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며칠 전 저는 전문가 자격으로 tbs <TV민생연구소> 제작진과 함께 위원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위원장이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자료를 살핀 뒤 12월 18일 방송에서 일러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방송이라 시간에 쫓겨 뭉뚱그려 말하고 만 것입니다. 아쉬움에 글을 씁니다.
시민단체에 도움 청하기
우선 비상대책위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전합니다.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하셔야 합니다. 위원장이 처음 본 제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라는 부탁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상인들 모임이라서) 임대차 분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합니다. 비상대책위원회에는 관련 문제에 이골이 난 시민단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두 단체를 추천합니다. 모두 연락하여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하십시오.
△첫째,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입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 운동을 펼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 시민단체 중 유일하게 강제집행을 막습니다.
△둘째, 참여연대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시민단체입니다. 여길 통하면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다른 시민단체의 도움도 얻을 수 있습니다.
내부 정리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내부 정리’입니다.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현재 상인들이 내쫓겨 생계를 잃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상인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을 보호해주는 기간인 10년을 넘겨 장사했고, 한진중공업은 임대차 계약 만료 약 2개월 전에 내용증명을 보내어 임대차 계약 종료 의사를 명확하게 표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진중공업 사정에 의해 상인들이 내쫓겨 피해를 보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한진중공업이 위법을 저지른 결과는 아닙니다.
이는 우리네 임차인 보호 법률이 ‘후져서’ 발생하는 부조리입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관련 법률이 다음의 논법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①임대인 사정에 의해 임차인이 내쫓겨 피해를 입는다. → ②임차인의 피해는 임대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 ③그러므로 임대인이 임차인의 피해를 보상해주어야 한다.
이상의 논리에 의한 보상을 ‘퇴거 보상’이라고 합니다. 사실 퇴거 보상은 상식입니다. 홍길동 씨 때문에 황진희 씨가 피해를 보았다면, 그 피해의 보상은 당연히 홍길동 씨가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애석하게도 이런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가 대한민국 임대차 보호법에는 탑재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 한진중공업의 사정에 의해 상인들이 내쫓겨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둘, ‘가해자’인 한진중공업은 (본인 사정에 의한) 상인들의 피해를 보상할 생각이 없습니다. △셋, 한진중공업의 그러한 행동(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 행동)은 상식에 어긋납니다. △넷,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합법입니다.
필시 지금 비상대책위원회 내에는 가해자인 한진중공업이 상인들의 피해를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견해를 지닌 상인과 그런 주장은 지나치다는 의견을 가진 상인이 섞여있을 겁니다. 전자는 한진중공업을 향해 상인들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며 이른바 ‘투쟁’을 할 수 있는 그룹입니다. 후자는 그럴 수 없는 그룹입니다. 후자는 시시때때로 다음의 말을 하며 위원장 등의 사기를 꺾을 겁니다.
"한진중공업이 위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우리가 어떻게 한진중공업을 이겨!", "사람들이 우리더러 떼쓴대!", "그래 보아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허튼짓 말고 그만둬!"
생존을 건 싸움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 동료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비협조적이다? 문제 해결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질 게 뻔합니다. 가슴 아프지만, 후자와는 이별해야 합니다.
한 가지 팁
내부 정리가 된 상황에서 맘상모 등의 시민단체 도움까지 얻으면, 그때는 (굳이 제 조언이 아니라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일단 된 겁니다. 다음 문제에 봉착할 때까지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됩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건 그 길의 가로수 정도로 삼을 수 있는 소소한 팁입니다.
서울시의 경우, 민간이 일정 규모 이상의 부지를 개발할 때에는 행정(서울시)과 ‘사전 협상’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동서울종합터미널은 곧 ‘신세계동서울피에프브이’라는 회사에 넘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동서울종합터미널 개발 사업의 주체가 바뀝니다. 그 때문에 서울시와 한진중공업 간의 기존 동서울종합터미널 개발 사업 사전 협상이 폐기되었습니다. 조만간 신세계동서울피에프브이가 서울시에 동서울종합터미널 개발을 위한 ‘새로운 사전 협상 제안서’를 제출할 겁니다. 그 후 서울시와 신세계동서울피에프브이는 인센티브를 주느니 마느니 하는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거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사전 협상 제안서에 피해 상인들 구제 방안이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전화로 편하게 전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애써 문장으로 정리해 프레시안에 기고합니다. 임대차 분쟁 문제가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에 하는 괜한 수고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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