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상고 사건과 관련해 "'개망신'이 안 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같이 밝혔다.
검찰이 입수한 김 전 수석의 2015년 12월 26일 자 업무일지에는 '강제징용 건과 관련해 조속히 정부 의견을 대법원에 보내라', '개망신 안 되도록',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업무일지 내용에 대해 김 전 수석은 "당시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 타결을 앞두고 지침을 받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화했다"면서 "협상과 관련한 지침을 주신 뒤 말미에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셔서 받아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조속히 정부 의견을 대법원에 보내고, 그렇게 이 문제가 종결되도록 하라고 박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다"고 진술했다.
김 전 수석은 이어 "박 전 대통령이 '개망신이 안 되도록 하라'고 말씀하시고는, 표현이 좀 그랬는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위상을,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리하라'고 설명하셨다"고 말했다.
검찰이 '개망신'이나 '국격 손상' 등 표현의 의미에 관해 묻자, 그는 "외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이 기존의 정부 입장과 상충한다고 생각해 왔다"며 "그로 인해 일본 측과 외교 문제가 계속돼 왔으니, 판결 내용이 종전의 정부 입장에 맞게 돼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당시 김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심리 지연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관련 소송으로 한일 관계를 우려한 박근혜 정부 요청에 맞춰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결과를 뒤집으려 했으며, 그 대가로 상고법원 설치 및 법관 해외파견 확대 등 역점 사업을 관철하려 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강제징용 소송 심리가 지연되는 사이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담은 한·일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
한일 위한부 협상 타결 1년여 뒤인 2016년 11월 양승태 대법원은 강제징용 소송의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그해 말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면서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간 '재판 거래' 논의가 중단됐다.
이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 판결은 정부와 대법원장이 모두 바뀐 이후인 지난해 10월에 나왔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었다.
전체댓글 0