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인터넷과 유튜브 공간에서 이런 주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의 주가폭락과 환율급등으로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것 같다.
'경제위기'란 단기간에 엄청난 충격이 경제 전체에 가해져서 경제주체들이 큰 고통을 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1997년의 외환위기나 2008년의 금융위기 같은 상황이 바로 경제위기였다.
그런데 유튜브 상에서 "경제위기"란 말은 그런 상황에만 국한하여 사용되지 않는다. 가령 한국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침체가 올 거라고 하면서 이를 "경제위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위기"라는 용어의 명백한 오용이다.
또 다른 논자들은 2008년의 금융위기 같은 상황이 한국에 닥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여파로 서울집값이 폭락할 거라고 전망한다. 참으로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주장이다.
금융위기가 왜 왔나?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엄청난 집값투기가 있었고, 그 투기거품이 붕괴되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집값폭락이 경제위기의 원인이었다. 그런데 상당수의 "경제위기" 주장은 이 논리를 뒤집어서 이야기한다. 경제위기가 와서 그 결과로 집값이 폭락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주장인 것이다.
근거도 없고 논리도 안 맞는 "경제위기" 주장
올해 들어 미중·한일 간 경제전쟁이 발발하여 대외여건이 급변하면서 새로운 주장이 확산되었다. 앞의 경제위기 주장보다 한결 과격해진 "국가부도" 주장이 그것이다. '국가부도' 대신 '제2 외환위기'를 주장하는 방송도 적지 않은데, 국가부도든 제2 외환위기든 대외채무불이행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말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어느 극우논자의 방송이다. 몇 달 전부터 경제위기 온다는 주장을 시리즈 방영하듯 계속했다. 물론 경제위기를 거쳐 국가부도까지 간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그 주장이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고 경제논리에도 맞지 않아서 무시했는데, 얼마 전 조회수가 200만이 넘는 것을 보았다.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시청했다면 그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경제위기와 국가부도를 주장하는 방송들을 들어보고 그 주장의 근거와 논리를 점검해보았다.
그런 방송들이 내놓는 경제위기 시나리오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데, 올해 들어 미중간, 한일간 경제갈등이 격해지면서 수출여건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그래서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하고 경기침체가 극심해져서 경제위기가 오고 마침내는 국가부도까지 간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원인은 재벌들의 과다한 외채차입
짐작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던 경험이 이런 극단적인 주장이 먹혀드는 심리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최근의 주가폭락과 환율급등은 외환위기의 전조라도 되는 것 같지 않은가.
1997년의 외환위기는 외채위기였다. 그 위기의 발생과 전개과정은 이랬다. 대기업과 재벌들이 외채를 들여와 국내에 투자했다. 당시 국내대출 금리가 15%를 상회했는데 달러로 차입하면 금리가 8% 내외였으므로 엄청난 금리차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투자한 사업들이 부실화되면서 외채상환이 어려워질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낌새를 눈치 챈 외국금융기관들이 외채의 만기연장을 거부했고, 부도위기에 직면한 재벌들은 국내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여 외채를 상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와환보유가 부족해져서 급기야 IMF에 긴급자금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재벌들의 경쟁적 외채차입으로 대외채무가 대외자산보다 많아진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었다. 채무 즉 빚이 자산보다 많으면 국가든 기업이든 혹은 개인이든 부도가 날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어긴 것이 위기를 부른 것이다.
대외자산이 대외부채보다 4130억 달러 많다
향후 우리나라가 '제2 외환위기' 혹은 국가부도에 직면할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국가의 대외자산과 대외부채를 비교해보면 그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2018년 말 지역별 통화별 국제투자대조표'는 가장 최근의 대외자산과 부채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외자산총액은 1조 1168억 달러이고, 대외부채총액은 1조 1075억 달러다. 언뜻 보기에 자산과 부채규모가 엇비슷하다. 만약 자산과 부채의 만기가 불일치하거나 혹은 자산의 상당액이 부실화된다면, 대외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수치는 4037억 달러의 준비자산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한국은행 자료는 이에 대해 "준비자산(4037억 달러)은 운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국제적 관례에 따라 지역별 국제투자대조표 편제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히고 있다.
준비자산을 포함한 실제 대외자산총액은 1조 5205억 달러로 대외부채총액보다 4130억 달러나 많다. 설사 자산과 부채의 만기불일치나 자산의 부실화가 생긴다고 해도 대외채무를 갚지 못할 상황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또 이런 주장을 펼지도 모른다. 일본과 경제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일본금융기관들이 일시에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 일시적으로 채무상환불능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국제금융 관례 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위 자료에는 일본에서 빌린 금융채무가 얼마인지도 나와 있는데, 그 총액이 833억 달러다. 설사 그 돈을 빌린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일시적으로 상환이 어렵다 하더라도 준비자산으로 상환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국가부도'혹은 '제2 외환위기' 가능성 전혀 없다
어느 경우든 1997년 같은 국가부도가 또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최근 환율급등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밝히겠지만, 분명한 점은 국제수지 등 환율을 결정하는 주요지표는 현재의 환율이 적정수준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의 환율급등은 정부 정책의 실패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자들의 눈길을 끌려는 목적으로 "경제위기"를 남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근거 없는 경제위기 시나리오를 제시하여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방송과 글은 경제와 금융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은 <내일신문>, <뷰스앤뉴스> 등 다수 매체에 경제 칼럼을 기고했으며, 현재 유튜브 채널 '집값 하락해야 산다'(☞ 바로 가기)를 운영 중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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