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1주년을 맞아 지구촌에선 약 2백만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미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점령정책을 비판하면서 즉각적인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다. 그 날 하루 미국에서만 3백8개 도시에서 반전집회가 열렸다.
유엔본부가 있기에 ‘세계의 수도’라고 자부하는 이곳 뉴욕 맨해튼에서도 "No War!" "We want Peace"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집회장소는 매디슨 애비뉴와 23-42번가 사이. 3.20 뉴욕 반전시위는 3월 하순이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이뤄졌다. 주최 측인 A.N.S.W.E.R. Coalition (Act Now to Stop War & End Racism) 추산으론 약 10만명이 모여들었다(뉴욕경찰 추산은 3만명). 지난해 반전집회에서도 그러했듯, 노년층 참석자들도 많았다.
뉴욕 시민들은 여러 다양한 구호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이라크와 관련된 슬로건들은 부시 행정부의 석유 탐욕을 비판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석유 한 갤런에 (이라크 인과 미국인) 피를 얼마나 흘려야 하나” 또는 부시와 부통령 딕 체니의 얼굴 위에다 “우린 석유를 얻었지롱!”이란 조롱성 문구를 담은 피켓들이 그러하다. 체니 부통령이 한때 최고경영자(CEO)로 몸담았던 핼리버튼의 이라크 재건사업 독식(獨食)을 비판하는 피켓도 보였다. 핼리버튼이란 독수리가 이라크 석유라는 먹이감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 따위다. 이라크 주둔 미군병사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즉각 철군을 요청하는 구호들도 눈길을 끌었다.
반전집회의 주제는 이라크였지만,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다양한 구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일방적인 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강조하는 피켓, 최근 아이티와 베네수엘라 정치위기를 미국이 배후에서 개입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하는 피켓,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를 풀라고 요구하는 피켓, 이른바 ‘콜롬비아 플랜’이란 이름 아래 콜롬비아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피켓, 한반도와 필리핀에서의 부시 행정부의 군사적 강공책을 비판하는 피켓 등등이 등장했다.
부시행정부의 국내정책도 반전집회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비용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그런 돈으로 저소득층의 교육비, 의료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피켓, 고용 창출에 써야 한다는 피켓 등등이 그러하다. 3.20반전집회를 큰 틀에서 본다면, 연사들이 되풀이해 주장했듯이 “부시행정부가 우리 미국 시민들을 거짓말로 속여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으며,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부시 행정부는 다가올 대선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를테면, “거짓말쟁이인 부시를 떨어뜨려 세계평화 되찾자!“는 피켓 따위다. 올들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ABB’(Anybody But Bush-누구든지 부시 후보를 선거에서 이길 사람을 민주당 후보로 뽑으면 된다)가 유행어가 된 상황을 되비추듯, 3.20 뉴욕 반전집회엔 “부시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엇비슷한 피켓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뉴욕 반전집회의 큰 특징은 일부 직업적인 운동가들을 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집회 자체를 일종의 문화행사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저마다 창의력이 돋보이는 분장을 하고 나오거나,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피켓들을 만들어 참가자들의 눈길을 즐겁게 한다. 연극배우들은 반전 메시지를 담은 분장을 하고, 음악 연주자들은 악기를 들고 나와 거리에서 즉흥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우리 한국의 노동자 농민들의 집회처럼 생존권이 걸린 절실한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 까닭일까, 뉴욕의 반전 집회는 그저 한바탕 거리의 문화축제 같다. 그래서 집회장 주변에 배치된 경찰들도 느긋한 표정들이다. 필자의 팔레스타인 친구는 “이것이 미국 반전집회의 한계라면 한계”라고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관련링크>
http://www.internationalanswer.org/
http://www.unitedforpea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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