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한미군 일부를 이라크전에 투입될 가능성을 시사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최근 우리 정부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신중론'과 맞물려, 미군이 당장 병력이 불필요한 이라크 북부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대신 주한미군 일부를 이라크로 차출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럼즈펠드, NPR과의 인터뷰서 주한미군 차출 가능성 부인 안해**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5일(현지시간)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의 이라크전 투입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 주둔 미군수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 등의 주요지역에서 미군을 차출하거나 그 지역들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병력을 이라크에 투입할 계획이 있나'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병력을 차출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지역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군을 차출한다고 해서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어디든지, 차출된 지역의 전쟁 억지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확실히 밝힐 수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한국에서 주한미군 차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럼즈펠드는 재차 '그 차출 지역이 특히 한국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어디서 병력을 차출할 지는 말할 수 없으며 그 지역의 전쟁 억제능력 약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 답변을 거부하면서 주한미군 차출과 관련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아 미국이 주한미군 차출을 검토하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외교계에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른바 'NCND'는 사실상의 '시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 교도(共同) 통신은 이에 앞서 5일 럼즈펠드 장관이 이날 워싱턴을 방문중인 일본 국회의원들을 만나 "미국은 오키나와 등 주일미군의 부담을 줄이고 미군의 억제력은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은 일본과 오키나와 주둔 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합의에 도달하길 바란다"고 밝혀, 미국이 현재 주일미군과 주한미군 차출을 검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일본 언론은 그동안 이라크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주한-주일미군과 주독미군이 우선적으로 이라크로 차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해왔다.
***미군, "2005년말까지 13만5천명 수준 유지"**
럼즈펠드 발언은 주한미군 등 동북아 지역의 주둔 미군의 이라크지역으로의 추가 투입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럼즈펠드 등 미군 수뇌부가 이에 앞서 4일 이라크에서의 고전을 시인한 뒤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 규모를 2005년말까지 현 수준인 13만5천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초 미군 수뇌부는 올 여름까지는 이라크 주둔 미군 수를 11만5천명 수준까지 감축하길 희망해 왔으나 올해 들어 1년전 이라크전 당시 보다도 더 많은 미군이 사망하는 등 전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주둔 미군수를 유지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문제는 이라크전 악화와 특히 최근의 이라크포로 성고문 및 학대로 국제비난여론이 고조되면서 기존의 이라크 파병국들의 철수가 잇따르자, 병력 조달길이 막혔다는 데 있다.
미국은 이에 최근 영국에게 4천명의 추가병력 파병을 요청했으나,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마저 최근 국내비난여론 고조를 이유로 난색을 표명해 미국을 한층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 "파병은 빨라야 7월이후에나"**
이처럼 럼즈펠드 장관이 주한미군 차출 가능성을 열어놓음에 따라, 정부내에서는 미국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요구를 늦추는 대신 주한미군을 차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즉 한국정부가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파병을 연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만큼 한국군을 현재 별다른 병력수요가 없는 이라크 북부로 파병하는 대신, 주한미군 일부를 빼내 이라크 전투지역으로 파병하는 쪽으로 미국정부가 가닥을 잡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특히 이같은 분석은 최근 이라크전 정황 악화에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및 열린우리당 등 정부여권내에서 '파병 신중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정황과 맞물려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6일 오후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NSC 상임위 회의를 열어 파병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파견 예정지인 아르빌주 당국의 회신이 없다는 이유로 이날 회의를 열지 않기로 했다. 이는 벌써 세차례나 회의가 순연된 것으로, 사실상 당초 자이툰 부대를 이달말까지 파병하기로 한 종전방침의 파기를 의미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6일 이와 관련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파병 예정지를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주(州)로 잠정 결정하고, 주정부에 자이툰부대의 주둔과 공항사용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수주가 지나도록 답신을 받지 못해 파병일정의 연기가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그러나 이어 "아르빌정부의 답변 지연 말고도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문제로 국내 파병철회 여론이 고조되고 있어 파병지 결정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더욱이 보급품 확보와 수송 시간 등을 감안하면 자이툰부대 파병은 빨라야 7월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파병 연기가 단순히 아르빌의 답신이 늦기 때문만은 아님을 시사했다.
이같은 정부의 최종입장은 이달 중순께 대통령직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노무현대통령 복귀후 그 구체적 틀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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