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령탑인 재정경제부가 중국의 긴축정책과 미국의 금리인상은 우리 경제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것이고 유가상승도 일시적 현상으로 우려할 게 아니며 주가급락도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라는 '낙관론'으로 일관, 정부의 상황인식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새삼 절감케 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경제비관론자 호들갑"**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는 지난 12일 국정홍보처가 발행하는 <국정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중국-오일-금리' 등 트리플 쇼크와 관련, "중국의 긴축정책,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은 우리경제에 악재가 아니며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우리경제의 안정적 성장기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 차관보는 우선 '중국쇼크'와 관련, "중국이 긴축정책을 펴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과열된 경기를 안정시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며 "중국이 8%선의 균형잡힌 성장을 하게 되면 국제 원자재 수급 불균형이 해소돼 우리나라 실물경제에 도리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금리 조기인상 쇼크'와 관련해선 "미국이 생각보다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며,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우리나라 수출도 많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혀 악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일부 언론과 경제비관론자들은 금리를 올리겠다는 것만 보고 미국이 예상외로 성장회복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왜 보지 않는지 묻고 싶다"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국정홍보처 호평, "정확한 상황인식 부재한 위기론에 대한 경제 필요"**
박 차관보는 '제3차 오일쇼크'와 관련해선 "유가가 높아서 걱정이지만 무작정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급상황을 볼 대 수요에 비해 공급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며 다만 일시적으로 중동정세 불안 등으로 공급차질에 대한 우려로 일부의 사재기 때문에 유가가 불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우리 역시 유가가 오른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그 이유로 "정부가 휘발유에 부과하고 있는 각종 세금과 석유수입부과금 인하 등 비상대책을 가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가 상승 영향이 소비자에게 바로 미치면 정부가 흡수하는 조치를 할 것"이라며 "최후에는 비축유를 풀고 유가 완충자금을 활용하는 등 유가상승에 대해 정부가 쓸 수 있는 여러 방안이 준비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주가 급락에 대해서는 "증시가 외국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지만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빠지기 마련이고 외국인이 보유주식 1백60조원 가운데 겨우 2조5천억원(1.5%)어치를 팔았을 뿐이므로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국정홍보처는 이같은 박 차관보 인터뷰 내용을 전하며 "박 차관보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일부 언론의 해외발 악재로 인한 '경제위기론'을 일축하는 것으로, 정확한 상황인식이 부재한 위기론에 대해 경계가 필요함을 주문한 셈"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박 차관보의 인식이 재경부만의 인식이 아닌, 정부부처의 일반적 인식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컨대 작금의 경제위기론을 일부 보수언론의 '노무현정부 두들기기'의 연장선위에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중국쇼크'가 과연 호재인가**
박병원 차관보 주장은 경제계에 팽배한 위기감을 완화시키기 위한 발언으로도 해석가능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 곳곳에 배어있는 안이한 상황인식은 정부가 경제위기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비판을 자초하기에 충분하다.
우선 '중국쇼크'와 관련한 그의 상황인식이 그러하다.
박차관보는 중국의 긴축정책은 철강 등 국제원자재값의 하락을 가져오는 순기능을 할 것이라며 중국쇼크에 과민반응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의 지적은 일면 맞다. 그러나 일부 국제원자재값 하락이라는 부분적 호재만 갖고 "중국쇼크가 도리어 한국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한 그의 주장은 어이없다. 중국경제가 지금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간과(혹은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수출국인 동시에, 지난해 우리나라가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86.6%에 달하는 1백34억6천만달러를 안겨준 최고의 무역파트너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전체 수출증가분의 50%를 중국(홍콩 포함)이 차지했을 정도로 중국경제는 한국경제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견인해온 삼성전자 등 수출 대기업들이 한결같이 중국쇼크에 경악하고,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주식 보유를 기피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그룹은 최근 그룹 전계열사에 비상경계령을 내린 상태다.
한 마디로 말해 내수붕괴로 골병든 우리경제가 그나마 유일하게 '남는 장사'를 한 유일한 무역상대국인 중국의 긴축정책이 한국경제에 몰고올 쇼크에 대해 정부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더욱 박 차관보 발언은 지금 중국정부의 긴축이 경기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 아닌 '부득이한 최후의 대응'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정부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경제에 정통한 한국은행의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는 중국경제의 어두운 면을 애써 외면하고 밝은 면만 보려해왔다"며 "그러나 이제 중국경제의 무한팽창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중국정부가 부득이 긴축조치에 착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가구가 두서너 가구에 불과하고 상하이 신축빌딩의 공실률이 40%에 달할 정도로 외형상 보이는 호화로움과 달리 중국경제의 실상은 심각하다"며 "중국정부도 지난해초부터 이같은 거품성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긴축을 하려 했으나 경착륙의 두려움때문에 주저주저하다가 재정 파탄 등의 이유로 더이상 시간을 끌 수 없기에 이번에 긴축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IMF사태전 한국경제처럼 전형적인 '자전거 경제'인 중국경제가 과연 연착륙에 성공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쇼크' '오일쇼크'도 강건너 불 구경**
'미국 금리인상 쇼크'에 대한 박차관보의 인식 또한 안이하다. 미국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분명 호재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우리나라 수출도 많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혀 악재가 될 수 없다"고 한 주장은 단순 그 자체다.
이는 미국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점유율이 급속히 낮아지면서 미국이 이미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상대국 2위로 밀려났고, 더욱이 대미수출에서 우리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국경제가 가라앉는 대신 미국경제가 약간 살아나 봤자, 우리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미연준의 조기금리인상이 미국경제의 회복세 못지않게, 국제유가 급등 및 부동산값 급등에 따른 인플레 위험을 조기에 제거하기 위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경제 회복을 낙관만 하기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현재 미국은 유가급등과 이라크전 악화로 월별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사상최고치를 계속 경신하면서, 쌍둥이적자 위기구조가 최악의 상태로 심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유가가 이미 사상최고치를 경신한 '제3차 오일쇼크'에 대해 "다만 일시적으로 중동정세 불안 등으로 공급차질에 대한 우려로 일부의 사재기 때문에 유가가 불안한 것"이라고 한 박차관보 진단은 과연 박차관보가 요즘 국제뉴스를 한줄이라고 읽었는가를 의심케 할 정도다.
현재 이라크정세는 제2 전쟁국면에 접어든 상태며, 여기에 팔루자 민간인학살과 이라크포로 성고문-학대로 미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함몰되면서 국제유가는 사상최고 기록을 깨고 살인적 급등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 국제석유전문가들은 "유가가 대세상승기에 접어들었다"며 고유가시대가 장기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기름 한방울 안나는 한국의 경제사령탑만은 "일시적 현상"이라며 정부의 대응으로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혀 안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내린 수입관세 10원은 국내유가 급등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강변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재경부는 우리경제의 위기구조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IMF사태 발발 며칠전까지도 "한국경제는 펀더맨털이 튼튼하다. 끄덕없다"고 외치던 모습의 재연이다.
***보수언론 보도 문제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
물론 정부 지적대로 최근 경제위기에 접근하는 일부 보수언론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한 뒤 내놓은 해법에 많은 '복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 예가 "경제위기가 도래했으니 정간법이나 국가보안법 같은 개혁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다. 경제위기를 내세워 자신들에게 도래한 시대적 개혁요구를 희석시키려는 접근법이다.
또하나의 대표적 문제는 "경제위기가 도래했으니 재벌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규제가 많아 투자를 못하겠다"는 재벌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간과하고 있다. 과연 지금 재벌이 어떤 투자를 하려는 데 어떤 규제가 문제가 되는지를 적시하지 않고, 무조건 재벌의 목소리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를 할려고 해도 어떤 분야에 투자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재계 내부의 '신성장산업 실종론'은 철저히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기껏 한다는 지적이 막대한 개발차익 특혜의혹 때문에 건설교통부조차 반대하고 있는 '기업도시' 건설 계획을 예로 들며 "이런 것이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라고 비판하는 수준이다. 부동산투자로 돈을 벌려는 기업접근 방식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언론의 접근방식이 그동안 카드거품, 아파트투기거품을 초래한 주범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 못하는 게 최대위기**
그러나 이같은 보수언론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작금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일부 언론과 경제비관론자 호들갑"으로 치부하며 핑크빛 낙관론만 펼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같은 안이한 인식을 가진 정부가 '제2 IMF'라고 불리는 작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게 경제주체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이처럼 상대인식이 안이하다 보니 그동안 정부가 해온 것이라는 게 카드부실, 가계부실, 중소기업부실 등 각종 위기요인을 금융기관 대출연장을 통해 순연시키는 '뗌방형 시간끌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IMF사태후 만연했던 '관료망국론'이란 용어가 또다시 등장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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