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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죽여 숲을 지킨다고?

[함께 사는 길] 민가공원특례사업에 대한 서상옥의 반문

"누구 맘대로 도시공원을 민간개발자에게 맡기나요?"

서상옥 천안아산환경연합 사무국장의 말에 날이 서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1일, 일봉산 6.2미터 나무 위의 고공농성에서 17일 만에 내려왔다. 오를 땐 스스로의 힘으로 올랐으나 내려올 땐 아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홀로 11월 추위 속의 산에서 텐트 하나에 의지해 열흘 넘게 단식까지 했으니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던 것이다. 의식을 잃은 그를 구급대원들이 들어내려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 이상 없이 퇴원했지만 그는 건강을 다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일봉산을 찾았다.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의 후유증이 그를 괴롭히고 있지만 일봉산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이다. 고공농성과 단식을 중단했지만 그는 아직도 일봉산 상황실로 출퇴근하며 일봉산 개발을 막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숲 지켜 달라 묵살한 시와 의회

아파트와 건물, 도로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턱 밑까지 그 세를 넓혔지만 일봉산은 숲으로 남았다. 상수리, 단풍나무, 잣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10미터가 넘어 1월에도 울창함을 자랑한다. 천안의 허파라 불릴 만하다. 접근성도 좋고 완만한 경사라 누구든지 어려움 없이 숲길을 걸을 수 있어 주변 주민들은 물론 천안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심에서 일봉산이 제 모습을 지키며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봉산이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7월 1일 도시공원에서 해제될 위기에 놓였다.

2020년 7월 1일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에 따라 전국 도시공원의 53퍼센트, 504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도시공원이 사라질 예정인데 천안 일봉산도 그중 하나다. 천안시가 일봉산을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고도 20년 넘게 차일피일 부지 매입과 조성을 미룬 탓에 도시공원 일몰제 대상이 된 것이다.

"천안환경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주민들은 2년 넘게 일봉산을 지키기 위해 천안시에 합리적인 절차를 요구해왔다. 주민들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진행하자고 요구했지만 천안시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이대로는 두고 볼 수 없어 고공농성을 선택하게 됐다. 그 와중에 시민들을 대변할 시의회마저 시민들의 뜻을 저버렸다. 천안시의회는 이를 안건으로 상정했지만 무기명 투표로 진행하면서 부결시켜버렸다. 천안시장과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무기명 투표로 진행한다는 건 시민들의 뜻을 대변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과 절망감이 컸다. 도저히 합리적인 이야기로는 안 되는구나 싶어 단식농성을 선택했다."

서상옥 국장이 주변의 만류에도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을 택하게 된 이유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일봉산을 지켜야 했고 세상에 일봉산 개발의 부당함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 서상옥 천안아산환경연합 사무국장. ⓒ함께사는길(이성수)

참나무 숲 밀어 도시공원을 지키겠다고?

일봉산을 지켜달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천안시가 내놓은 대책은 민간공원특례사업이다. 천안시가 지정한 민간사업자에게 도시공원 부지를 매입토록 해 30퍼센트 범위 내에서 개발을 허용해주고 나머지 부지를 공원 시설로 기부 받겠다는 것이다. 천안시가 지정한 민간사업자는 일봉산 참나무 숲을 밀어 2753세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70퍼센트는 공원으로 남지 않느냐는 것이 천안시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공원시설로 기부한다는 70퍼센트 부지들 대다수는 경사도가 급하거나 접근도가 떨어져 개발이 불가능한 곳이다. 또한 70퍼센트도 온전히 보전되는 게 아니다. 공원으로 보전한다는 부지에 수백 대의 주차장을 건립하고 문화체육시설, 수영장, 산책로, 자전거도로 등 인위적인 시설 중심의 개발 계획이다. 50~60년 된 참나무 군락지를 밀어버리고 인공시설 위주의 공원을 만들겠다니, 어불성설이다."

시민들의 반발에도 천안시는 일봉산 외에 2곳의 도시공원도 민간공원특례사업에 따라 민간사업자에 넘기겠다는 입장이다.

"3개 도시공원 모두 아파트로 개발될 계획이다. 개발수익을 높이자니 아파트밖에 답이 없다. 문제는 이곳이 아파트 부족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분양이 적지 않다. 민간공원특례사업 제도를 만든 것 자체가 도시 환경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민간특례를 손보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 맘대로 도시공원을 민간개발자에게 맡기는가."

사실 도시공원 일몰제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99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예고되었던 일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천안시는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아무 것도 안 했다. 도시공원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일봉산 개발예정지의 15퍼센트가 국공유지다. 국토부가 존치권고안을 냈는데도 반영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대안으로 요구한 것들마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개발업자 편에 서서 개발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 민간특례사업 의혹 중 하나가 특혜 의혹이다. 민간특례사업을 추진한 구본영 전 천안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잃었는데 판결 일주일 전 주말에 시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사업자와 MOU를 체결했다. 그와 관련한 그 어떤 정보도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임 시장의 특혜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권한대행을 맡은 부시장은 오히려 사업에 속도를 더 내고 있다. 최근에 개발업체가 사업예치금을 납부했고 사업자지정고시까지 끝난 상태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토지 소유주의 사유재산권 침해를 해결하고자 나온 제도다. 하지만 도시공원 일몰제 대안이라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민간사업자가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일봉산의 소유주의 대다수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을 반대한다고 서상옥 국장은 말했다.

"일봉산 소유주가 157명이다. 그중 가장 많은 토지를 갖고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도 민간특례로 토지를 강제 수용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토지 소유주 중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찬성하는 분들은 소수다. 대다수는 우리가 도시공원 일몰제 대안으로 제시해온 재산세 감면 등을 더 선호한다."

앞으로 5개월, 우리가 할 일은

일몰제 시행 전까지 앞으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일봉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서 국장은 아직 낙담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아직 중요한 절차들이 남아있다. 일봉산 정상이자 아파트 개발지 내에 충남도가 지정한 사적 13호 홍양호 선생 묘가 있다. 충남도 조례에 따라 홍양호 선생 묘 반경 500미터 내에는 지역문화재 보호구역으로 개발행위가 불가하다. 개발하려면 도에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 일봉산 민간사업자가 두 차례 심의를 요청했지만 둘 다 부결됐다. 그럼에도 사업자는 또다시 심의를 요청해 오는 2월 말에 3차 심의가 예고되어 있다. 층수를 조금 낮춰 계속 올리는 거다. 아마 심의가 통과될 때까지 사업자는 심의를 올릴 것이다. 대책위는 홍양호 선생의 묘 일원은 물론 일봉산 전체를 문화재보호구역으로 확대 지정하는 조례를 요구하는 시민청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환경영향평가다.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금강환경청은 보완을 요구한 상태다. 이에 대해 사업자는 아직 보완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부동의한다면 일봉산 개발사업은 중단된다. 앞서 대책위가 감사원에 청구한 일봉산 민간특례사업에 대한 감사도 진행 중이다.

고공농성과 단식농성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천안시와 사업자는 그동안 외면해왔던 주민 공청회에 응하겠다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이어 지난 1월 7일에는 일봉산 조성사업 주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며 그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을 의식한 면피용 발언이라고 본다. 설문조사도 마찬가지다. 사업자가 진행하는 설문조사를 두 달간 지켜봤다. 합리적인 설문조사가 아님을 초등학생도 안다. 주민들에 따르면 낮에 노인들 상대로 대필서명을 한 경우가 많았고 30퍼센트 아파트 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70퍼센트 공원 보전에 대한 설문조사라고 했다. 기자회견을 할 때도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았는데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충남도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도시공원 문제에 관해 도는 사무 권한이 없다며 발뺌해왔었는데 고공농성 후 여론이 확산되자 첨예한 지역사회의 갈등을 도가 책임지고 풀겠다며 일봉공원을 비롯한 '도시공원 일몰제 민관협의회'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는데 민관협의회에 참여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요구를 하고자 참여의견을 밝혔다. 아직 최종 구성안은 도가 마련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관협의회가 잘 진행된다면 일봉산의 합리적인 대안을 찾고 민간공원특례사업 대상인 다른 도시공원들의 해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민간특례사업 본질을 잘 모른다. 몇몇 시민단체만으로는 힘들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일봉산을 비롯한 도시 숲을 지킬 사람들은 결국 우리 시민들이다."

ⓒ함께사는길(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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