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폐회됐다. 그러나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치는 풀리지 않았다.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헌법에 명시된 법정시한을 넘겼다. 2014년도를 제외하고는 관행처럼 굳어진 터라 시민, 언론 모두 둔감해졌다.
선거법은 각 정당과 정파의 밥그릇이 걸려있고 국회의원 개개인에게는 사활적인 경기의 규칙이다. 따라서 선거와 멀리 떨어진 시점에 협상해야 하지만 항상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 논의되기 때문에 누더기 법이 되곤 한다.
정치가 무릇 공의를 세우고 사회의 갈라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영역이라는 원론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있어야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출세의 도구로 전락한 듯한 대의기구에게서 국민은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불화가 결국 지금의 통제 불능의 정치를 잉태했다. 해방 이후의 혼란기에 친일 청산은 미군정의 행정편의주의와 이에 편승한 이승만 및 친일 세력에 의해 좌절됐고, 정부가 수립됐지만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연장하려는 시도에 의해 민주주의는 착근되지 못했다. 4·19혁명으로 집권했으나 무능했던 내각제 정부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경제와 안보를 전가의 보도로 내세웠던 정권과 냉전세력은 보수로 치환되고 미화됐다. 군부와 재벌, 관료의 삼각동맹 속에서 성장한 보수 세력은 합리적인 정통 보수의 길을 걷지 못했다.
민주화에 투신한 저항 세력의 투쟁은 결국 민주주의를 절차적 차원에서나마 공고화시켰으나 내용적으로 민주주의는 더 큰 위기에 직면했다. 진정한 민주화의 완성은 사회적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관용과 연대가 일상화되어야 가능하다. 한국사회의 방향은 이와는 정반대다. 갈등과 대립은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연대는 실종되고, 시민들의 삶에서 관용과 배려는 사라졌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불화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제도가 이를 보완해 줘야 하지만 제도화가 보다 나은 상태로의 변화를 보장하지도 못한다. 그레고리 헨더슨의 저서인 <소용돌이의 한국정치>가 21세기 한국정치를 대상으로 한 분석서는 아니지만 환경적 요인이 변해도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변인은 바뀌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에는 법치주의, 인권의 보장과 개인적 자유에 대한 존중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있고 이의 대척에 민주주의적 전통이 있다. 민주주의적 전통은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시, 평등과 인민주권 사상 등이 핵심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판'을 바꿔야 한다. 현재의 정당구도를 변화시킴으로써 두 거대정당이 독식하는 카르텔 구조를 종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년 선거의 규칙인 선거법 개정은 각 정당에게는 사활적이기 때문에 당위만을 내세워 강요할 수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아예 비례대표를 폐지하자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례성 및 대표성 제고와 실질적 다당제를 통해서 거대정당에 의한 독점 체제를 완화하고 과소대표되는 계층을 국회에 진출시키자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제도가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정당간의 정책연대와 연합정치가 활성화하고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제도권에 반영되어 조직화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우선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서 각 정당이 표면적으로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선에 의한 후보 내정 방식을 세우겠지만 한국정치의 경로와 경험으로 볼 때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청와대의 종속변수에 머무르고 있는 집권당과, 차기 집권을 위해 집권 세력에 대한 비난과 공격만 있는 전략 부재의 제1야당 사이의 적대적 구도에서 정치는 바뀔 수 없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며 진영 간의 극한적 대립이 화석처럼 굳어진 한국정치의 구조적 문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최선은 아니지만 한국정당체제의 변화를 위해 시도할 충분한 명분과 근거가 있다. 그러나 관건은 어떠한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느냐에 제도 성패가 달렸다. 비례대표의 절반에만 준 연동형을 적용하는 안은 이미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나 있는 제도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결국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벗어난 여야 각 정당의 셈법의 담합의 결과로 이미 누더기법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항상 유권자의 집단지성의 선택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도출해 냈다. 결국 선거에서 정치의 '판'을 바꾸는 것은 민심이다. 21대 총선이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가 되길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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