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육지사는 제주 사름(사람이란 뜻의 제주어)이 있다. 제주 서귀포시가 고향으로 초‧중‧고를 나와 서울법대(82학번)를 진학하면서 30여년을 고향을 떠나 '육지사는 제주사름'으로 살고 있었다. 그의 발길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잇단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하루가 다르게 파헤쳐지고 멍들어가는 고향을 바라보면서다. 중국 등 외래자본은 무서운 속도로 제주 땅과 바다를 잠식해갔고, 덩달아 청정제주의 이미지만을 훔쳐가려는 크고 작은 자본들의 제주를 향해 흘리는 군침을 보면서다.
오랫동안 노동운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핏속에 흐르는 '제주DNA'가 고향으로 돌아가 제주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힘을 보태라고 최면을 걸었을지 모른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 박찬식. 대학강단에서 교수로, 시민사회 운동가로 육지에서 제주사람으로 살던 그다. 이제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제주사는 제주사름'이다. 몸뚱아리가 육지에 있건 제주에 있건 변하지 않는 '제주사름'이다.
지난 11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 농성천막에서 '제주 제2공항 도민공론화'를 요구하며 16일째 이어오던 단식을 풀던 그 날이다. 종일 박 실장의 휴대전화 벨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제주도의회가 '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특위 구성건'을 가결 처리했다는 소식이 우선 실시간으로 전해졌을 테고, 그 직후부터 "이제 그만 단식을 풀라"는 권고에서부터, 단식중단 결정을 내리면서는 "건강을 잘 챙기라"는 격려 전화까지 연이어 불이 났을 테다.
아마도 그날 혹은 그 전날. 아무튼 그 즈음. 또 한통의 '특별한' 전화 한통이 박 실장에게 날아들었던 것 같다. 대통령직속 민간위원 위촉을 알리는 전화다.
<제주의소리> 취재 결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장 송재호, 이하 균발위) 민간위원에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박찬식 상황실장 위촉이 최종 결정됐다. 균발위는 국가균형발전의 기본 방향과 관련 정책사항을 심의‧조정하는 기구여서 박 실장의 위촉이 주는 의미에 시선이 쏠린다.
국토부 등 정부 13개 부처 장관이 당연직위원으로 참여하는 균발위는 '제주 제2공항' 등 제주지역 최대 현안도 당연히 주요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도민사회 요구가 뜨거운 '제2공항 공론화 추진' 등도 정부차원의 힘이 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최근 균발위 핵심 관계자는 "박찬식 상황실장의 민간위원 위촉이 어떤 단계냐"는 <제주의소리>의 전화 취재에 "청와대의 약 3개월간 (신원)검증 과정이 지난 15일로 모두 마무리 됐다. 남은 것은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을 수여 받는 위촉식만 남은 상태"라고 답했다. 위촉식은 문재인 대통령 일정을 고려해 이르면 이달 내, 늦어도 12월 상순 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균발위는 장관급인 위원장 1명을 포함한 34명 이내의 당연직위원과 민간(위촉)위원으로 구성된다.
제주출신의 송재호 위원장을 필두로 기획재정부장관과 교육부장관, 국토교통부장관 등 정부 13개 부처 장관, 그리고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1항 제1호 및 제3호에 따른 협의체 대표자인 권영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대표회장(대구광역시장)과 염태영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수원시장)까지 총14명이 당연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별 안배와 직능별 전문성‧대표성을 고려한 민간위원 18명을 더해 총 34명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또 다른 관심사는 박 실장을 '누가 추천했느냐'다. 일각에선 제주출신의 송재호 위원장이 추천했다는 이야기도, 또 한쪽에선 원희룡 지사가 동향이고 대학 동기인 박 실장을 추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중단 없는 제2공항 추진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원 지사가 대척점에서 '제2공항 반대활동' 최선봉에 있는 박 실장을 '친구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책 추진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균발위 민간위원에 스스로 추천했다는 '썰'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만, 균발위가 대통령직속 기구인 만큼 위원 추천 단계에서 원 지사에게 최소한 양해를 구하는 형식의 통보(?)를 했거나, 아니면 원 지사가 암묵적 동의를 표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엄밀히 말하자면 원 지사의 속내와는 무관해 보인다.
이와 관련, 균발위 관계자는 "제2공항 건설 문제도 균발위 심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하다. 균발위의 심의‧조정 기능은 모든 정부부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매 회의 때마다 참석하므로 당연히 국토부가 추진하는 제주 제2공항 문제도 해당된다"며 "기본적으로 '심의'는 어떤 사안이던지 내부에서 위원이 반대하면 통과하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박 실장은 균발위 위원 위촉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균발위 민간위원 위촉 연락을 최근 받았지만 아직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제2공항 추진 여부를 다룰 기회가 생긴다면 도민공론화에 의한 제주도민 자기결정권으로 판단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짧게 답했다.
분명한 것은 용역 부실‧난개발 등의 이유로 제주 제2공항 반대운동을 이끌고 있는 박 실장이 최소한 주무부처 장관인 국토부 장관과 마주앉을 수 있는 공식 테이블이 생긴 셈이다. 제2공항 추진 과정에 제기해온 숱한 문제들을 정부차원의 의제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공식자격을 갖춘 것이란 풀이다.
이는 박 실장의 균발위 민간위원 위촉을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고도의 자치분권' 차원에서 읽어야 한다는 시각이기도 하다. 제2공항 문제를 도민공론화로 결정하는 것으로 정부가 가닥을 잡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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