 어느 새 ‘먹다(식(食)’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마 초기 칼럼에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갈매기살 <= 간(칸)막이살(횡격막), 감자탕 <= 간자탕(뼈 사이에 있는 살코기를 간자(間子)라고 한다)과 같이 발음하기 쉬운 것이나 귀에 익은 것으로 발음하고 그것이 표준어로 굳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흔히 하는 실수 중에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하다’가 기본형인데 상대방을 높이다 보니 말씀이 계신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하도 많이 봐서 언제라고 할 필요도 없다. ‘있다’의 높임말이 ‘계시다’니까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계시다’라는 말은 유정물(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겠습니다.”라고 해도 충분한데 굳이 사람이 아닌 것까지 높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우리 학생들이 자주 틀리는 경어법 중에 “선생님이 너 오시래.”라고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선생님께서 너 오라고 하셔.”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인데, 급하게 ‘시(존칭선어말어미)’만 넣으면 되는 줄 알고 이런 표현을 한다. 외국인의 경우는 더 심하다. ‘시’를 어디에 넣어야 좋을지 몰라 아무 데나 넣는 경우를 많이 본다. 외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 경어법이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은 다 알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표현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귀먹다’와 같은 것은 특별한 경우니 지식을 많이 갖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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