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OECD 국가 평균의 네 배인 노인빈곤율 대책으로 2014년 7월부터 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바꾸면서 지급 범위와 금액을 확대하고 높였다. 연금은 20만원으로 인상되었고 수혜자는 소득하위 70%까지 확대되어, 보편적 복지에 가까운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기초연금 시행 5년에 대한 각종 평가를 보면 노인빈곤율이 다소 완화되었고, 저소득 계층에서는 삶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는 응답이 많아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에는 '옥에 티'라기에는 너무 큰 사각지대가 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그것이다.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 약 520만 명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노인이 약 40만 명인데, 이들에게도 기초연금법에 의거하여 기초연금이 지급되지만 한편으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에 의거하여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 금액만큼이 삭감된다. 결과적으로 수급노인에게 기초연금은 앞문으로 들어왔다 뒷문으로 나가는 유령연금으로, 이름하여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 된 것이다. 초등학생도 계산되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셈이다.
수급노인 통장에는 기초연금이 들어갔다 나와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아무런 혜택이 없음은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줬다 뺏고 있는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원리인 '보충성 원리' 때문이다. 정부는 일정한 최저생계비를 책정하고 당사자인 수급자의 소득이 기준 생계비에 부족한 부분만큼을 채워주도록 설계한 것이 보충성 원리이다. 이에 따라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인정하여 추가소득 만큼을 생계급여에서 삭감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충성 원리 자체가 아니라 기초연금제도에 보충성 원리를 연동시킴으로 발생되는 차별적 결과이다.
이 결과라고 하는 것은 기초연금을 받는 520만 명 중 480만 명에게는 다달이 25~30만 원의 추가 소득이 발생하지만 최하위 40만 명의 수급노인은 소득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심각한 노인빈곤 해소를 목적으로 도입된 기초연금제도에서 수급노인은 실질적으로 배제된 것이다. 제도에서 배제되고 '최저생계비 우리'에 속박된 삶이 보충성 원리 연동의 결과이다. 어떤 새로운 제도의 시행은 더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함이고, 어떤 정책 원리의 적용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함에도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이 둘 다를 미리 챙기지 못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복지정책입안자들은 이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초연금 사각지대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필설로 옮기기에 부적절한 명예훼손의 비난을 했고, 심지어 일부는 수급노인들에게는 (사회복지학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힘든) 모욕적 언사까지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은 최저생계비 수준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초연금이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50% 오르는 동안 정책 권력을 가진 그들이 최저생계비를 몇 % 올렸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경로에서 2017년 99명 수급노인 당사자가 이 문제의 헌법상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줬다 뺏는 기초연금' 정책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요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초연금을 이전소득으로 인정하여 생계급여에서 삭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은 헌법재판소에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다투는 대상이 될 수 없고 입법재량의 일탈이라 보기 어렵다.
둘째,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액만큼 삭감하여 지급하여도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국가로부터 받는 현금급여 총액은 달라지지 않기에 현저한 불이익이라 볼 수 없다.
셋째,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액이 삭감되더라도 국가로부터 장기요양보험, 노인일자리사업, 치매검진, 의료비지원제도와 각종 감면혜택(주민세 비과세, 동절기 에너지 바우처,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수수료 면제 등)을 받고 있기에 평등권을 침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는 희망의 푸른색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곳! 바로 헌법재판소입니다." 국가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용기를 내어 청구인으로 참여한 것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일말의 희망을 품고 헌재 심판정에 들어선 수급노인들에게 헌재 선고는 실망스러웠지만, 판단의 근거를 설명과 문서로 듣고 보는 시간은 실망 그 이상의 절망과 암흑이었다. 노인들은 복지부 노인복지정책의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는데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법복을 입은 복지부와 기재부의 공무원이었다. 수급노인들은 기본권과 평등권을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헌재 재판관들은 '견지망월(見指忘月)' 복지부 자료만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헌재의 결정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면서 이 문서가 보건복지부나 기획재정부의 자료를 잘못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침해 여부", "평등권 침해 여부", "행복추구권 침해 여부"로 주제를 구분하여 판단하였지만, 각각의 문단 어디에서도 '인권'의 문법과 정신은 찾을 수 없이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기초생활수급 당사자 노인들이 헌법재판소에 본질적으로 물은 것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인해 수급 노인과 비수급 노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진적 격차' 문제였다. 기초연금 도입과 인상으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비수급노인의 가처분소득은 증가하는데 반해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가처분소득은 제자리에 머무는 게 헌법에 담긴 평등권에 부합하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위에서 요약한 세 가지 내용처럼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며 부수적 사안만을 다룰 뿐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라 본다.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 뺏고 있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적 박탈감과 불평등 심화" 문제 또한 인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 앞으로의 과제는 정부 재량권(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과 수급노인의 기초연금 수급권 즉 인권보장의 문제로 남게 되었다. 이제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고수하는 정부와 정책 입안 학자들이 공개된 자리에 나와서 사회적 토론에 응해야 할 것이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국가의 복지폭력이고 빈곤노인의 노후소득보장권을 침해하는 인권침해라고 규정하는 측과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측이 만나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의 해결을 우리 사회에 합리적 담론의 장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헌재 판결이 있던 날의 안국동 하늘은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은 회색빛이었다. 당사자와 국민들이 보는 공론의 장에서 (복지부 장관, 옹호 학자, 국회의원, 수급노인 당사자, 복지시민단체 등의 관계자들이)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수급노인의 기초연금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야 한다. 동절기 전기장판을 후원받아도 전기료 걱정에 전기장판을 쓰지 않는 노인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에만 복지사각지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가족이 18세대 70여 명이나 된다. 수급노인이 전기장판 위에서 참혹한 사건으로 발견되어야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인가? 수급노인들은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을 것이다. 노인복지 사각지대 '줬다 뺏는 기초연금'을 하루속히 해결하여, 빈곤노인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인간답게 사는 시간을 마련해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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