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연일 정부의 '3천명 파병' 결정을 비난하며 '미국과의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 미국요구대로 전투병 5천명을 보냈어야 하는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변 '자주파'의 반대로 무산돼 앞으로 한-미관계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중앙일보는 특히 이들 세칭 '자주파'에게서 "이념의 냄새가 난다"는 색깔론을 펼치기까지 했다.
18일 "국방장관이 노무현대통령에게 사표를 내 항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창극 논설실장의 뒤를 이어 19일 총대를 매고 나선 중앙일보 논객은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부사장급)이다.
***김영희, "이념의 냄새가 난다"**
김영희 대기자는 19일 '3천명이후의 한-미관계'라는 기명칼럼을 통해 방한한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방장관에게 '아무것'도 주지않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변 자주파(自主派)들"을 맹공했다.
김 기자는 노무현정부의 중심 아젠다인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 자체가 미국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뒤 "북한이 더 이상 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주한미군을 이제는 한국 안보의 사활을 쥔 '산소 마스크'로 보지는 않는다"고 NSC 자주파를 공격했다.
김 기자는 이어 "동맹국의 의리로 따지면 한국은 적어도 5천명 규모의 치안유지군을 이라크에 보내야 한다"고 '동맹국 의리론'을 편 뒤 "그러나 럼즈펠드를 맞은 한국 정부는 치안유지군 아닌 재건지원부대, 그것도 5천명이 아닌 3천명선을 고수했다. 결국 한국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 실속있는 도움을 주기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며, 자주파 말을 듣고 중앙일보와 정부내 국방-외교라인이 주장해온 '대규모 전투병 파병' 주장을 수용하지 않은 노대통령을 성토했다.
그는 또 "한.미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라크 파병이 자주파들의 페이스에 밀려온 것은 유감이다"라고 재차 불만을 토로한 뒤 "국가 이익에 따른다던 파병이 정치와 명분 중심으로 결정됐다. 심지어 이념의 냄새까지 난다"고 '색깔론' 공세를 펴기까지 했다.
김 기자는 "미국의 압력을 뿌리쳤다니 우선 듣기는 참으로 후련하다"고 냉소한 뒤 "그러나 북핵.안보.경제에서 한.미간에 협력은 필수적이다. 노대통령과 그의 자주파 참모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미국의 협력을 구할 것인가 묻고 싶다"고 반문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었다.
***"한국부대 안전위해서라도 전투병 보내야"**
김 기자는 글의 중간중간에 집요하게 '전투병 파병론'을 재차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 이제 이라크에는 안전지대가 없는만큼 파병되는 한국군 부대 자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그들(자주파)의 뜻대로 3천명을 재건지원부대 위주로 보내면 한국군 부대 자체의 안전이 문제된다. 이제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없다. 조직적인 세력이 다국적군에 대한 공격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하는 단계에 이르면 테러 대상에서 전투병과 비전투병의 구분은 사라질 위험이 크다. 도쿄(東京)에 대한 테러위협이 그 증거다. 비전투병 위주의 3천명으로 자체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안전지대가 사라졌으면 파병결정 자체를 철회해야 마땅하나, 그는 무조건 '미국 코드'에 맞춰야 한다는 절대지상명제 아래 전투병 파병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 기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 결정으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마음대로 철수할 수 있도록 프리 핸드를 줬다고 주장하는, '국제문제 대기자'답지 못한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기자는 "한국은 럼즈펠드를 상대로 '대등하고 자주적인' 자세를 지킨 대신 미국에 미군 문제에 프리 핸드를 준 셈이다. 미국은 말로는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한다면서도 크게 한국 눈치 안 보고 미군을 철수하고 감축하거나 그 역할을 대북 억지력에서 동북아 지역 안전의 지렛대로 바꿀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서 이런 변화의 가능성은 한국 안보의 불안요소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미 오래 전 '자국 이익의 법칙'에 기초해 주한미군을 단지 한국이 아닌 동북아 전역을 관할할 기동타격부대 성격으로 재편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수순에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국의 요구에 못미치는 3천명 파병 결정으로 인해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을 것처럼 엄포를 놓고 있는 셈이다.
이는 방한전 오키나와에 들렀던 럼즈펠드가 오키나와 지사의 '오키나와 주둔 미군' 감축 요구를 받고 "철수할 수 없다"고 쩔쩔맸던 상황을 도외시한 지극히 비전문가적 엄포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중앙일보의 연일 계속되는 자주파 공격은 뒤늦게라도 여론을 뒤집어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려는 친미라인의 어지러운 행보라 하겠다.
다음은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 전문이다.
***[투데이] '3천명'이후의 韓.美관계**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지난해 4월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급부상할 때 한.미관계의 앞날을 내다보는 말을 했다. 그는 아시아협회 연설에서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 역할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한.미관계 성격을 재규정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그 연설을 들었다면 국방장관회의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면서 켈리의 선견지명에 놀랐을 것이다. 럼즈펠드는 노무현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라크 파병 규모는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한국의 입장이라고 전해들은 3천명에 머물렀다.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용산기지 협상에서도 그는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고 '추후 협상'이라는 여운만 남기고 갔다. 한국의 '그림자 시위대'는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파병 반대를 외쳐댔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50년의 한.미관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후보 때부터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하던 盧대통령은 아직은 관념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구상을 들고나와 미국을 긴장시킨다. 미국을 빼고 한국.중국.일본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그의 구상은 미.일동맹을 중심축으로 2030년께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전략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한다.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중.일 행사에 적극 참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용산기지 협상이 잘 안 풀릴 경우 미군사령부가 2사단을 따라 오산이나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쁠 것도 없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변 자주파(自主派)들의 입장도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더 이상 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주한미군을 이제는 한국 안보의 사활을 쥔 '산소 마스크'로 보지는 않는다. 동맹국의 의리로 따지면 한국은 적어도 5천명 규모의 치안유지군을 이라크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럼즈펠드를 맞은 한국 정부는 치안유지군 아닌 재건지원부대, 그것도 5천명이 아닌 3천명선을 고수했다. 결국 한국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 실속있는 도움을 주기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 한국의 3천명 파병안을 수용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그건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는 럼즈펠드의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에 미국의 실망이 역력하다.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켈리의 불길한 예언이 현실로 되어간다. 그것으로 그만인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한국은 럼즈펠드를 상대로 '대등하고 자주적인' 자세를 지킨 대신 미국에 미군 문제에 프리 핸드를 준 셈이다. 미국은 말로는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한다면서도 크게 한국 눈치 안 보고 미군을 철수하고 감축하거나 그 역할을 대북 억지력에서 동북아 지역 안전의 지렛대로 바꿀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서 이런 변화의 가능성은 한국 안보의 불안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미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라크 파병이 자주파들의 페이스에 밀려온 것은 유감이다. 그들의 뜻대로 3천명을 재건지원부대 위주로 보내면 한국군 부대 자체의 안전이 문제된다. 이제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없다. 조직적인 세력이 다국적군에 대한 공격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하는 단계에 이르면 테러 대상에서 전투병과 비전투병의 구분은 사라질 위험이 크다. 도쿄(東京)에 대한 테러위협이 그 증거다. 비전투병 위주의 3천명으로 자체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국가 이익에 따른다던 파병이 정치와 명분 중심으로 결정됐다. 심지어 이념의 냄새까지 난다. 미국의 압력을 뿌리쳤다니 우선 듣기는 참으로 후련하다. 그러나 북핵.안보.경제에서 한.미간에 협력은 필수적이다. 盧대통령과 그의 자주파 참모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미국의 협력을 구할 것인가 묻고 싶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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