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읍내에서 장사하다 망쪼들어 서울로 내뺐습니다. 여동생 둘이 있는데 둘 다 서울로 보따리를 쌌습니다. 큰것은 어떤 녀석과 결혼한다고 돈을 달라는 편지가 오고, 작은것은 어느 음식점에 있다고, 춥다면서 다시 집에 오고 싶은데 허하여주십사고 편지질입니다. 60이 넘은 부모는 찌그러진 가정을 일으켜세운답시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손을 놓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남주 시인이 1974년 12월31일 당시 <창작과 비평> 주간을 맡고 있던 염무웅 교수(영남대 독문과)에게 보낸 편지글중 일부다. 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염교수를 이 편지글을 놓고 "이것은 당시 김남주의 가정형편인 동시에 70년대 우리 농민의 보편적 현실이기도 했다"며 "김남주 문학의 원천은 바로 이 몰락하는 농민현실이고 그 현실에 맞서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아버지 어머니이다"라고 썼다.
***"그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신을 집중해 몰래 시를 쓰는 것뿐이었다"**
올해로 김남주 시인이 작고한지 10주년이 됐다. 지난 1994년 2월13일 새벽 췌장암으로 별세한 뒤 10년의 세월이 유수처럼 흐른 것이다.
1974년 여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를 비롯한 8편의 시를 실어 김남주를 시인으로 등단시켰던 창비사가 그의 10주기를 맞아 <꽃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제목의 시선집을 펴냈다. 김남주를 모르는 세대들에게 "꽃속에 피가 흐른다"고 할 정도로 가혹한 시대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인을 알리기 위해서다.
총 6부로 이뤄진 시선집의 1부에는 그의 등단작인 '잿더미' 등 그의 소박한 초기작들을 수록하고 있고, 2~4부에는 그 유명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같은 9년3개월간의 옥중생활기간에 쓴 치열한 작품들을, 5부에는 출옥후 그의 고뇌를 담은 시편들을, 그리고 마지막 6부에는 '역사에 부치는 노래'같은 유고시들을 싣고 있다.
이 가운데 2~4부에 실린 시들은 그가 남민전사건으로 1979년에서 1988년까지 옥중생활을 하던 동안에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우윳곽 안쪽에 몰래 쓴 3백여편 '옥중시' 가운데 고른 작품들로, 김남주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가를 생생히 체험하게 한다.
김남주를 문단에 등단시키고, 그의 10주기를 맞아 이번에 시선작업을 맡은 염무웅 교수는 발문에서 이들 옥중시에 대해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유신체제가 붕괴하기 직전 그가 남민전 준비위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끝에 기소되고 1980년 12월 15년형이 확정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옥 안에서 그는 광주항쟁 소식을 들었고, 이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신을 집중하여 몰래 시를 쓰는 것뿐이었다.
김남주가 평생 쓴 470여편의 시 가운데 300편 남짓한 작품은 이처럼 9년3개월의 옥중생활 속에서 창작된 것이다. 그의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언제나 이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가혹한 조건은 시인의 감성을 극단적으로 고양시켰을뿐 아니라 시의 형식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김남주의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염무웅 교수는 김남주가 타계한 지 10년이 된 지금 우리가 다시 그의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김남주의 시 전부를 이번에 처음으로 통독하였다. 문단데뷔 30년, 작고 10년의 그의 시는 세월을 뛰어넘어 나의 굳어진 감성과 메마를 육신을 쑤시고 들끓게 한다. 내가 느낀 통증과 격정을 동시대의 독자들로 하여금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 이 선집을 만드는 동안 내가 줄곧 간직한 욕심이었다.
'잿더미'부터 '혁명의 길'까지 김남주의 불꽃 같은 삶과 찬란한 시세계를 교향악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김남주가 살아보지 못한 21세기의 타락을 뒤엎는 예술적 항체가 형성될 수 있다면...
그러나 물론 역사는 자신의 길을 간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김남주가 자신의 몫의 희생을 자기 시대의 역사에 아낌없이 헌납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억압과 불평등에 반대하고 해방을 갈망하는 민중 속에서 영원하다."
염 교수의 말처럼 김남주 시인은 자신의 몫의 희생을 자기 시대의 역사에 아낌없이 헌납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시대의 역사에 얼마나 우리의 삶을 헌납하고 있는가. 김남주 시인의 한 시편을 읽으며 오늘의 우리를 돌이켜보았으면 싶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일어섰다 분노한 사자의 울부짖음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과 함께
오월은 일어섰다 파괴된 인간이 내지르는 최후의 절규와 함께
그것은 총칼의 숲에 뛰어든 자유의 육탄이었다
그것은 불에 달군 철공소의 망치였고
그것은 식당에서 뛰쳐나온 뽀이들의 식칼이었고
그것은 술집의 아가씨들의 순결의 입술로 뭉친 주먹밥이었고
그것은 불의의 대상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랑으로 응어리져 증오로 터진 다이너마이크의 폭발이었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바람은 야수의 발톱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을 바람에 일어서는 풀잎으로
풀잎은 학살에 저항하는 피의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의 어법이다
피의 학살과 무기의 저항 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광주 1980년 오월의 거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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