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거짓말도 필요한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창작물은 허구를 얼마나 사실감 있게 만드느냐가 그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 2009년 작, 영화 <거짓말의 발견(The Invention of Lying)>은 거짓말의 순기능, 즉 허구의 상상력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감성 돋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현생 인류가 허구를 꾸며낼 수 있는 능력(인지 혁명)을 만들었기에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현실에서 거짓말은 순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2011년 5월 <주간경향>은 거짓말을 악한 정도에 따라 다섯 등급으로 나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가장 낮은 5등급은 '손만 잡고 잘게'로 대표되는 '뻔한 거짓말'이다. 4등급은 '자장면 이미 출발했다'로 대표되는, '나중에 화가 조금 나는 거짓말'이다. 3등급은 '거짓말을 고백해도 화나는 거짓말'이다. 정치인의 헛공약이 여기에 해당한다. 2등급은 '본인만 아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의 최고봉 1등급은 '자신의 거짓말을 자신이 믿는 단계'다. '4대강사업은 생명을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1등급에 해당하는 이들은 중증 허언증, 즉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환자라고 부를 만하다. 리플리 증후군은 고전 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1960)에서 알랭 들롱이 맡은 '톰 리플리'에서 따왔다. 영화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리플리는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해 살인과 더 큰 거짓말로 신분을 속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했다.
이런 리플리 증후군이 많을수록 사회는 탁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국가와 사회는 상식과 이성을 근거로 피해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게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다. 만약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리플리 증후군에 걸렸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조차 쉽지 않지만, 불행히도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국가 시스템
영화 <삽질>은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국가와 사회를 통렬하게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삽질>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2년 동안 강을 살리겠다던 국가 권력과 이에 부역한 사회의 민낯을 4대강사업 이후 변해버린 짙은 녹조에 담아 드러내고 있다.
4대강사업에 대해 우리 국민 70퍼센트는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심지어 멀리 미국과 독일 교민사회에서도 4대강사업 반대 운동이 벌어졌었다. 국제적 전문가들 또한 한결같이 비판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복원이 아니며, 강을 파괴하고 혈세를 낭비할 것"이라 지적했다.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그럼 4대강사업은 어떻게 추진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은 국민 상당수가 반대 또는 우려한 사업을, 다시 말해 예견된 파국을 피하지 못할 만큼 후진적 시스템이었을까?
영화 <삽질>의 김병기 감독은 기자 출신으로서 2006년 MB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사업을 취재해왔다. 김 감독은 "4대강사업은 절대 MB 혼자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단기간에 22.2조 원 규모의 '단군 이래 최악의 토목사업'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청와대만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국가의 사기'에 적극적으로 부역할 때만 가능한 일이란 지적이다.
MB정부는 4대강 비판 목소리를 탄압하기 위해 국정원과 같은 국가 사정기관을 대거 동원했다. 주류 전문가 집단 역시 4대강사업에 철저히 부역했다. 언론은 감시자로서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에 부화뇌동했다. 이들은 대운하와 다를 바 없는 4대강사업에 대해 "치수는 국가 백 년의 대계"라며 "4대강 정비 사업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4대강사업은 환경과 경제를 모두 살릴 수 있다"라는 근거 없는 MB정부 주장을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4대강 비판 목소리엔 '종북세력'과 같은 색깔론으로 낙인을 찍으려고도 했다. 결국, 4대강사업은 이성과 상식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시스템을 마비시켰기에 가능했던 사업이었다.
시계를 2007년 대선 시기로 돌려보자. 당시 MB는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한반도대운하연구회라는 전문가 집단이 MB를 좇았다. 앞서 2006년 말 MB측은 독일 MD 운하(마인-도나우 운하) 현장을 둘러보면서 '발전하는 독일 운하 주변 항구 도시처럼 우리나라 내륙을 항구 도시로 만들겠다'도 했다. 그들은 "한반도 대운하는 물류 혁신을 일으키는 국운 융성의 길"이라며 "공사비 절반은 골재 판매로 충당하고 나머지 비용은 100퍼센트 민자 사업이기 때문에 국민 세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삽질> 카메라는 MB가 다녀간 독일 현장을 따라 검증에 나서 쇠락하고 있는 독일 운하와 그 주변 도시 모습을 담았다. 운하 때문에 발전했다는 MB측 주장과는 정반대였다. 이어 경부운하 구간에 다니는 하루 12대의 배로는 물류 혁신은커녕 세금만 낭비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때 그냥 '거짓말 3등급'인 '헛공약'으로 끝내는 게 나을 뻔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MB정부는 한반도 대운하를 4대강사업으로 위장해 강행했다. 2008년 12월 국토해양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MB는 "명칭이 4대강 정비 사업이지만, 나는 4대강 재탄생이라고 본다"라며 "환경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환경이 살아나는 사업"이라 말했다. 이 무렵부터 정부는 4대강 정비 사업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바꿔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4대강사업은 대운하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라며 "갑문만 없는 대운하 1단계"라고 지적했다. 실제 당시 국토해양부 내부 문건과 국토부 장관 발언에서도 대운하를 염두에 둔 계획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2013년 7월 감사원은 "대운하를 염두에 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MB정부는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전광석화같이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 KTX 탄 것처럼 속도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4대강사업을 속도전으로 강행했다.
깃털만 처벌, 몸통은 여전히 승승장구
2011년 10월 22일 남한강 이포보에서 '4대강 새 물결 맞이 행사'가 열렸다. 공영방송 KBS가 생중계한 자리에서 MB는 "4대강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라며 "대한민국 4대강은 생태계를 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강으로 태어났다"라고 말했다. MB측은 "4대강사업은 성공"이라며 이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올렸다"라고 주장했다. 2015년 1월 MB는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 살리기가 시급한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할 여력이 우리에겐 없었다"라며 "4대강사업을 통해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라고도 주장했다.
<삽질>은 MB측의 '1등급 거짓말'을 하나하나 짚어냈다. 4대강사업 이후 '녹조라떼'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의 대규모 녹조 번무 현상이 일어났다. 또 기록적인 어류 집단 폐사와 큰빗이끼벌레 등 이전까지 강에서 쉽게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벌어졌다. MB측은 경제를 살렸다고 하지만, 2018년 7월 감사원은 4대강사업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을 0.21(한강 0.69, 낙동강 0.08, 금강 0.17, 영산강 0.01)로 분석했다. 다시 말해 100원을 투자하면 79원이 손해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감사원 발표 내용을 근거로 따져보면 4대강사업을 향후 50년 동안 유지하면 25.4조 원이 추가로 낭비된다.
김병기 감독은 MB정부가 대운하를 4대강사업으로 위장해 추진한 진짜 이유를 당시 관계자를 추적해 확인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 정부 불통에 대한 국민 촛불 저항이 거세지자 2008년 5월 MB는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축소해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6월에는 "국민이 반대한다면 대운하를 포기하겠다"라고도 말했다. 이전까지 국민 반대 여론에 밀려 4대강사업으로 전환한 것처럼 알려졌다.
<삽질>은 그게 아니라 말한다. 100퍼센트 민자 사업으로 하겠다던 게 한반도 대운하였다. 반면 4대강사업은 100퍼센트 국민 혈세가 들어갔다. 대운하 추진을 위해 대기업 건설사들은 공사 실적에 따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들은 민자 사업으로는 수익이 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라 MB정부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재정사업으로 기초 공사를 하고 이후 갑문과 항구 건설을 민간 건설사들이 하는 것으로 구상했다. 영화 <삽질>이 밝혀낸 새로운 사실이다.
'대국민 사기극', '국토환경에 대한 반역, 반란'으로 평가되는 4대강사업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이들은 4대강사업 담합 건설사뿐이었다. 다시 말해 깃털뿐이다. 몸통, 즉 대운하와 4대강사업을 위해 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를 마비시킨 장본인들은 멀쩡하다. 4대강사업에 철저히 부역한 전문가와 언론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검찰은 뭐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 정의는 살아 있을까? 영화 <삽질>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정의를 다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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