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자연적으로 원두를 한 알도 생산할 수 없는 나라지만, 일상생활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모습이 됐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 규모는 처음 10조 원 규모를 돌파하였다. 2007년 우리나라 커피 시장이 약 3조 원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매우 빠르게 시장이 성장한 것이다.
커피는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에서 주로 소비하는 반면, 원두의 생산은 남북위 25도에 해당하는 일명 '커피벨트'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선진국의 커피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생산국인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이익도 증가했을까?
안타깝게도 여전히 생산국의 농가는 원두를 생산해서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취약하다. 이러한 커피산업의 경제적 불공정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경제지리적 시선이 필요하다.
생산국에서 커피산업을 통해 획득하는 경제적 이익은 결국 국제 커피 가격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국제 커피 가격의 결정은 생산국과 소비국이 국제적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소비지역인 선진국의 경제 상황에 따른 원두 수요량의 변화와 기후변화·커피 녹병 등 생산지역 재배 환경의 제한요소 발생과 같은 원두 공급량의 변화가 서로 영향을 미쳐 결정된다.
문제는 커피 생산국이 과도하게 원두 생산을 확대할 때, 커피 가격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소위 '커피 위기' 시기가 발생하는 경우다. 원두 재배는 대부분 영세 규모의 농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커피 위기' 시기가 나타나는 경우 생산국의 국가 경제 손실뿐만 아니라 산업의 기반인 농가지역 경제가 붕괴 될 수 있다.
공정무역운동의 출발과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으로의 전환
이와 같이 '커피 위기'의 발생으로 인한 커피 생산국의 경제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커피산업은 지리적으로 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이 국제적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수요와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국제 정치 혹은 무역의 관점에서 진행되어야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다국적 기업이 커피산업을 주도하게 되면서,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려는 다국적 기업의 경제 논리가 커피산업에 적용되어 수요와 공급을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국제적 수준에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안적인 방식으로 원두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공정한 이윤 배분구조를 개선하여 영세 커피 농가의 경제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제는 대중적으로 익숙해진 '공정무역운동'의 출발이다.
'공정무역운동'에서 주목한 커피산업의 가장 불공정한 문제는 커피산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농가가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이윤의 양이 턱 없이 적다는 것이다. '공정무역운동'에서는 이와 같은 농가의 불공정한 이윤 배분의 원인으로 원두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중개인이 개입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개유통이 이루어지면서 중개인이 농가가 받아야 할 공정한 이윤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공정무역운동'에서는 농가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기업과 직거래하는 구조로 유통과정을 변화시키도록 유도했다.
'공정무역운동'을 통해 원두의 유통 방식이 직거래로 변화되었지만, 기업에서는 확보하는 이윤을 농가에 배분하길 꺼려하여 농가에서 나타나는 경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결국, 시민단체들은 '공정무역운동'을 통한 농가의 최소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정무역운동'을 통해 생산된 커피에 인증상표를 부착하고 더 비싼 가격에 커피를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윤리적 소비'라는 관점에서, 소비자가 윤리적 가치 판단을 근거로 농가에게 직접적인 수익 보존을 하는 일종의 기부활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정무역운동'이 추구하는 경제적 관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커피산업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원두는 재배환경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용수, 농약, 화학비료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인위적 재배법을 사용하였다. 단순히 경제적 기준만 강조하여 농가의 경제적 이윤이 추가로 확보된다면, 농가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다시 환경을 파괴하는 재배방식을 늘려갈 지도 모른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공정무역운동'이 추구했던 경제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화학비료·농약·용수의 사용 등과 관련된 환경적 기준을 제시했다. 그리고 아동 노동·삶의 질 향상 등과 관련된 사회적 기준 역시 도입했다. '공정무역운동'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커피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으로의 전환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커피를 더욱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조언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이 추구하는 이론적인 효과가 충분히 발생한다면, 농가는 환경기준에 적합한 친환경·고품질 원두를 생산하고, 이를 높은 가격으로 유통하여 추가 이윤을 확보하며, 확보된 이윤을 농가와 지역사회에 재투자할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이상적인 구조를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의 개념이 더욱 우리의 커피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기 위해서 현재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제한점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향후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을 적용하면서 농가와 기업에서는 많은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인증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 인증 과정의 추가비용을 상쇄하고 재투자를 가능하게 할 만큼의 충분한 추가 이윤의 확보가 중요하다.
'공정무역국제상표기구(Fairtrade International, 이하 FLO)'는 인증 단체 중 유일하게 최저가격기준을 두어 국제 커피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대비하고 있지만, 원두 1킬로그램 당 약 2.97달러라는 낮은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원두 1킬로그램이면 커피 80잔을 내릴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FLO를 제외한 단체는 아예 가격기준에 대한 명시 없이 인증을 통해 프리미엄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제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더욱이 두 달 가량의 짧은 수확기간 동안 고용되는 임시 노동자는 아예 인증을 통한 경제적 혜택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경제적 이윤의 보장 정도를 이유로 일부 연구자는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이 제한적 혜택을 통해 수요를 유지시키는 수준에 국한하여 생산국을 열악한 경제적 상황에 고착시킨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개선하기 위해서 필자는 포터(Porter) 교수가 주창한 '공유가치창출' 이론의 구조적 개혁 방법을 커피산업에 적용하기를 제안하고 싶다.
'공유가치창출'은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확보하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구조적으로 노동자, 기업, 지역사회, 유관기관 등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평등한 지역 협의체를 구성해 각 주체들의 사회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산업구조 개혁을 추구한다. '지속가능한 커피 인증'이 커피산업에 경제적·환경적·사회적 측면의 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농가와 기업을 중재한다는 점은 '공유가치창출'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 중심의 현 구조에서 나아가 기업-농가-농가지역을 포괄하는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농가가 실제로 필요한 만큼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인프라가 개선될 수 있다. 또 경제적 변화로 농가는 기업 수요에 적합한 원두 생산에 집중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은 친환경·고품질 원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실적이 개선되게 된다.
즉, 농가의 경제적 문제 해결과 기업의 경영실적 개선이 동시에 이뤄지고, 다시 재투자가 이루어지는 '공유가치창출'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지리적 시선에서 지역의 주체를 연결하고 산업구조의 혁신을 가져온다면, 커피산업은 지금보다 더 공정한 미래를 이루게 될 것이다.
<필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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